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의 '깐부'부터 '앙숙'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은 물론, 치열한 경쟁 관계인 오픈AI와 앤트로픽까지 이재명 대통령의 실리콘밸리 방문을 계기로 모여 맥주잔을 기울였다. 높아진 K-반도체 위상과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동시에 부각되면서다.
이 자리에서 글로벌 빅테크들이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와 AI 인프라를 최우선 협력 대상으로 지목함에 따라, 이들의 핵심 연구개발(R&D) 인력과 거점 역시 본격적으로 한국을 향하게 됐다.
이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참석한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혹 탄 브로드컴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 등 글로벌 AI 산업을 움직이는 핵심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도 영상 메시지를 통해 한국과의 협력 의지를 밝혔다. 기업가치로만 수조달러에 달하는 빅테크의 핵심 인사들이 특정 국가 정상의 방문 행사에 일제히 참석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장면이다.
대표적인 라이벌인 올트먼 CEO와 아모데이 CEO가 같은 무대에 오른 것도 눈길을 끌었다. 아모데이 CEO는 올트먼 CEO와 경영 노선과 AI 개발 철학을 놓고 갈등하다 오픈AI를 떠나 앤트로픽을 설립했다. 지난 2월 인도 'AI 임팩트 서밋'에서 악수조차 거부했던 두 사람이 한국의 반도체와 AI 인프라를 매개로 한자리에 섰다는 점은 높아진 한국의 산업적 위상과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 성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평가된다.

앙숙까지 한자리에 불러 모은 구심점은 한국의 반도체와 AI 인프라다. 빅테크 수장들은 이달 초 발표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가 적기에 마련된 반도체·AI 인프라 투자 구상이라고 평가했다.
황 CEO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혁신이 없었다면 엔비디아는 슈퍼컴퓨터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날과 같은 AI 파워도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황금 시기”라고 평가했다. 브로드컴도 프런티어 모델과 맞춤형 AI 가속기 개발, 소버린 AI 인프라 구축을 중심으로 한국과의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올트먼 CEO는 “AI 혁명은 한국 없이는 불가능했다”며 한국의 AI 투자를 높이 평가했다. 아모데이 CEO도 한국이 반도체부터 데이터센터까지 AI 공급망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빅테크의 연구·개발(R&D) 거점도 한국에 둥지를 튼다. 황 CEO는 이 대통령과의 개별 면담에서 엔비디아의 핵심 AI 연구인력을 캘리포니아에서 한국으로 보내고 카이스트와 한국형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 협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단순한 투자나 반도체 구매를 넘어서 한국이 글로벌 AI 기업의 연구개발 거점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날 AI 서밋을 마친 뒤 이 대통령은 황 CEO를 비롯해 혹 탄 CEO, 라니 보르카르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하드웨어 사장 등 빅테크 핵심 인사들과 삼성전자·SK·현대자동차·네이버 등 국내외 기업 수장들과 현지 야외 테라스 식당에서 피시앤칩스 등으로 만찬을 가졌다.
이 대통령은 “기업인들 덕에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크게 올라갔고 이는 수십 년 만의 최고 실적”이라며 참석자들을 격려하고, 앞으로도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글로벌 빅테크 CEO들은 한국이 단기간에 최상급 프런티어 AI 모델을 개발할 역량을 갖췄다며 한국만의 AI 모델 구축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