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에서 불순물 발생하자 450℃·400℃로 조건 조정…단일상 신소재 합성 성공

거대언어모델(LLM)이 수천 편의 논문에서 기존 실험 방법을 찾아 신소재의 합성 조건을 제안하고 실제 실험 결과를 반영해 새로운 조건을 다시 제시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신소재 개발 과정에서 반복되는 실험적 시행착오를 줄이고 소재 탐색부터 실제 합성까지 AI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성균관대학교는 신소재공학부 조성범 교수 연구팀이 아주대학교 박진성·조현석 교수 연구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주 리(Ju Li)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LLM을 활용한 '폐루프(Closed-loop) 신소재 합성 플래닝 플랫폼'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최근 소재 연구에서는 컴퓨터 계산을 활용해 우수한 성능이 예상되는 새로운 물질 후보를 빠르게 찾아내고 있다. 하지만 계산으로 찾아낸 물질을 실제로 합성하려면 어떤 전구체를 사용하고 어느 온도에서 얼마 동안 반응시킬지 등 구체적인 조건을 별도로 찾아야 한다.
특히 기존에 합성 사례가 없는 새로운 물질은 직접 참고할 수 있는 실험 데이터가 부족해 연구자가 여러 조건을 반복적으로 변경하며 최적의 합성법을 찾아야 한다. 유망한 소재 후보를 찾더라도 이를 실제 물질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과 시행착오가 발생하는 이유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연구자들이 축적한 방대한 논문 정보를 LLM과 결합했다.
먼저 학술지에 출판된 4407편의 오픈액세스 고상합성 논문에서 목표 물질과 전구체, 합성 온도, 시간 등 핵심 합성 정보를 추출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이후 연구자가 원하는 물질과 합성 조건을 입력하면 데이터베이스에서 유사한 기존 합성 사례를 검색하고 이를 토대로 후보 레시피를 제안하도록 했다.
여기에는 검색증강생성(RAG) 기술이 적용됐다. AI가 자체적으로 보유한 정보에만 의존해 답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논문에서 유사한 합성 사례를 찾아 이를 근거로 새로운 실험 조건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AI가 제시한 레시피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제 논문에 보고된 합성 조건과 비교한 결과, 주요 합성 변수에서 5점 만점 기준 평균 4점 안팎을 기록했다.
연구팀은 플랫폼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신소재 합성에도 적용했다. 대상은 전고체 배터리용 전해질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옥시-셀레나이드(Oxy-selenide)'계 물질로, 미보고 후보를 포함해 AI가 제시한 조건을 실제 실험으로 검증했다.
초기 실험에서는 AI가 제안한 600℃ 조건에서 목표 물질이 아닌 여러 불순물상이 형성됐다. 연구팀은 이 실험 결과를 다시 AI에 입력해 합성 조건을 재설계했다. AI는 합성 온도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후속 레시피를 제시했으며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450℃와 400℃ 조건에서 순차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단 몇 차례의 검증만으로 불순물이 검출되지 않는 단일상 신소재 합성에 성공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AI가 최초 합성 조건을 한 차례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실험 결과를 다시 받아 다음 실험 조건을 제안하는 폐루프 구조를 구현했다는 점이다. 'AI의 합성 조건 제안→실험→결과 입력→조건 재설계→재실험'을 반복하면서 연구자와 AI가 함께 최적의 합성 조건을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이는 AI를 활용한 신소재 개발의 범위를 소재 후보 탐색에서 실제 합성 단계로 확장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기존에는 계산을 통해 유망한 소재를 빠르게 찾아내더라도 실제 합성 과정은 연구자의 경험과 반복적인 실험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했다. 이번 플랫폼은 방대한 문헌에 축적된 합성 지식과 실제 실험 결과를 연결해 이 과정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연구팀은 이러한 과정을 기존 요리법을 참고해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것에 비유했다. 기존 레시피를 토대로 처음 요리한 뒤 결과에 따라 온도나 재료 등의 조건을 바꾸는 것처럼, AI가 기존 논문에서 유사한 합성법을 찾아 제안하고 실제 실험 결과를 반영해 다음 조건을 다시 제시하는 방식이다.
향후 플랫폼이 고도화되면 연구자가 수많은 합성 조건을 처음부터 일일이 시험하는 대신 AI가 제안한 가능성 높은 조건을 중심으로 실험을 진행할 수 있어 신소재 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계산과 AI를 활용한 소재 탐색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후보 물질이 빠르게 발굴되는 가운데 실제 합성 단계에서 발생하는 연구 병목을 줄이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연구는 인간 연구자의 실험 경험과 AI의 방대한 문헌 활용 능력을 결합한 새로운 신소재 연구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향후 전고체 배터리 소재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신소재 합성 과정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 결과는 재료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Advanced Materials'에 게재됐으며, 연구 내용을 시각화한 이미지는 해당 호의 백커버(Back Cover)로 선정됐다.
권상희 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