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산업사슬에 책임자를 둔다…중국 '산업사슬 책임제'는 도시를 어떻게 움직이나

[기고·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 공급망 공백·기업유치·정책·인재를 한 장 산업지도와 책임체계로 묶는 지방정부 방식

산업정책이 실패하는 흔한 이유는 부처와 기관이 제각각 움직이기 때문이다. 기업유치는 투자부서가, 연구개발은 과학기술부서가, 인력은 교육·인사부서가, 자금은 재정·금융부서가 맡는다. 공급망 공백을 해결하려 해도 누가 최종 책임을 지는지 불명확하다.

중국 지방정부는 이 문제를 산업사슬 책임제(链长制)로 풀어 왔다. 시장·서기·부시장 등 지방정부 책임자가 특정 산업사슬 '체인장'이 되고, 전담부서·전문가·핵심기업·대학·펀드를 묶어 공급망 공백과 기업문제를 관리한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산업사슬 책임제 본질은 공무원에게 산업전문가라는 명함을 주는 데 있지 않고, 흩어진 정책수단을 하나의 공급망 목표와 책임자 아래에 묶는 데 있다.

[테크 차이나] 산업사슬에 책임자를 둔다…중국 '산업사슬 책임제'는 도시를 어떻게 움직이나
‘산업사슬’은 업종목록이 아니라 연결관계다

중국어의 产业链(산업사슬)은 원료·부품·장비·제조·서비스·고객으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을 뜻한다. 链长(체인장)은 특정 산업사슬을 담당하는 지방정부 책임자다. 제도는 2017년 전후 창사 등 지방에서 시작돼 2019년 저장성의 전면 도입, 2020년 중앙차원 공급망 안정정책을 거치며 전국으로 확산됐다.

체인장은 기업을 직접 경영하지 않는다. 산업지도와 기업목록을 만들고, 취약한 고리와 필요한 프로젝트를 정의하며, 부서 간 문제를 조정한다. 지역마다 '한 산업사슬, 한 책임자, 한 전담팀, 한 정책, 한 계획' 같은 운영방식을 사용한다.

핵심은 단순한 담당부서 지정이 아니다. 투자유치, 기술개발, 토지·환경, 인재, 금융, 조달과 규제 의사결정을 같은 산업목표로 정렬한다. 기업이 여러 부서를 찾아다니는 대신 전담팀이 문제를 모아 책임자에게 올리는 구조다.

첫 단계는 ‘산업사슬 지도’를 만드는 일이다

산업사슬 책임제는 지역이 가진 기업을 나열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원료·소재·핵심부품·장비·소프트웨어·완성품·서비스와 고객을 세분화하고, 각 고리에 있는 기업과 연구기관, 기술·인재·자본을 표시한다.

그다음 '부족한 고리'와 '강한 고리'를 구분한다. 지역에 반도체 설계기업은 많지만 제조·패키징이 부족한지, 전기차 완성차는 있지만 차량용 칩과 소프트웨어가 약한지, 바이오 연구는 강하지만 임상·생산과 판매채널이 없는지를 본다.

지도는 정책 우선순위를 바꾼다. 모든 기업에 같은 보조금을 주기보다 공급망 전체 병목을 해결하는 프로젝트와 기업에 자원을 집중한다. 기존 강점을 키우는 '강한 고리', 빠진 부분을 채우는 '보완 고리', 끊길 위험을 줄이는 '안정 고리'가 구분된다.

체인장은 부서 간 거래비용을 줄인다

기업 문제는 한 부서 권한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공장을 지으려면 토지·환경·에너지·건설 허가가 필요하고, 연구개발에는 대학·장비·인재와 펀드가 필요하다. 첫 고객과 공급망 진입은 국유기업·대기업과 조달기관이 결정한다.

체인장과 전담팀은 이 문제를 '기업 애로'가 아니라 '산업사슬 병목'으로 올린다. 핵심 프로젝트 승인과 기반 시설, 인재정책, 펀드와 대출을 패키지로 조정한다. 기업 한 곳을 돕는 것이 산업 전체 공백을 메우는지 확인한다.

인민일보가 소개한 지방사례에서는 '한 체인장, 한 전담반, 한 주무부서, 한 정책' 방식으로 프로젝트와 기업문제를 추적한다. 이 구조는 중국 지방정부의 강한 행정동원력을 산업 단위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기업유치는 ‘공장 한 곳’에서 ‘생태계 한 묶음’으로 바뀐다

과거 지방정부 투자유치는 대기업 공장 한 곳을 데려오는 데 집중했다. 산업사슬 책임제는 앵커기업 주변 공급사·연구기관·물류·서비스와 인재를 함께 유치한다.

배터리 공장을 유치하면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장비·재활용과 물류를, 로봇 기업을 유치하면 감속기·모터·센서·제어기·손·시험인증과 소프트웨어를 함께 본다. 투자유치 목록이 산업사슬 빈칸과 연결된다.

이 방식은 기업이 지역에 정착할 가능성을 높인다. 공급사와 고객, 인재·공동장비가 가까우면 이전비용이 커져 단순 보조금이 끝나도 남을 유인이 생긴다. 반대로 지방정부가 산업사슬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유행산업의 공장과 펀드를 중복 조성할 수 있다.

자본·인재·기술정책도 체인별로 배치된다

체인장은 정부유도기금과 은행, 보증기관을 산업사슬에 연결한다. 소재·부품 기업은 매출과 담보가 부족하지만 앵커기업 공급망 계획과 발주정보를 확인하면 금융기관이 위험을 더 정확히 볼 수 있다.

대학·연구기관과 제조업혁신센터, 파일럿 플랫폼도 체인별 공통기술을 맡는다. 인재정책은 일반적인 고급인재 유치보다 특정 공정·소프트웨어·인증 분야 인력을 목표로 한다.

지방정부가 말하는 '산업사슬·혁신사슬·자금사슬·인재사슬의 융합'은 이 구조를 뜻한다. 정책수단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공급망 문제에 배치하는 것이다.

중앙정부 공급망안전과 지방 체인장제가 만난다

2026년 중국은 공급망안전 관리체계를 강화하는 행정규정을 마련했다. 국가 차원에서는 주요 산업과 핵심제품 공급망 위험을 점검하고, 부처와 지역 대응을 조정한다. 지방 산업사슬 책임제는 기업과 프로젝트 수준 정보를 제공하고 현장문제를 해결한다.

중앙은 국가안보와 전략물자, 전국통일시장을 보고, 지방은 산업유치와 지역경제를 본다. 두 목표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이 지역기업 보호와 공급망 내재화를 과도하게 추구하면 전국적 분업과 경쟁을 해칠 수 있다.

산업사슬 책임제 다섯 가지 병목

첫째는 공무원 전문성이다. 산업사슬이 복잡한데 책임자가 자주 바뀌거나 보고서에 의존하면 잘못된 기업과 기술에 자원을 배분할 수 있다.

둘째는 행정 과잉이다. 정부가 기업 구매·투자·기술선택까지 개입하면 시장 자율성과 경쟁을 약화한다.

셋째는 지방보호다. 지역 안에서 공급망을 완결하려는 목표가 다른 지역의 더 효율적인 기업을 배제할 수 있다.

넷째는 데이터 진실성이다. 기업은 지원을 받기 위해 시장점유율과 기술 수준을 과장하고, 부서는 성과를 위해 투자액·프로젝트 수를 부풀릴 수 있다.

다섯째는 책임 모호성이다. 체인장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처럼 보여도 투자 실패와 기업퇴출 시 어느 부서가 손실을 부담하는지 불명확할 수 있다.

체인장제 성과는 기업 수보다 ‘빈칸을 메웠는가’다

산업사슬 책임제는 많은 기업을 유치했다는 숫자로 평가하면 왜곡되기 쉽다. 핵심 원료·장비·소프트웨어의 공급 중단 위험이 줄었는지, 지역 내 기업 거래와 공동개발이 늘었는지, 외부 충격 때 대체조달이 가능한지를 봐야 한다. 체인장이 기업방문과 회의 횟수만 늘리면 행정의 가시성은 높아져도 공급망 회복력은 바뀌지 않는다.

도시별 산업사슬 지도도 정기적으로 갱신돼야 한다. 기술과 시장이 빠르게 변하는데 고정된 기업목록으로 지원하면 이미 사라진 병목에 자원을 투입할 수 있다. 공급업체 생산능력, 특허·표준, 재무상태, 해외의존도와 물류경로를 데이터로 연결하고, 기업이 스스로 오류를 수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체인장제는 위기 대응에서 장점이 있지만 평상시에는 시장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특정 기업을 보호하기보다 공동 시험시설, 인재·금융·규제 개선처럼 여러 기업이 함께 사용하는 인프라에 집중하는 편이 지속 가능하다. 정부가 공급계약과 가격까지 조정하면 경쟁과 혁신을 해칠 수 있다.

한국 기업은 중국 도시 ‘사슬 지도’를 진출 전략으로 써야 한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 투자할 때는 세제와 임대료만 비교하지 말고, 해당 도시가 어떤 산업사슬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체인장의 책임부서, 주도기업, 핵심 협력사, 공동시험시설, 펀드와 조달정책을 보면 도시가 실제로 무엇을 키우려는지 알 수 있다.

부품·장비 기업은 지역 공급망 빈칸과 대체 수요를 파악해 진입할 수 있지만, 현지화·기술이전·고용 조건을 함께 봐야 한다. 중국 도시 체인장제는 시장기회를 만들 수 있는 동시에 특정 주도기업과 지역 공급망에 대한 의존을 높일 수 있다. 고객 다변화와 지식재산권 분리를 전제로 해야 한다.

한국 지자체와 산업협회도 중국 도시별 산업사슬 지도를 상시 추적할 필요가 있다. 자매도시 관계보다 우리 지역의 핵심산업과 중국 도시의 기능이 어디서 협력하고 충돌하는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마다 같은 제도를 복제하면 체인장제가 약해진다

산업사슬 책임제는 지역마다 다른 산업기반을 전제로 해야 한다. 모든 도시가 반도체·AI·로봇을 핵심 사슬로 지정하면 기업 유치와 펀드가 중복되고, 지역의 기존 중소기업과 인재가 소외될 수 있다. 지역이 잘하는 공정과 부품, 물류·시장 기능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다른 도시와 연결을 산업지도에 포함해야 한다.

체인장제의 진정한 단위는 행정구역보다 공급망일 수 있다. 원료·부품·완성품·고객이 여러 성에 걸쳐 있다면 광역 협의체와 데이터 공유가 필요하다. 한 도시 실적을 위해 기업과 생산능력을 가두면 전국 통일시장을 해칠 수 있다. 중앙의 공급망안전 정책과 지방의 산업유치 정책 사이에 조정 규칙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은 ‘산업담당관’보다 공급망 문제 책임자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

에도 국가첨단전략산업, 소부장 특화단지, 산업클러스터와 공급망 안정 정책이 있다. 그러나 중앙부처·지자체·대학·테크노파크·대기업이 각자 사업과 성과지표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산업별 공급망 지도를 기업명 목록이 아니라 핵심기술·대체가능성·수입의존·공정·인증·인재와 금융까지 연결해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는 '산업사슬 책임자'라는 직함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말고 해결할 병목과 기한, 민간 의견과 공개성과를 명확히 해야 한다.

대기업은 공급망 정보를 정부에 제공하되 경쟁사와 협력사 영업비밀이 침해되지 않도록 범위를 정해야 한다. 금융권은 지방정부의 추천보다 실제 주문·기술검증과 고객다변화를 확인해야 한다.

대학은 지역 주력산업의 공통기술과 인재를 공급하되 특정기업 용역기관으로 머물지 않아야 한다. 스타트업은 지방정부의 '보완 고리'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시장성 증거로 착각하지 말고 외부고객을 확보해야 한다.

중국의 산업사슬 책임제에서 배울 것은 시장과 부처를 행정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다. 공급망 공백을 한눈에 보고, 여러 정책기관 가운데 누가 언제까지 해결할지 책임을 분명히 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산업전략을 지원사업 목록으로 관리할 것인가, 아니면 공급망의 한 병목을 끝까지 추적하는 책임체계로 바꿀 것인가.

박지민 36kr코리아 공동 대표 3guowill@krstar.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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