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진 이후 원전의 우선 점검 대상을 제시해 주는 인공지능(AI) 모델이 국내에서 개발됐다. 지진에 따른 원전 내 곳곳의 흔들림을 예측하고, 위험 가능성까지 정량화해 알려준다. 매우 높은 수준의 정확도를 구현했다. 반도체 공정과 데이터센터 등에도 활용 가능할 전망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이호성)은 단 한 대 지진계 신호만으로 원전 내 여러 위치 흔들림을 실시간 예측하고, 위험 가능성을 정량화해 점검 우선순위를 선정하는 딥러닝 기술을 개발했다고 26일 밝혔다.
지진 후 어디를 먼저 확인해야 할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주요 설비에 센서를 설치하면 각 지점 진동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지만, 원전은 케이블 배선과 인허가, 방사선 구역 내 유지보수 등 제약이 있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전산 해석으로 센서가 없는 곳의 진동을 계산할 수 있지만 수 시간에서 수일이 소요된다.
이에 표준연 연구진은 단 한 대 지진계에서 측정한 지진파 신호를 AI가 분석해, 센서가 없는 원전 내부 139개 지점의 진동응답을 실시간으로 추론하는 가상센싱 기술을 개발했다. 모든 위치에 센서를 설치하지 않고도 지진의 영향을 크게 받은 곳을 좁힐 수 있고, 실제 지진 기록에서도 우수한 예측 성능을 확인했다.
각 위치의 진동응답이 위험 기준을 넘어설 가능성을 0~100%로 정량화했다. 안전, 위험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넘어, 위험 가능성이 높은 곳부터 순서를 매길 수 있다.
또 AI 설계 효율성·범용성도 대폭 높였다. 구조물 고유진동수를 바탕으로 최적의 AI 구조를 도출하는 설계식을 개발, 여러 모델을 반복적으로 설계·비교하던 시행착오를 줄였다. 이에 파라미터 수 기준으로 200배 이상 큰 최신 딥러닝 모델과 동등한 정확도를 보이면서, 계산 부담을 대폭 낮춰 제한된 환경에서도 활용 가능성을 높였다.
원전뿐 아니라 반도체 공장, 데이터센터, 플랜트 등 다양한 산업시설로 기술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했다.
이재범 선임연구원은 “안전 분야 AI는 정확한 예측뿐 아니라 판단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불확실한 상황을 알려 사람의 추가 판단을 돕는 신뢰할 수 있는 AI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