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실험실에서 완벽하게 작동하고 복제까지 가능한 새로운 바이러스를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고 미국 연구진이 밝혔다. AI가 바이러스의 전체 게놈(유전체)을 성공적으로 설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6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이번 연구로 탄생한 16개의 신종 바이러스는 특정 박테리아만 감염시키도록 설계된 '박테리오파지'의 일종으로, 인체에는 아무런 해를 미치지 않는다.
학계는 이번 연구가 난치성 질환 치료의 새로운 시대를 열 “매우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하는 한편, AI 기반 바이러스 설계가 초래할 생물 안보 및 안전 문제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함께 내놓고 있다.
신종 바이러스 설계에 활용된 AI 모델은 'Evo1'과 'Evo2'로, 스탠포드 대학교·아크 인스티튜트·엔비디아 등이 공동 개발한 유전체(DNA) 언어 모델이다. 텍스트 단어를 예측하는 대신 바이러스, 박테리아, 식물, 인간의 유전 정보 데이터를 학습해 생명체의 유전자 배열 패턴을 예측하도록 설계됐다.
스탠퍼드 연구진은 AI가 도출한 최적의 설계안 302개를 선별해 실험실에서 합성했으며, 이 중 16개가 대장균을 효과적으로 사멸시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를 이끈 스탠퍼드 대학교 브라이언 히 조교수는 “이는 생성형 AI로 설계 가능한 복잡성의 다음 단계”라며 “세포 내에서 스스로 복제하고 제 기능을 수행하는 완전한 게놈을 생성형 AI로 디자인한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박테리아 내 내성균 문제를 해결하는 치료제 개발 등 항생제 대체 물질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생명체를 컴퓨터로 디자인하는 합성생물학 분야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면서도, 악용 가능성에 대해 강력히 경고했다.
존스홉킨스 보건안보센터의 토마스 잉글스비 박사와 모리츠 한케 박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시사평론에서 “이번 연구 결과는 시급한 생물 안전 및 안보 문제를 제기한다“”며, “생성형 AI를 통한 바이러스 게놈 설계 기술이 악의적으로 이용되어 신종 질병을 만들어내는 상황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진 역시 이러한 위험성을 인지하여 학습 데이터베이스에서 인간 등 복잡한 유기체에 감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정보를 엄격히 배제했으며, 인체에 무해한 파지 바이러스만을 대상으로 보안이 강화된 연구실 내에서만 실험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바이러스 자체는 생명체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AI가 완전히 살아있는 세포 유전체를 설계하기까지는 추가적인 기술적 도약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에서 설계된 파지의 유전자 코드는 약 5400개 염기쌍 규모다. 참고로 가장 작은 단세포 생물체의 게놈은 약 50만 개, 인간 게놈은 약 30억 개 염기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진은 복잡한 유기체에 대한 AI 설계에 대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불가능한 영역은 아니다”라며 향후 지속적인 연구 의지를 보였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