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데모데이에서 공급망으로…중국형 오픈이노베이션 본질 [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7/29/news-p.v1.20260729.ee91b65c875247db80ac0b384d573d3a_Z1.png)
중국 오픈이노베이션을 이해하려면 먼저 익숙한 장면 하나를 지워야 한다. 대기업 임원이 축사하고 스타트업이 몇 분간 발표한 뒤 우수기업을 시상하는 데모데이다. 이런 행사만 보면 중국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중국에서 개방혁신이 실제로 작동하는 중심은 무대가 아니라 공장, 병원, 물류센터, 발전소와 도시 인프라다. 대기업이 해결할 문제와 적용 현장을 내놓고, 중소 기술기업이 해법을 제시한다. 지방정부는 공간·인허가·공공 실증을 연결하고, 대학은 원천기술과 시험평가를 보완한다. 검증을 통과한 기술은 구매계약, 공급사 등록, 공동제품과 후속투자로 넘어간다.
따라서 중국형 오픈이노베이션의 한 문장 명제는 분명하다. '유망한 스타트업을 얼마나 많이 선발했는가'가 아니라 '외부 기술을 얼마나 빨리 산업 공급망 안의 반복매출로 바꾸는가'다.
한국에서는 오픈이노베이션을 대기업과 스타트업 상생 프로그램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중국 정책과 산업 현장에서는 개방형 혁신(开放式创新)뿐만 아니라 대·중·소기업 융합형 혁신(大中小企业融通创新), 적용 현장 개방(场景开放), 기술 수요 공개(需求发布), 공개 난제 해결(揭榜??), 공동혁신센터(联合创新中心), 산업협력과 투자의 결합(产投?合)이라는 표현이 함께 쓰인다. 이 언어의 차이가 본질을 보여준다. 중국은 창업지원, 기술개발, 조달, 기업유치와 투자를 별개의 사업으로 두기보다 혁신사슬·산업사슬·자금사슬·인재사슬을 연결하는 산업 조직 방식으로 다룬다.
이 시스템은 2022년부터 2025년까지 공업정보화부 등 11개 부처가 추진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특별행동(携手行动)에서 선명해졌다. 정책은 기술·산업·공급망·데이터·자금·서비스·인재라는 일곱 개 사슬의 연계를 요구했다. 대기업이 연구개발 장비, 시험장, 데이터, 생산능력과 브랜드를 개방하고 중소기업 혁신제품을 먼저 사용하도록 유도했다. 핵심은 중소기업 지원이 아니라 공급망 주도기업을 중심으로 외부 혁신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2025년으로 정책이 끝난 것도 아니다. 2026년 제15차 5개년 계획 요강(十五五???要)은 기업 주도의 산학연 협력과 대·중·소기업 협력 발전을 다시 명시했다. 같은 해 5월 공업정보화부 등 5개 기관은 '100회·1만개 기업' 대·중·소기업 연계사업(百场万企)을 시작했다. 로봇·서버·AI 단말 같은 중점산업에서 중앙정부 산하 국유기업과 대형 민간기업 수요를 중소기업에 연결하고, 대학 특허, 금융기관과 해외 판로까지 한 사업에 묶었다.
정책의 외연은 더 넓어졌다. 플랫폼 경제 대·중·소기업 협력 발전 행동방안(促?平台经济大中小企业协同发展行动方案·2026~2028)은 플랫폼 기업이 기술·데이터·컴퓨팅 자원을 개방하도록 했다. 2028년까지 세 차례의 플랫폼 개방목록, 100개 이상 자원 개방 실증사업, 10개 이상 서비스 플랫폼과 60개 이상 현장 적용형 지능형 서비스 시나리오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중소기업 컴퓨팅 역량 강화 특별행동(普惠算力?能中小企业发展专项行动)은 2028년까지 중소기업 컴퓨팅 접근비용을 낮추고, 사용량 기반 과금과 컴퓨팅 바우처를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 오픈이노베이션이 제조 공급망 협력을 넘어 AI 모델·데이터·플랫폼·공동 해외 진출을 포괄하는 산업정책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뜻이다.
왜 지금 이 정책이 강화되는가. 중국 대기업은 AI와 로봇의 짧아진 기술주기를 내부 연구개발만으로 따라가기 어렵다. 중소 기술기업은 기술은 있어도 첫 고객, 양산설비와 글로벌 판매망이 부족하다. 지방정부는 보조금만으로 기업을 유치하기 어려워졌고, 이미 보유한 공장·병원·데이터와 산업클러스터를 경쟁자산으로 바꿔야 한다. 공급망 안정과 성장동력 발굴이라는 서로 다른 문제가 오픈이노베이션이라는 하나의 수단에서 만난 것이다.
중국형 오픈이노베이션은 다섯 관문으로 작동한다. 첫째는 수요정의다. 성숙한 프로그램은 유망기업부터 찾지 않는다. 생산·연구개발·품질·구매 부서가 해결할 문제를 먼저 수집한다. 자동차 도장공정의 검사 정확도를 얼마나 높일지, 배터리 열관리 비용을 얼마나 낮출지, 물류센터의 로봇 동선을 어떻게 줄일지가 과제가 된다. 현재 성능, 목표 성능, 데이터 범위, 시험조건, 예산과 구매전환 기준이 함께 있어야 'AI'나 '로봇'이라는 구호가 발주할 수 있는 수요로 바뀐다.
둘째는 기술탐색이다. 36Kr(36氪) 같은 산업미디어·데이터 플랫폼, 전문 액셀러레이터, 대학 기술이전기관, 벤처캐피털과 지방 산업플랫폼이 후보를 찾는다. 대상은 창업 초기 기업에 한정되지 않는다. 전정특신·전문화·정밀화·특색화·혁신형 기업(专精特新)과 소거인 기업(小巨人)처럼 매출, 고객, 생산설비와 품질인증을 갖춘 기술기업도 핵심 공급자다. 제조업에서는 아이디어의 참신함보다 납기, 불량률, 원가, 사후관리와 생산량 확대 능력이 조달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유상 기술검증과 현장 실증이다. 중국의 대규모 공장, 병원, 물류망, 전력망과 소비 플랫폼은 단순한 시연장이 아니라 성능을 판정하고 첫 운영 데이터를 만드는 산업자산이다. AI 모델은 공장의 비정형 데이터에서 성능이 갈리고, 로봇은 먼지·진동·조도와 작업자 동선이 뒤섞인 현장에서 가치가 드러난다. 기술검증에 예산을 배정해야 대기업에 실제 구매 의지가 있는지, 중소기업이 감당할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넷째는 조달과 공동제품이다. 기술이 작동해도 구매부서 공급사 등록, 보안·품질·재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업은 멈춘다. 반대로 이 관문을 넘으면 대기업은 외부 기술을 자사 하드웨어, 클라우드, 판매망과 유지보수 체계에 결합해 공동 솔루션으로 만든다. 다섯째는 반복 매출과 외부 확장이다. 첫 구매가 반복 주문으로 이어지고, 특정 대기업 밖의 고객에게도 팔려야 기술기업의 독립적 성장이 가능하다. 마지막 관문이 막히면 개방혁신은 성장 사다리가 아니라 전속 하청구조가 된다.
이 전환 경로에서 역할은 겹치지 않는다. 공급망 주도기업은 문제, 데이터, 현장, 구매예산과 고객을 제공한다. 중소 기술기업은 좁고 깊은 기술과 빠른 제품개발을 맡는다. 지방정부와 개발구는 공공 실증, 인허가, 공간과 기업 유치를 연결한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원천기술, 특허, 시험평가와 인재를 공급한다. 운영기관은 기업 내부 난제를 외부가 이해할 수 있는 과제로 번역하고 후보 발굴, 계약과 실증을 관리한다. 금융기관은 검증 전의 구호가 아니라 검증 뒤의 주문서·납품이력·매출채권을 보고 성장자금을 공급한다.
중국 시스템 특징은 이 역할들이 순환한다는 데 있다. 사업부가 기술을 검증하면 기업형 벤처캐피털과 지방 산업기금이 후속 투자를 검토한다. 주문이 발생하면 은행과 공급망 금융기관이 운전자금을 제공한다. 투자받은 기업이 지역에 정착하면 공급망이 두꺼워지고 다시 새로운 기술 수요가 생긴다. 보육, 실증, 조달, 투자와 기업 유치가 하나의 경로로 묶인다. 중국이 오픈이노베이션을 산업 운영체제로 만든다는 의미다.
중국 강점을 '14억 소비시장'으로만 설명하면 산업용 오픈이노베이션 핵심을 놓친다. 더 중요한 것은 비슷한 문제를 가진 수많은 공장과 물류센터, 병원, 전력·교통시설이 산업클러스터 안에 밀집해 있다는 점이다. 한 공장에서 검증한 비전검사 기술을 인근 부품사와 전자공장으로 확장하고, 한 물류거점에서 축적한 로봇 운영데이터를 다른 창고에 적용할 수 있다. 수요처와 공급사, 엔지니어가 가까우면 설계변경→부품교체→재시험 주기가 짧아진다. 중국 시장 경쟁력은 인구의 크기 못지않게 반복해서 풀 수 있는 산업문제 밀도에 있다.
이 구조는 자본 역할도 바꾼다. 전통적인 벤처투자는 성장 가능성을 먼저 평가하고 자금을 넣지만, 산업형 오픈이노베이션에서는 현장검증이 기술·시장 실사 일부가 된다. 대기업 유상 기술검증과 첫 주문은 매출인 동시에 기술 신뢰도를 보여주는 신호다. 기업형 벤처캐피털은 전략적 적합성을, 지방 산업기금은 지역 공급망 편입과 생산거점 유치를, 은행은 주문서와 매출채권을 본다. 자본이 하나의 심사기준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기술위험→양산위험→시장위험을 단계별로 나눠 부담하는 것이다.
다만 산업자본이 항상 중립적인 것은 아니다. 대기업이 투자와 구매를 동시에 쥐면 기술기업은 빠르게 성장하는 대신 가격협상과 고객 선택에서 제약받을 수 있다. 지방 산업기금도 기술의 범용성보다 지역 내 법인설립·설비투자를 우선할 수 있다. 따라서 투자유치액 자체보다 투자 이후 외부고객 매출, 생산능력 확대와 후속 민간자본 유입을 봐야 한다. 중국형 시스템의 힘은 자본이 많다는 데 있지 않고, 검증과 주문을 자금공급의 근거로 바꾸는 데 있다.
하이얼(海尔)은 외부 연구개발형이다. 2009년 개방혁신센터를 만들고 사업부 기술 난제를 세계 전문가·대학·기업에 공개했다. 이후 HOPE 플랫폼을 통해 수요 제시와 기술탐색을 온라인으로 확장했다. 중요한 것은 등록 전문가 수가 아니라 내부 문제를 외부가 풀 수 있는 단위로 번역하고, 해법을 공동개발과 기술이전으로 흡수하는 조직능력이다.
샤오미(小米)는 투자·생태계형이다. 중국 증권사 보고서들이 분석한 샤오미 생태계 핵심은 지분투자만이 아니다. 제품기획, 산업디자인, 부품조달, 품질관리, 온라인·오프라인 유통과 사물인터넷 플랫폼을 함께 제공한다. 기술기업은 양산과 판매망을 빠르게 얻고 샤오미는 제품군을 넓힌다. 그러나 낮은 가격과 촉박한 납기, 샤오미 채널 의존과 독립 브랜드 약화라는 비용도 따른다. 산업자원과 자본이 결합할수록 성장 속도와 플랫폼 종속이 함께 커진다.
레노버(联想)는 검증·조달형에 가깝다. 레노버가 2026년 2월 공개한 최근 3년 성과에 따르면 400개가 넘는 프로젝트가 참여해 60건 이상이 기술검증을 마쳤고, 약 20건이 상용화 또는 자본 연계로 이어졌다. 기업 자체 발표라는 한계는 있지만 평가단위가 참가자 수보다 기술검증과 상용화에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연구조직이 초기 시제품 개발을 돕고 사업부가 검증을 주도하며, 허페이·톈진·선전 등 생산라인이 시험생산과 양산을 지원한다.
세 모델을 같은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하이얼형은 외부 해법의 채택률과 개발기간 단축, 샤오미형은 양산전환과 생태계 밖 매출, 레노버형은 공급사 전환과 협력매출이 핵심이다. 다만 공통 질문은 같다. 대기업이 실제 자산을 얼마나 개방했는가, 기술기업이 비용을 받고 검증했는가, 협력이 첫 구매를 넘어 반복매출로 이어졌는가.
중국 도시도 하나의 모델로 묶을 수 없다. 베이징은 대학·연구소·대기업 본사와 기업형 벤처캐피털을 바탕으로 AI·반도체·로봇의 원천기술을 찾는다. 상하이와 푸둥은 다국적기업, 바이오·반도체·자동차와 글로벌 기술사업화를 결합한다. 선전은 전자부품, 금형, 시제품과 양산전환 속도가 강점이다. 쑤저우와 우시는 외국계 제조기지와 바이오·의료 산업단지를, 허페이는 지방 산업투자와 전략기업 육성을 함께 움직인다. 항저우는 플랫폼·클라우드·전자상거래의 사용자와 데이터를 AI 응용에 연결한다.
따라서 '중국 어느 도시로 갈 것인가'를 먼저 묻는 접근은 틀렸다. 필요한 것이 로봇 전체인지 감속기·비전·제어기인지, 바이오 전체인지 후보물질·진단·임상·생산인지부터 구분해야 한다. 그다음 문제 구매권을 가진 기업과 실증·공급망이 밀집한 지역을 골라야 한다. 도시 명성보다 기술수요와 산업기능의 일치가 먼저다.
중국형 오픈이노베이션 경쟁력은 결국 지원금의 크기나 스타트업 숫자가 아니다. 대기업 수요, 중소기업 속도, 도시 현장, 대학 기술과 산업자본을 수요정의→기술탐색→유상검증→조달·공동제품→반복 매출이라는 경로로 연결하는 능력이다. 다만 경로가 있다고 모든 기업이 끝까지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강점이 전환을 설계하는 능력이라면 약점도 바로 관문 사이 단절에서 생긴다.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