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록화·지역분쟁은 세계 경제의 성장세를 끌어내리고 있지만, 미국과 한국·대만 중심의 인공지능(AI) 반도체·데이터센터·전력 투자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 연동 레버리지 상품이 증시 급등락을 증폭한 요인으로 주목받으면서 과열된 AI 투자 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성장만큼이나 금융구조도 중요시해야 할 때다.
AI가 버블로 치닫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투자가 생산성·수익을 높이고 재투자를 부르는 선순환은 오히려 바라는 바다. 그러나 기술·정책이 만들어 낸 시대 서사와 승자독식의 산업 특성이 촉발한 시장 선점경쟁은 과도한 투자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기업의 AI 전환(AX)이 지연되거나 수요가 충분한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전력·반도체 공급이 차질을 빚거나 기술 진화로 GPU의 노후화가 가속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AI 투자의 금융화다. 빅테크는 초기에는 설비투자를 자체 자금으로 충당했다. 투자 규모가 현금흐름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자금 조달원을 회사채, 은행 대출, 리스, 사모 신용으로 다원화하고 있다. AI 투자 위험이 주주에 그치지 않고 채권자·은행·펀드로 이어질 수 있는 금융시스템이 형성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간 경험한 큰 버블은 형태는 달랐지만, 자산가격과 금융 레버리지가 결합하면서 경제학자 뮈르달의 순환·누적적 '순환적·누적적 인과'와 유사한 자기 강화 구조가 나타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금융완화나 새로운 투자처에 대한 낙관적 기대가 자산가격을 끌어올리고, 높아진 담보가치가 대출을 늘려 다시 가격·기대가 상승하다가 외부충격, 금융긴축으로 기대가 꺼지면 역방향으로 작동한다.
일본에서는 엔화 절상이 초래한 경기둔화에 대응한 금리 인하가 토지담보대출을 통해 자기 강화를 가져왔다가 정부의 긴축과 대출 억제가 버블의 방아쇠가 됐다. 미국에서는 닷컴버블과 9·11 이후 저금리 환경에서 주택담보대출이 MBS·CDO 등으로 증권화돼 세계 자금을 끌어드리다가 금리상승과 집값 폭락으로 금융위기를 맞이했다.
AI 낙관론은 투자와 금융시스템을 밀접하게 연결하면서 상승기에는 호황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반전 시에는 충격의 전파경로가 될 수 있다. 눈여겨볼 점은 금융시스템 내부의 증폭 장치다. IMF는 중동분쟁 초기 코스피가 하루 12% 급락한 과정에서 레버리지 ETF가 목표 배수에 맞추기 위해 장 마감 무렵에 집중한 기계적 재조정 매도가 요인이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여기에 증권사의 헤지 매매와 자산운용사·헤지펀드의 위험축소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동조 현상까지 겹치면 작은 변동은 걷잡을 수도 없이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 투자가 얼마나 많은 레버리지를 만들고 있고, 금융시스템과 얼마나 밀접히 연결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기우일 수도 있지만, 문제가 드러난 뒤 손보기에는 AI 성장이나 금융과의 결합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