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의 AI전략노트]〈33〉변곡점에서 새로운 질서가 탄생한다

김경진 전 국회의원
김경진 전 국회의원

얼마 전 상하이 커촹반에서 중국 D램 1위 기업 창신메모리(CXMT)의 공모주 청약이 마감됐습니다. 86억달러를 모으는 공모에 기관투자자 570배, 개인투자자 212배가 몰렸습니다. A주 반도체 역사상 최대 규모 기업공개였습니다. 중국의 문샷AI는 2조8000억개 매개변수를 가진 오픈웨이트 모델 Kimi K3를 공개했고, 매출의 절반 이상을 휴머노이드 로봇에서 뽑아내는 유니트리는 상장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졌습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과 로봇이 같은 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셈입니다.

중국은 이 세 분야를 따로 키우지 않습니다. 통신사가 인프라 임대업자에서 AI 인프라 사업자로 옮겨가고, 화웨이가 개별 칩 성능 대신 지능 연산 클러스터 구조를 밀어붙이는 사이, 중국의 인간형 로봇 수출은 1년 만에 210% 늘었습니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올해 휴머노이드 로봇을 10만대 넘게 양산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반도체와 통신과 AI를 쪼개서 보면 뒤처지지만, 묶어서 팔면 시장을 새로 만든다는 계산입니다. 속도의 경쟁이 아니라 판을 새로 짜는 경쟁이라는 뜻이죠.

문명의 역사에서 이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습니다. 증기기관이 공장 배치를 바꾸고, 전기가 도시의 밤을 바꾸고, 인터넷이 상거래의 문법을 바꿨을 때, 그 변화는 어느 한 산업의 개선이 아니라 질서 자체의 교체였습니다. 반도체와 AI와 로봇이 겹쳐 돌아가는 지금 국면도 같은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생산, 노동, 국방과 외교의 기준선이 다시 그어지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변곡점은 지나간 뒤에야 또렷해지는 법이지만, 이번만큼은 신호가 이미 짙습니다.

한국의 위치를 숫자로 짚어보면 이 신호가 더 또렷해집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정상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AI로 넘어가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국내외 지수들은 미국 중국을 100으로 놓았을 때 한국의 AI 기술수준을 30%대에서 40%대 사이로 매깁니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인간형 로봇에서는 격차가 더 벌어집니다. 중국이 올해만 10만대를 찍어내는 동안, 한국의 존재감은 미미하다는 말도 과하지 않습니다. 피지컬 AI와 결합한 휴머노이드가 10년 안에 안보현장, 생산현장을 장악한다는 전제를 세워 놓고 보면, 지금 한국의 위치는 위태롭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대한민국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샌프란시스코 AI 정상회의에서 한국을 세계 AI 공급망의 핵심국으로 만들겠다고 밝혔고, 네이버와 엔비디아, 브룩필드는 세종 가온 데이터센터를 55메가와트에서 200메가와트로 늘리는 100억달러 사업에 합의했습니다. 적지 않은 규모입니다.

다만 국가 자본시장 전체가 반도체와 AI와 로봇에 동시에 베팅하는 중국의 속도와 견주면, 한국의 움직임은 여전히 신중한 쪽에 가깝습니다.

지금은 문명의 변곡점이고, 이 시기에는 신중함보다 무모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HBM 다음 세대 메모리, 국산 파운데이션 모델, 휴머노이드 로봇, 이 세 축에 나라의 명운을 걸어야 합니다.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실패할 프로젝트가 여럿 나올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엄청난 투자를 무모하게 쏟아 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HBM에서 앞서 있다고 안심할 계제가 아닙니다. 범용 메모리에서는 이미 가격 압박이 시작됐고, 로봇과 파운데이션 모델에서는 아직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베팅하지 않으면 다음 변곡점에서는 관전자로 남을 뿐입니다. 정부는 세제와 인허가로 속도를 붙이고, 기업은 실패를 감수하는 연구개발에 곳간을 열고, 인재는 이 세 분야로 몰려야 합니다.

새로운 질서는 언제나 판을 먼저 벌인 쪽의 문법으로 짜입니다. 중국이 반도체와 통신과 인공지능을 한 묶음으로 파는 지금, 한국이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 판에 얼마를 걸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과기부총리의 3조 예산요구에 고민하는 재정당국에게 묻습니다.

김경진 전 국회의원 2016kimk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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