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한국 미술사를 전공하고 국립광주박물관 관장을 역임한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문화유산 자료와 역사에 대한 사실관계와 고증 문제, 데이터의 정확성이 화제가 됐다. 대화를 나누면서 K콘텐츠가 세계시장에서 한류를 지속 확장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중요하게 본 것은 K콘텐츠가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다.
한류의 경쟁력은 '한국다움'에 있다. 우리의 문화와 역사, 설화와 신화, 미술과 음악, 건축, 생활문화 등은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고 모방하기 어려운 문화자산이다. K콘텐츠의 소중한 원천이자 새로운 콘텐츠 IP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콘텐츠 IP는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영화, 방송 등 장르를 넘나들고, 패션과 뷰티 등 연관산업으로 확장되면서 콘텐츠산업 경쟁력을 높인다.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이러한 IP 비즈니스의 확장 속도와 범위가 더욱 커질 것이다.
역사와 문화유산을 다루는 콘텐츠에는 사실관계와 고증의 문제가 뒤따른다. 드라마, 방송,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서 역사적 사실이나 전통문화가 잘못 표현돼 논란이 된 사례가 계속 있었다. 과거에는 오류가 있는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작품 이용자에 한정됐다면, AI 시대에는 다른 상황이 예견된다. 잘못된 이미지와 정보가 소셜미디어와 블로그, 웹사이트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복제되고, AI의 학습과 검색, 생성 과정에 활용될 수 있다.
잘못된 데이터가 새로운 오류를 만들고, 그 오류가 다시 축적되는 '왜곡의 나선형 확산'이 발생할 수 있다. AI가 한국 전통문화에 존재하지 않았던 복식이나 건축물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거나, 시대가 다른 문화양식을 같은 시대에 있었던 것처럼 나타낼 수 있다. 다른 나라의 문화요소가 한국 전통문화로 잘못 제시될 가능성도 있다. '그럴싸한 가짜'가 넘쳐날 수 있다.
물론 콘텐츠 창작에는 상상력과 변형의 자유가 있다. 다만 '사실에 바탕을 두고 창작적으로 변형하는 것'과 '잘못된 자료를 사실이라고 믿고 작품을 만드는 것'은 구분돼야 한다. 후자는 콘텐츠 신뢰성 문제와 연결된다. 특히 해외에서 K콘텐츠는 한국 역사와 문화를 접하는 주요 창구다. 드라마,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한복과 같은 K문화의 상징을 배우고 한류를 체험한다. 따라서 문화적 오류가 반복되면 개별 작품의 문제를 넘어 한국 문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확한 자료에 바탕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작품 품질뿐 아니라 국가 브랜드와 연결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콘텐츠 창작자가 신뢰할 수 있는 문화자산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 문화기관에 흩어져 있는 자료를 연계하고, 쉽게 찾아보고 활용할 수 있도록 잘 구조화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 검증을 통해 데이터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문화유산과 역사 연구도 지금보다 훨씬 폭넓고 깊어질 필요가 있다. 문화기관 수장고에는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 않은 유물이 많고, 지역에는 기록되지 않은 설화나 생활문화, 인물과 사건이 적지 않다. 거시적 연구뿐 아니라 미시적 연구도 확대돼야 한다. 연구 결과도 AI가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구조화된 데이터로 축적할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이나 유물이 있다고 하여 저절로 콘텐츠 IP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는 문화유산과 역사를 연구하고 해석한다면, 콘텐츠 창작자는 그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와 캐릭터, 세계관을 만든다. 두 영역이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K콘텐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전문가의 고증 지원체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증을 통해 K콘텐츠의 신뢰성과 완성도 제고에 이바지할 것이다.
조현래 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특임교수·前 한국콘텐츠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