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현 에이아이빅스랩 대표
715개 브랜드를 무대에 올렸는데 합격점을 받은 곳이 한 곳도 없었다. 나쁜 소식이자, 동시에 좋은 소식이다. 브랜드의 AI 경쟁력이 형편없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고, 아무도 이 경쟁에서 이기지 못해 아직 기회가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에이아이빅스랩은 식음료·프랜차이즈 30개 카테고리 715개 브랜드가 4대 생성형 AI(챗GPT·제미나이·퍼플렉시티·클로드)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를 조사한 AI 경쟁력 지수 'AIBIX'를 6일 발표했다. 지난 7월 20일부터 8월 4일까지 소비자가 묻는 방식 그대로 다양한 질문을 AI에 던지고, 답변에 어떤 브랜드가 얼마나 등장하는지를 100점 척도로 집계했다. 당초 종합점수가 80점을 넘으면 'AI 챔피언', 60점을 넘으면 'AI 리더'란 칭호를 부여하려 했다. 그러나 단 하나의 브랜드도 챔피언은커녕 리더 칭호조차 획득하지 못했다. 30개 카테고리 1위 브랜드의 평균 점수는 47.9점에 불과했다.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브랜드인데도 AI 경쟁력 점수는 채 50점이 안 된 것이다.
브랜드의 AI 경쟁력이 수준 이하라는 근거는 다른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측정 대상 브랜드 가운데 127개(17.8%)는 4개 AI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시장에서 판매되고 매대에 놓여 있지만 AI에게 물으면 존재하지 않는 브랜드가 여섯 곳 중 한 곳이라는 의미다. 반면 4개 AI 모두에 이름이 등장한 브랜드는 273개(38.2%)에 그쳤다. 315개(44%)는 어떤 AI에서는 존재하고, 어떤 AI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소비자가 어떤 AI를 켜느냐에 따라 아예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브랜드가 꽤 많다는 얘기다.
AI가 특정 브랜드를 언급하고 안 하고가 뭐 그리 대수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머지않은 장래에 AI에서의 브랜드 언급 여부는 매출과 직결될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5년 인터넷 이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의 44.5%가 생성형 AI를 이용해 본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보다 11.2%포인트 오른 수치다. 올해 이 수치는 더 크게 뛰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우리 주변에서 예전처럼 포털에서 검색하지 않고 AI에게 사고 싶은 상품, 가고 싶은 여행지를 묻는 사람을 흔하게 발견한다.
만약 “50대 남성이 운동할 때 사용할 썬크림 추천해줘”라고 물었을 때 AI가 이런저런 브랜드를 추천하고, 브랜드를 클릭하면 곧바로 유명 쇼핑몰로 연결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AI 답변에서 제외된 브랜드는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AI 안에서의 존재감은 광고처럼 예산을 넣어 당장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회사가 정확한 정보를 쌓고, 언론 보도와 소비자의 리뷰 같은 외부 기록이 그 정보와 어긋나지 않게 정리돼 AI가 그걸 인식하기까진 꽤 시간이 걸린다. 나무를 심는 데는 하루면 되지만 그늘을 만드는 데는 몇 해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아니, 우린 오랜 시간 많은 투자를 통해 엄청난 정보를 쌓았는데 무슨 말이냐”고 항변하는 브랜드도 있을 게다. 그러나 그 정보가 AI가 읽기 힘든 구조로 쌓여 있거나 AI의 접근 자체를 막고 있다면?
기업과 브랜드는 인터넷 시대가 개막된 이후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정보를 쌓아 왔지만 AI 시대엔 그 시대에 맞은 활동을 펼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기회의 창은 아직 열려 있다. 카테고리별 1등 브랜드의 AI 경쟁력 점수도 50점에 미치지 못한다는 건 아직 AI 경쟁력 무대에선 절대 강자가 없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힘을 들여도 성과를 내기가 쉽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해 대규모 마케팅 캠페인을 펴지 못하는 중소형 브랜드도 이 시장에서만큼은 머리끈을 다시 묶고 뛰어봄직하다.
당장 할 일은 거창하지 않다. 여러 종류의 AI에 우리 회사와 주력 제품을 물어보고 그 답을 읽어 보는 것이다. 홈페이지 등에서의 정보가 AI가 읽어낼 수 있는 구조인지도 점검해야 한다. 이미지가 아무리 많고 화려해도 AI 앞에선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더불어 언론 보도와 리뷰 같은 제3자 기록이 공식 정보와 어긋나지 않는지 맞춰도 봐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이미 가진 정보의 재고를 AI가 가져가도록 다시 쌓자는 얘기다.
AI는 기업의 실체를 보지 않는다. 세상에 남은 기록을 볼 뿐이다. 아직 아무도 이기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만 그 창이 오래 열려 있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