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원사가 길을 열고 대학 자본이 움직인다 [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

〈중〉 중국 대학 기술사업화

[테크 차이나] 원사가 길을 열고 대학 자본이 움직인다 [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
중국 딥테크 사업화를 움직이는 최고 전문가·기술사업화 전문인력·장기자본과 10개 대학

중국 대학 기술사업화는 제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연구 가능성을 판단하는 최고 전문가, 연구실과 시장의 언어를 번역하는 전문인력, 초기 실패를 견디는 장기자본이 함께 있어야 한다. 중국이 중국과학원 원사(中国科学院院士)와 중국공정원 원사(中国工程院院士)를 국가 전략기술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대학 자산관리회사·교육기금회·동문펀드·지방정부 펀드를 연구성과 사업화에 끌어들이는 이유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원사는 기술 방향과 신뢰를 제공하고, 기술사업화 전문인력은 연구와 시장을 번역하며, 장기자본은 검증 기간을 견딘다. 세 가지 기능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연구성과는 기업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원사는 직급이 아니라 국가 최고 학술 칭호

중국 원사는 단순한 명예교수나 행정직급이 아니다. 중국과학원과 중국공정원은 원사를 자연과학과 공학기술 분야 국가 최고 학술 칭호이자 종신 명예로 규정한다. 중국과학원 원사 선출은 2년마다 이뤄지며 국가 전략수요와 학문 발전을 반영해 분야별 인원을 정한다. 원사는 국가 과학기술 전략과 중대 과제에 자문하고, 연구방향과 기술표준을 제시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윤리를 지키는 역할을 맡는다.

산학협력에서 자주 활용되는 장치가 원사·전문가 공동연구거점(院士专家工作站)이다. 기업이나 지역 연구기관 안에 원사와 연구팀이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공동 연구거점을 만들고, 기업이 해결하지 못한 핵심 기술문제를 대학과 국가 연구기관 자원에 연결한다. 원사는 자금을 직접 투자하거나 회사를 대신 경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 신뢰도를 높이고 여러 기관을 한 과제에 묶는 촉매다.

한국에는 정확히 같은 제도가 없다. 가장 가까운 것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과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이다. 이들도 엄격한 심사를 거친 최고 수준의 과학자·공학자로 정책자문과 후학 양성을 담당한다. 차이는 중국 원사가 지방정부와 기업의 공동연구거점, 대형 프로젝트, 인재유치 정책에 더 직접적으로 결합한다는 점이다.

원사가 필요한 이유는 첨단기술 정보 비대칭 때문이다. 지방정부와 금융기관은 연구실 기술 수준과 미래성을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다. 원사 참여는 우수 연구자와 연구시설, 정책자금과 기업을 모으는 신호가 된다. 그러나 원사 이름이 사업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중국 양원도 원사 칭호를 기관 자원배분이나 상업적 홍보에 부당하게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명칭을 빌린 전시성 거점, 특정 개인에게 의존한 의사결정은 오히려 위험하다.

기술사업화 실무자는 기술사업화 전문인력

원사가 방향을 제시해도 특허계약과 고객개발, 투자협상은 다른 전문성이 필요하다. 중국의 기술사업화 전문인력(技术经理人)은 연구팀 기술을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특허권리와 경쟁기술을 검토하고, 기업 문제를 찾고, 라이선스와 창업을 비교하며, 기술가치와 거래조건을 설계하고, 후속투자와 파일럿 검증을 연결한다.

이 인력이 부족하면 교수는 연구와 계약, 고객개발을 동시에 떠안고, 기술이전센터는 특허행정 부서에 머문다. 중국의 2024년 조사에서 전임 기술사업화 인력이 있는 대학·연구기관이 전체의 54.5%에 그쳤다는 사실은 계약 규모가 커진 것과 전문역량이 성숙한 것이 같은 뜻이 아님을 보여준다.

기술사업화 전문인력은 변리사, 투자심사역, 산업기술자 가운데 어느 하나와도 같지 않다. 세 언어를 모두 이해해야 한다. 연구자에게는 사업화 가능성을 설명하고, 기업에는 기술 한계와 개발일정을 알려야 하며, 투자자에게는 기술위험과 시장위험을 구분해 제시해야 한다. 보상도 계약액 한 번에 연동할 것이 아니라 후속 라이선스, 창업기업 성장, 고객 확보까지 반영해야 한다.

중국 대학도 벤처투자에 참여

중국 대학은 벤처투자에 참여한다. 다만 대학 본부가 일반회계로 직접 주식을 사고파는 구조가 아니다. 대학 자산관리회사, 교육기금회, 동문기금, 대학과 지방정부가 공동 출자한 모펀드, 대학과학기술단지 운영회사 같은 별도 법인을 활용한다.

대학은 연구성과와 교수·동문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지방정부는 자금과 산업단지를, 전문 운용사는 심사와 회수를 맡는다. 36Kr은 대학과 교육기금회가 펀드의 출자자나 공동 투자자로 등장하는 흐름을 대학 LP 확산으로 분석했다. 2024년 이후 칭화대, 푸단대, 베이징대와 여러 지방대학이 연구성과 사업화 펀드를 만들거나 전문 운용사에 출자했다.

대학 기술은 매출과 담보가 없어 일반 벤처캐피털이 보기에는 너무 이르다. 대학계 자본은 개념검증과 첫 시제품, 교수창업 단계의 빈 공간을 메우려 한다. 칭화대와 쓰촨 국유자본이 공동 추진한 대학 연구성과 사업화 모펀드는 목표 규모 약 14억7200만달러, 1차 규모 약 4억4200만달러다. 지방 국유기업 16곳이 출자하고 인공지능과 전자정보 등 전문 하위펀드를 만드는 구조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인내자본·장기자본(耐心资本)이다. 인내자본은 수익을 포기하는 돈이 아니다. 기술개발 주기에 맞게 평가 기간을 늘리고, 개념검증·시제품·첫 고객이라는 단계별 성과를 확인하는 자본이다. 초기 실패를 감수하되 중단 기준과 정보공개, 후속투자 조건은 분명해야 한다. 대학 브랜드만 믿고 투자하거나 지방정부 정책목표 때문에 부실기업을 연장하면 장기자본이 아니라 느슨한 자본이 된다.

투자심사와 자산보유를 분리해야 한다

대학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투자심사와 자산보유, 교수 이해상충 관리를 분리하는 것이다. 전문 운용사는 시장성과 회수 가능성을 판단하고, 대학 자산관리회사는 취득 지분을 보유·공시하며, 연구관리 부서는 교수 겸직과 학생 참여, 대학 장비 사용을 감독해야 한다.

한 조직이 기술평가와 투자승인, 지분관리, 성과평가를 모두 맡으면 이해상충이 커진다. 교육기금회가 펀드에 출자할 때도 장기수익을 위한 재무투자인지, 대학 연구성과를 위한 정책투자인지, 동문 생태계를 위한 전략투자인지를 약정에서 구분해야 한다.

중국 대학 펀드 확산은 기술 네트워크가 자본시장으로 이어진다는 강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대학 명성이 투자검증을 대신하고, 지방정부가 회수 가능성보다 지역유치 실적을 우선할 위험도 드러낸다. 돈의 규모보다 누가 독립적으로 투자결정을 하고, 실패를 언제 인정하며, 대학과 연구자가 어떤 정보를 공개하는지가 중요하다.

왜 사람과 자본의 구조가 지금 더 중요해졌나

반도체, 인공지능, 로봇, 바이오처럼 연구개발 기간이 긴 산업에서는 특허의 질을 외부 투자자가 단기간에 판단하기 어렵다. 교수팀은 기술을 잘 알지만 시장과 조직 운영 경험이 부족할 수 있고, 지방정부는 산업유치를 원하지만 개별 기술 성공확률을 평가하기 어렵다. 대학과 민간 벤처캐피털 사이에 평가 언어가 다르다는 뜻이다.

중국은 이 간극을 최고 전문가 신뢰, 기술사업화 전문인력 번역, 장기펀드 시간으로 메우려 한다. 원사가 기술방향을 자문하고, 사업화 전담팀이 고객과 경영자를 찾으며, 대학계 펀드와 지방정부가 개념검증 단계 자금을 부담한다. 민간 운용사는 후속투자와 회수 규율을 제공한다. 이 구조는 국가가 기술기업을 직접 고르는 방식과도 다르고, 대학이 특허를 외부에 판매한 뒤 손을 떼는 방식과도 다르다.

시장 수요가 없으면 세 요소는 모두 무력해진다. 원사의 추천이 있어도 고객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기업은 성장하지 못한다. 전문인력이 있어도 파일럿 설비와 첫 구매가 없으면 협상은 계약서에서 끝난다. 장기펀드도 기술 마일스톤 없이 기다리기만 하면 정책성 자금 손실을 늦출 뿐이다. 중국 대학 사례를 평가할 때 펀드 규모나 원사 숫자보다 실제 산업고객, 후속 민간투자, 반복매출을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대학 벤처투자 세 가지 리스크

대학이 투자에 참여하면 세 가지 리스크가 생긴다. 첫째는 선택 편향이다. 유명 교수와 대학이 선호하는 기술이 실제 시장수요보다 과대평가될 수 있다. 둘째는 내부거래와 이해상충이다. 교수가 심사에 영향을 미치고, 대학 장비와 학생인력이 창업기업에 부당하게 이전될 수 있다. 셋째는 회수규율 약화다. 지방정부와 대학의 체면 때문에 실패 프로젝트를 중단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학계 펀드는 외부 전문 운용사, 독립 투자위원회, 단계별 자금집행, 교수 겸직·지분 공개, 중단 기준을 갖춰야 한다. 대학 역할은 좋은 기술과 인재를 발견하고 장기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데 있고, 투자수익률을 판단하는 일은 전문 운용사가 맡는 것이 원칙이다. 중국 대학 펀드의 진정한 경쟁력도 돈 출처가 대학이라는 데 있지 않다. 연구실 정보와 산업자본, 투자규율을 얼마나 투명하게 연결하느냐에 있다.

10개 대학, 네 가지 사업화 모델

중국 대학 사례는 순위보다 경로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10개 대학은 자산·권리관리, 장기펀드, 개념검증·전문인력, 지역혁신공간이라는 네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1. 칭화대: 자산관리와 기술이전을 분리한다

칭화대(清华大学)는 대학 자산관리회사 산하 기능형 플랫폼인 화쿵기술이전회사(华控技术?移)를 통해 연구성과를 발굴하고 라이선스, 기술출자, 창업기업 지원과 사후관리를 수행한다. 화쿵기술이전회사는 40여개 학과·연구조직에서 35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칭화대 귀속 지분을 관리하면서 기업 자금조달과 입지, 경영을 지원한다. 즈푸AI 같은 핵심 기업도 이 체계의 지원 대상이다. 기술을 찾는 조직, 대학 지분을 관리하는 조직, 투자·성장지원 기능을 구분한 사례다.

2. 중국과학기술대: 대학 기술을 허페이 산업으로 이동시킨다

중국과학기술대(中国科学技术大学)의 허페이선진기술연구원(合肥先进技术研究院)은 대학과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만든 지역 사업화 플랫폼이다. 2023년 공개자료 기준 334개 기업을 보육했고, 5개 산업펀드 약 4억1800만달러를 조성했으며, 입주기업이 약 1억8500만달러 후속조달을 받도록 지원했다. 대학 기술과 지방 산업단지, 국유자본과 민간펀드가 한 공간에서 움직인다.

3. 동남대: 연구자 보상과 지분관리를 규칙으로 만든다

동남대(东南大学)는 연구관리부서, 자산관리 부서와 회사, 대학과학기술단지가 공동으로 교수팀을 지원한다. 기술 양도·라이선스와 기술출자 수익을 연구자에게 높은 비율로 배분하고, 기술출자로 취득한 지분은 별도 자산관리체계에서 다룬다. 조직은 나뉘어 있지만 교수와 기업에는 공동창구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4. 베이징대: 12년짜리 펀드가 원천기술을 기다린다

베이징대(北京大学)의 위안페이 과학기술혁신펀드(元培科技创新基金)는 약 1억4750만달러 규모, 최장 12년 존속기간으로 설계됐다. 대학과 베이징 과학기술혁신기금, 전문 운용사가 공동으로 만들었으며 집적회로, 바이오, 신소재와 로봇 등 원천기술에 투자한다. 대학 기술의 긴 검증 기간을 일반 벤처펀드보다 오래 기다리는 구조다.

5. 푸단대: 모펀드와 직접투자를 병행한다

푸단대(?旦大学)는 목표 규모 약 1억4720만달러 연구성과 사업화 모펀드를 조성 중이며, 별도로 같은 목표 규모 직접투자펀드를 출범시켰다. 모펀드의 1차 결성액은 약 7360만달러를 넘었다. 모펀드는 전문 운용사와 산업자본을 대학 생태계로 끌어들이고, 직접투자펀드는 생명건강, 집적회로, 인공지능, 신소재·신에너지 초기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대학 기술이 한 지역에만 머물지 않도록 광저우 등 다른 지방정부와도 펀드를 연결한다.

6. 우한이공대: 지방 국유자본과 기술 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한다

우한이공대(武汉理工大学)는 장강산업그룹과 목표 약 1억4720만달러의 연구성과 사업화 펀드를 만들고, 1차 약 1470만달러를 결성해 2026년 실질 운용에 들어갔다. 대학이 축적한 기술 프로젝트와 지방 국유자본, 개념검증센터를 연결해 재료·자동차·교통·선박 기술을 지역산업으로 이전하는 모델이다.

7. 상하이교통대: 특허보다 개념검증에서 시작한다

상하이교통대(上海交通大学)는 개념검증센터 연합체를 출범시키고, 10개 이상 분센터와 약 1470만달러 이상 검증자금을 구축·통합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100개 이상 기술을 검증하고 1000명 이상 혁신창업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특허를 기업에 넘기기 전에 기술 가능성, 고객 문제, 시제품과 창업팀을 먼저 확인하는 접근이다.

8. 저장대: 교수 대신 전문 전담관이 기업을 찾는다

저장대(浙江大学)는 47명 연구성과 사업화 전담관을 모든 이공계 학과에 배치했다. 90% 이상이 석사 이상 전문인력으로, 기술 발굴, 기업 수요 확인, 협상과 후속사업화를 맡는다. 교수에게 계약서 작성과 기업 발굴을 맡기지 않고 시장전문가가 연구실로 들어간 사례다.

9. 퉁지대: 개념검증과 도시 실증을 결합한다

퉁지대(同济大学)는 자동차·교통·건설 분야 연구 기반을 활용해 개념검증과 도시 실증을 연결한다. 캠퍼스와 도시의 도로·교량·건설 인프라 등 실제 환경을 초기기술의 실증공간으로 활용하고, 대학과학기술단지와 종자자금, 산업고객을 붙인다. 공간을 사무실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환경을 제공하는 모델이다.

10. 시안교통대: 캠퍼스를 지역산업의 연구도시로 확장한다

시안교통대(西安交通大学)의 중국서부과학기술혁신항(中国西部科技创新港)은 29개 연구원, 300개가 넘는 연구·산업거점, 약 3만명 인재가 모이는 개방형 연구도시다. 교육부와 산시성, 시안교통대와 지역개발 주체가 공동으로 조성했고, 대학·기업·연구기관이 같은 공간에서 공동연구와 사업화를 수행한다. 대학과학기술단지를 캠퍼스 부속시설이 아니라 서부지역 산업혁신 인프라로 확장한 사례다.

대학별 순위보다 빠진 고리를 봐야 한다

칭화대 브랜드와 동문 네트워크를 모든 대학이 복제할 수 없고, 중국서부과학기술혁신항의 대규모 공간을 모든 도시가 만들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각 대학이 자신 강점을 기준으로 사업화 경로의 빈칸을 메웠다는 점이다. 연구력이 강하면 개념검증센터와 전문팀을, 제조 기반이 강하면 지역 연구원과 산업펀드를, 동문자본이 강하면 장기펀드를 붙인다.

원사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한국에 더 높은 명예칭호를 새로 만들자는 결론이 아니다. 최고 전문가가 지역기업의 구체적 난제에 장기간 참여하고, 대학 연구팀과 대기업 엔지니어, 투자자를 연결하는 실행구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원사가 길을 열 수는 있지만 시장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ANCHOR, TIPS, 창업중심대학, 캠퍼스혁신파크는 중국 시스템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하편에서는 두 나라의 제도를 비교하고 정부·대학·지자체·대기업·금융권이 실제로 바꿔야 할 지점을 살펴본다.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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