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PoC 끝은 조달이다…중국 오픈이노베이션 병목과 한국 선택 [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7/29/news-p.v1.20260729.37507e6fd26c49e68c378574a281e595_Z1.png)
중국형 오픈이노베이션을 평가할 때 가장 위험한 숫자는 '연결된 기업 수'다. 생태계 회원 수, 멘토링 건수와 로드쇼(데모데이) 횟수는 활동량을 보여줄 뿐 산업성과를 증명하지 못한다. 진짜 성과는 네 개 전환율로 봐야 한다. 지원기업 가운데 유상 기술검증으로 넘어간 비율, 검증에서 정식 구매로 전환된 비율, 첫 구매 뒤 반복주문이 발생한 비율, 특정 대기업 밖 고객으로 확장한 비율이다. 앞의 세 수치가 높아도 마지막이 낮다면 대기업 공급망 강화에는 성공했지만 기술기업 독립적 성장에는 실패했을 수 있다.
이 기준은 중국을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게 한다. 중국 공장과 시장, 지방정부 실행력은 분명 강점이다. 그러나 정부·기업이 발표하는 '지원'에는 상담, 입주, 행사 참가, 투자 의향과 실제 계약이 함께 포함되기도 한다. 계약액과 실제 인식매출도 다르다. 오픈이노베이션을 산업 시스템으로 읽으려면 투입·중간 전환·최종 성과를 분리해야 한다.
상하이 푸둥의 대기업 오픈이노베이션센터(大企业开放创新中心·GOI)는 기업 개방혁신을 지방정부 제도로 만든 대표 사례다. 2021년 시작된 GOI는 대기업 혁신센터를 개별 회사 시설로 두지 않고 지역 산업정책 노드로 편입했다. 대기업은 기술·공간·시장·투자를 기술기업에 개방하고, 푸둥신구 정부는 지식재산권, 인재, 대학기술, 금융과 국유 벤처투자를 연결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지방정부가 대기업 개방역량을 보강하는 이중 구조다.
2025~2027년 관리규정은 조건을 구체화했다. 신청 주체는 산업 영향력이 있는 기업이어야 하고, 최소 5명의 전담 인력과 1000㎡ 이상 개방형 혁신공간을 갖춰야 한다. 자금 출처, 투자 방향과 기업지원 계획도 제시해야 한다. 푸둥은 기업별 기록과 전담자를 두고 공간조성, 지식재산권, 인재, 대출·이자지원과 지분투자를 연계한다. 혁신센터를 홍보부서의 캠페인이 아니라 평가·관리되는 산업 인프라로 취급하는 것이다.
푸둥신구 2025년 통계공보에 따르면 GOI는 108곳, 이들이 지원한 중소 기술기업은 누적 8300곳을 넘었다. 이 수치는 푸둥 자체 집계이고, 지원 깊이와 매출전환율은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그럼에도 GOI 의미는 숫자보다 구조에 있다. 바이엘·화이자·로슈·존슨앤드존슨·지멘스 헬시니어스·소니·바이두 같은 중국 및 글로벌 기업 외부혁신 조직을 지역 플랫폼에 묶었다. 과거 외자유치가 공장과 자본을 데려오는 일이었다면, GOI는 기업 연구개발·기술탐색·조달이라는 '혁신 기능'을 지역에 고정하는 정책이다.
자동차에서는 BMW 스타트업 개러지 차이나 벤처 클라이언트 방식이 주목할 만하다. BMW는 스타트업에 먼저 투자하기보다 초기 고객이 돼 기술을 시험하고, 성공한 기업을 공급사 후보로 편입한다. 2021년 알리바바 클라우드와 상하이 진차오에 공동혁신기지를 열어 클라우드·디지털 생태계와 차량, 공장, 엔지니어와 사업부를 연결했다. 자동차에서 기술검증 종착지는 투자유치가 아니라 품질·보안·안전 심사를 통과한 공급이력이다.
바이오·의료에서는 구매보다 공동연구, 임상, 허가와 라이선스가 중요하다. 바이엘 코랩 상하이는 2024년 장장 바이오클러스터에 문을 열고 초기 생명과학 기업에 실험실과 종양학·세포유전자치료 전문성, 글로벌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제이랩스 상하이는 존슨앤드존슨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처음 세운 창업보육 거점이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장쑤성 우시시 정부 및 우시고신구와 함께 조성한 아이캠퍼스는 의약품·의료기기·진단·디지털헬스를 병원·정부·대학·투자기관과 연결한다. 바이오 개방혁신은 공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임상설계, 환자 접근, 규제와 글로벌 사업개발이 동시에 연결돼야 한다.
산업자동화에서는 슈나이더 일렉트릭(施耐德电气) 창잉·공동혁신 프로그램(创赢计划)이 다른 경로를 보여준다. 기술기업 AI·에너지관리 솔루션을 슈나이더 전력·자동화 제품, 시스템통합기업과 최종 고객 공장에 결합한다. 2025년 6기 프로그램도 AI·친환경·안전을 중심으로 공동 솔루션과 사업가속을 추진했다. 디지털 플랫폼은 다시 다르다. 클라우드 호환성, 정보보안, 마켓플레이스 등록과 공동영업이 구매 문이다. 자동차는 공급사 승인, 바이오는 임상·허가·라이선스, 산업재는 시스템 통합과 유지보수, 디지털은 공동판매가 핵심인 만큼 모든 산업에 같은 액셀러레이팅과 같은 지표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
다국적기업이 중국에서 얻으려는 것도 과거의 저렴한 생산과 현지화에 그치지 않는다. 빠른 엔지니어링, 촘촘한 공급망, 풍부한 적용 현장과 제품개발 속도를 글로벌 경쟁력에 활용하려 한다. PwC가 2025년 중국 주재 다국적기업 고위임원 113명을 조사한 결과 57%는 중국 혁신생태계가 자사 글로벌 경쟁력을 유의미하게 높였다고 답했다. 50%는 향후 2년간 중국 혁신생태계 글로벌 전략상 중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봤고, 42%는 중국 내 혁신·연구개발 투자를 늘릴 계획이며 다른 42%는 유지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이 조사만으로 전체 외국기업 태도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조사 대상과 시점이 제한돼 있고 중국 사업에 적극적인 기업이 더 많이 응답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중국 법인 역할이 '중국을 위한 중국'에서 '세계시장을 위한 중국'으로 넓어지는 방향은 자동차·바이오·산업자동화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동시에 중국에서 만든 혁신을 글로벌로 옮기는 순간 본사 보안·지식재산권 관리와 각국의 수출통제라는 새로운 경계가 생긴다.
첫 번째 병목은 수요와 의사결정권 분리다. 혁신부서가 과제를 모집해도 사업부 예산과 구매부서 권한이 붙지 않으면 기술검증은 홍보성 행사에 머문다. 'AI'나 '로봇'처럼 넓은 주제로 기업을 선발하면 성공기준도 구매조건도 정할 수 없다. 기술기업을 평가하기 전에 대기업 내부 문제 책임자, 예산 책임자와 구매 결정권자가 함께 참여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두 번째는 기술검증 경제성이다. 대기업 명성을 원하는 기술기업이 비용을 받지 않고 맞춤개발을 시작하면 '파일럿 지옥'이 열린다. 데이터 접근은 늦어지고 시험조건은 바뀌며 핵심인력이 장기간 묶인다. 유상검증이라도 범위, 기간, 성공기준과 중단조건이 없으면 사실상 저가 외주개발이 된다.
세 번째는 검증과 조달 단절이다. 기술이 작동해도 공급사 등록, 재무안정성, 정보보안, 제품책임, 품질인증, 가격협상과 결제조건을 넘지 못하면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제조업에서는 시제품 한 개 성능과 수천 개를 같은 품질로 납품하는 능력이 다르다. 구매·법무·보안·품질 부서가 검증 뒤에 처음 등장하면 심사가 처음부터 반복된다.
네 번째는 권리와 규제 경계다. 공동개발 전에 기존 보유기술과 새 결과물, 중국 내 사용권과 글로벌 사용권, 개량기술 소유권, 소스코드·학습데이터 공개범위, 독점조항을 분리해야 한다. AI·바이오에서는 산업데이터와 환자정보 국외이전, 사이버보안, 수출통제와 제재까지 검토해야 한다. PwC 조사에서도 중국 혁신을 글로벌 전략에 반영할 때 본사 이해와 기업문화가 장애라는 응답이 51%, 국가별 법규 준수가 50%였다.
다섯 번째는 생태계 종속과 정책지속성이다. 대기업 생태계는 공급망과 판매를 빠르게 제공하지만 가격결정권과 고객접점을 플랫폼이 쥔다. 하나의 기업 규격에 맞춘 제품은 다른 고객에게 팔기 어려울 수 있다. 지방정부도 입주기업, 행사, 협약과 투자유치액처럼 측정하기 쉬운 지표에 치우치면 공간 채우기 경쟁이 생긴다. 정책 우선순위나 지방재정이 바뀌면 지원도 줄어든다. '정부가 지원하는 기술' '대기업 한 곳이 사는 기술' '시장이 반복구매하는 기술'을 구분해야 한다.
한국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심사위원이 아니라 첫 유상고객이 돼야 한다. 해결할 공정·제품 문제, 현재와 목표 성능, 제공할 데이터·장비, 검증예산, 기간과 구매전환 조건을 담은 '기술수요 발주서'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혁신팀뿐만 아니라 사업부·구매·법무·보안·품질 책임자가 과제설계 단계부터 참여해야 한다. 기술검토→유상검증→현장 파일럿→공급사 등록·공동제품→반복구매 단계마다 예산, 권리, 성공과 중단 조건을 정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부처마다 흩어진 창업지원, 기술사업화, 조달, 수출과 정책금융을 하나의 전환 경로로 묶어야 한다. 정부가 특정 기술 승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민간기업 유상검증 비용을 분담하고 시험·인증·데이터 규칙을 정비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성과지표도 선발 수와 투자유치액에서 첫 구매까지 걸린 기간, 민간 구매액, 반복매출과 해외매출로 바꿔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공유오피스 제공자가 아니라 지역 실증자산 운영자가 돼야 한다. 울산은 자동차·조선·화학, 창원은 기계·방산·원전, 구미는 전자·반도체, 포항은 철강·배터리소재, 오송은 바이오·의료의 수요와 공공 실증을 묶을 수 있다. 공장·병원·항만·에너지·도시시설을 시험인증기관, 지역대학, 정책금융과 연결하고, 실증 이후 지역 공급망 편입과 투자·고용까지 추적해야 한다.
대학은 특허 공급자에서 문제해결 컨소시엄 설계자로 이동해야 한다. 기업 난제를 여러 연구실과 기술기업의 역량으로 나누고 다시 통합하며, 중간 단계 시험·표준·인증까지 맡아야 한다. 논문·특허 수보다 제품화, 후속 공동연구와 기술매출을 평가해야 한다. 금융권은 주문서, 현장 성능데이터, 반복구매와 납품이력을 새로운 신용정보로 활용할 수 있다. 은행은 주문서·매출채권 금융, 벤처캐피털은 검증 뒤 성장자금, 증권사는 인수합병과 해외자본 조달을 맡는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스타트업도 보호받는 참가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검증은 원칙적으로 유상으로 하고 배경기술, 공동개발 결과물, 데이터 접근권과 독점 범위를 계약에서 분리해야 한다. 첫 대기업 요구를 제품화하되 한 고객만을 위한 맞춤개발은 통제하고, 12개월 안에 두 번째 산업고객을 확보하는 것을 내부 목표로 삼아야 한다. 중국 진출 때도 지원금보다 현지 구매권자, 공급사 등록조건, 대금회수와 데이터 규제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한중 협력은 중국 기술의 한국 진출이나 한국 스타트업의 중국 진출이라는 단선적 모델을 넘어야 한다. 중국 AI·로봇 기업에는 한국 제조공장이 고난도 검증 현장이 될 수 있다. 중국 센서·자율주행 기업에는 한국 자동차 부품사 품질관리와 글로벌 완성차 고객이 필요하다. 중국 바이오 플랫폼은 한국 병원·임상·위탁개발생산 역량과, 중국 스마트물류 기업은 한국 공항·항만·물류센터와 결합할 수 있다. 반대로 한국 기업은 중국 대기업의 공장과 유통망을 통해 현지 적합성과 원가경쟁력을 검증할 수 있다.
한국 포지션은 중국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주는 곳이 아니다. 중국의 빠른 개발·제품화와 한국의 품질관리·규제 대응·지식재산권 설계·글로벌 고객 신뢰를 결합해 제3국에서 팔리는 공동제품을 만드는 곳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 소개가 아니라 수요정의, 검증, 계약, 규제와 사후매출을 끝까지 관리하는 운영기관도 필요하다. 보상은 행사 횟수나 기업 추천 수보다 구매전환과 반복매출에 연동돼야 한다.
결국 중국형 오픈이노베이션 강점은 정부가 기술 승자를 정확히 고른 데 있지 않다. 대기업 수요, 실제 현장, 조달, 투자와 지방정부 산업정책을 하나의 전환 경로로 묶은 데 있다. 약점은 무상검증, 구매단절, 플랫폼 종속, 권리분쟁과 정책성과 과장이다. 한국이 배워야 할 것은 중국의 규모가 아니라 기술이 돈을 받고 반복 사용되도록 만드는 전환 설계다.
한국 대기업은 실제 구매예산을, 정부와 지자체는 현장과 제도를, 대학은 검증능력을, 금융권은 성장자본을, 스타트업은 독립적인 제품과 책임을 내놓을 준비가 돼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만남을 유상검증으로, 검증을 조달로, 조달을 반복매출과 제3국 시장으로 바꾸는 시스템을 과연 누가 설계하고 끝까지 책임지게 할 것인가.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