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과학기술원(GIST·총장 임기철)은 하민정 신소재공학과 교수팀이 소재 자체가 복합적인 힘을 방향별로 구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적용한 '촉각 체화형(Perception-Embodied) 소프트 로봇'을 구현했다고 4일 밝혔다.
사람처럼 자유롭게 휘어지고 변형되는 소프트 로봇이 다양한 형태의 물체를 정밀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사람 피부처럼 접촉과 굽힘 등 서로 다른 다양한 기계적 자극을 구분할 수 있는 촉각 기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기존 촉각 센서는 관절이 휘어질 때 발생하는 신호와 외부 물체가 닿을 때 발생하는 신호가 서로 섞이는 간섭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여러 종류의 센서를 촘촘하게 배열하거나 복잡한 데이터 연산으로 신호를 분리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로봇의 유연성과 운동 자유도가 떨어지고 실시간 제어에도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자기장을 이용해 나노와이어의 방향을 원하는 축으로 정렬하고, 그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힘에 선택적으로 반응하도록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는 막대 모양의 나노 크기 소재인 나노와이어를 활용했다. 나노와이어는 얇고 긴 구조 덕분에 외부 기계적 자극이 집중되어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다.

연구팀이 사용한 티탄산바륨(BaTiO₃) 나노와이어는 힘이나 압력을 받으면 전기 신호를 만들어내는 압전(壓電) 특성을 지니고 있어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감지할 수 있다. 여기에 자기장에 반응하는 산화철(Fe₃O₄) 나노입자를 표면에 입혀 자기-압전 나노와이어를 제작했다. 이어 이를 형상기억고분자에 고르게 분산시킨 뒤 외부 자기장을 이용해 원하는 방향으로 정렬했다.
이렇게 정렬한 나노와이어는 고분자 내부에 고정돼 배열 방향을 유지하며, 특정 방향에서 가해지는 힘에만 선택적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수직(z축) 방향으로 정렬한 나노와이어 구조는 외부 접촉에 의한 수직 압력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수평(x축) 방향으로 정렬한 구조는 관절이 휘어질 때 발생하는 굽힘 힘에 선택적으로 반응했다. 즉, 여러 종류의 센서를 따로 사용하거나 복잡한 연산으로 신호를 분리하지 않아도 정렬된 나노와이어 구조만으로 접촉과 굽힘 신호를 물리적으로 분리(디커플링) 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나아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정렬한 나노와이어를 직각으로 배치해 x·y·z축에서 동시에 작용하는 복합적인 3차원 힘의 방향까지 구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기존처럼 감각 부품과 구동 부품을 따로 조립하는 방식이 아니라, 로봇 몸체 자체가 힘을 감지하고 움직이는 감각-구동 일체형 구조를 구현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적용한 촉각 체화형 소프트 로봇을 제작해 실제 자율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로봇은 스스로 접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신의 굽힘 신호와 물체에 닿았을 때 발생하는 접촉 신호를 서로 구분하며 동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유해 화학 물질을 격리하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여러 종류의 센서와 복잡한 데이터 처리 없이도 접촉(압력)과 굽힘(변형)처럼 동시에 발생하는 복합적인 힘의 방향을 실시간으로 구별한다. 촉각 정보를 바탕으로 로봇이 스스로 다음 동작을 제어하는 '폐루프 피드백(closed-loop feedback)' 기능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연구 성과는 향후 △밀폐·비정형 환경 탐사 로봇 △스마트 전자 의수·의족 △원격 햅틱 인터페이스 △차세대 웨어러블 로봇 등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이 과정은 외부 카메라나 복잡한 계산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로봇 내부에 내장된 촉각 정보만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차세대 자율 소프트 로봇 구현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민정 교수는 “이번 연구는 다종의 센서와 대규모 연산에 의존하던 기존 로봇 감각 시스템과 달리, 소재 자체가 복합적인 힘을 구분하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반복적인 변형에도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시각 정보 확보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높은 정확도로 촉각을 인식할 수 있어 실시간 자율 로봇 제어 기술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남광주=김한식 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