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반도체 특별법' 시행, 산업 투자와 혁신 앞당기는 계기

박건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박건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인공지능(AI)이 산업과 일상 곳곳으로 스며들면서 반도체를 둘러싼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기반으로 생산 시설 투자를 지원해 왔고, 유럽연합(EU)은 지난 6월 수요 촉진까지 포함한 Chips Act 2.0을 제안했다. 일본도 최근 성장전략에서 AI·반도체를 전략 분야로 제시하며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역시 반도체 자립을 핵심 국가전략으로 삼고, 대규모 정책자금을 통해 생산능력 확대와 핵심 기술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주요국이 경쟁적으로 법과 정책, 재정 지원을 잇달아 보강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반도체는 대규모 설비투자와 긴 기술개발 기간을 요구하고, 전력과 용수, 도로 같은 기반 시설과 전문인력까지 갖춰져야 비로소 운영할 수 있는 산업이다. 기업 투자와 혁신이 경쟁력의 출발점이라면, 그것을 흔들림 없이 받쳐 주는 제도는 또 하나의 경쟁 조건이다.

11일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됐다. 지난 1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이를 AI 시대 경쟁력을 높이는 제도적 출발점으로 평가한 바 있다. 이번 시행은 시행령을 통해 정책 추진체계와 클러스터 지원, 산업기반시설 확충, 전문인력 양성 등 법에서 위임한 실행기준이 구체화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제 반도체 지원정책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실행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첫째, 정책 추진체계가 보다 명확해졌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위원회를 중심으로 기본계획과 실행계획을 심의하고 산업통상부의 반도체혁신성장지원단을 통해 정책 추진을 지원하도록 했다. 정책 방향과 이행체계가 법령으로 구체화되면서 기업도 보다 안정적으로 중장기 투자와 기술개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둘째, 클러스터와 산업기반시설 지원이 구체화됐다. 산업기반시설 조성·운영 비용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총사업비의 50~100%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했고, 이중화시설은 전액 지원도 가능하다. 전력·용수·도로 등 핵심 기반시설은 국가 계획과 연계하고, 인허가 특례도 마련했다. 그동안 개별 기업이 감당해야 했던 기반시설 문제를 국가 정책의 영역으로 옮겨놓은 셈이다. 반도체 투자 속도와 예측 가능성을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지원 범위가 반도체 생태계 전반으로 확대됐다. 소재·부품·장비와 시스템반도체 육성을 위한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파운드리 산업 발전과 연구개발단지 조성, 전문인력 양성체계도 제도화했다. 메모리를 넘어 설계, 제조, 후공정, 소부장까지 산업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지원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제도를 얼마나 신속하고 일관되게 실행하느냐다. 반도체 산업은 기술과 시장의 변화가 빠르고 글로벌 투자 경쟁도 치열한 만큼 좋은 제도도 적기에 집행되지 못하면 정책 효과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기본계획과 실행계획 수립은 물론 기반시설 구축과 지원사업, 인허가 특례 등 후속 조치가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 동시에 실제 투자와 기술개발 과정에서 제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현장에서 확인되는 애로사항은 신속히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

협회도 정부와 산업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 소재·부품·장비부터 설계와 제조, 후공정까지 반도체 산업 전 분야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고, 현장의 애로와 정책 수요가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반도체는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산업이자 경제 안보와 직결된 전략산업이다. 이제 남은 일은 제도의 취지를 현장의 변화와 성과로 빠르게 연결하는 것이다. 특별법 시행이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소재·부품·장비에서 설계·제조·후공정에 이르기까지 우리 반도체 생태계 전체가 함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박건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gspark@ksi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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