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한국 증시의 최근 흐름을 '카지노'에 비유하며 개인투자자들의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에 대해 경고했다. 인공지능(AI) 열풍이 반도체주 강세를 이끌었지만,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중심으로 한 투기적 거래가 시장 변동성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3일(현지시간) 게재한 한국 증시 분석 기사에서 “한국 투자자들에게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여정이었다”고 평가했다. 매체는 코스피가 2025년 초 이후 AI 기대감에 힘입어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지난 6월 이후 약 25% 하락하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고 진단했다.
증시 상승을 견인한 핵심 요인으로는 AI 산업 성장과 메모리 반도체 호황을 꼽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데이터센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며 국내외 투자자금이 집중됐다는 설명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놀라울 정도로 좋은 실적을 내고 있어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면서도 “주가 상승에 베팅하는 방식은 갈수록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올해 들어 레버리지 ETF에 약 100억 달러(약 14조6000억원)를 투자한 점을 언급하며, 한국 개인투자자들을 '충동적 도박꾼(impulsive gamblers)'에 비유했다. 가장 위험한 상품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특정 종목의 주가를 배수로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꼽았다.
매체는 레버리지 ETF의 운용 구조가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목표 배율을 유지하기 위해 주가가 오르면 기초자산을 추가 매수하고, 주가가 하락하면 추가 매도하는 리밸런싱이 이뤄지면서 상승장에서는 상승폭을, 하락장에서는 낙폭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투자자들은 이미 이 매력적인 신상품에 깊이 빠져들었다”며 “금융당국이 이제 와서 아무리 후회하더라도 투자자들을 카지노 밖으로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규제 시행을 앞둔 지난 24일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F 거래는 SK하이닉스 관련 상품에 집중됐다.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이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F 16종목의 거래대금은 총 10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ETF 거래대금 26조2000억원의 약 40%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SOL SK하이닉스선물단일종목인버스2X와 KODEX SK하이닉스단일종목레버리지 두 상품의 거래대금은 각각 3조6300억원과 3조1700억원으로, 두 종목의 거래대금만 6조8000억원에 달해 전체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F 거래의 64.7%를 차지했다.
시장 과열 우려가 커지자 정부도 규제 강화에 나섰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4일 외신 간담회에서 금융위원회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관련 대책 시행 시점을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31일부터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신규 매수하려면 계좌에 현금 3000만원 이상의 기본예탁금을 보유해야 한다. 주식이나 ETF, 채권은 예탁금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실제 현금 입금만 인정된다.
금융당국은 이번 규제가 개인투자자의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를 억제하고 시장 변동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미 투자 수요가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규제만으로 시장 과열을 진정시킬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