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반도체에 대한 '표적 관세' 도입을 공식 언급했다. 미국에서 생산하면 관세를 면제하고, 그렇지 않으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진입하는 대가로 관세를 물리겠다는 구상이다.
추후 관세 대상이 칩 자체에 그치지 않고 노트북, 게임기, 데이터센터용 서버 등 반도체를 탑재한 완제품까지 확대될 수 있어, 국내 업계가 촉각을 세우고 있다.
러트닉 장관은 2일(현지시간) CNBC 인터뷰에서 “앞으로 보게 될 것은 표적화되고 신중한 관세 정책”이라며 “미국에서 만들면 관세를 내지 않지만, 만들지 않으면 세계 최대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관세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보도한 '미국 내 반도체 투자와 관세 감면을 연동하는 구조'에 대해서도 “정확하다”고 확인했다.
의약품 관세 정책을 모델로 제시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러트닉 장관은 “미국에서 혁신 의약품을 제조한 기업에 관세 감면 혜택을 주고 최혜국대우(MFN)를 이행했다”며 “반도체 분야에서도 이러한 방식을 예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 내 생산 시설을 짓는 기업에는 관세 부담을 덜어 주고, 해외 생산에 의존하는 기업에는 고율 관세로 미국 시장 접근을 제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이 같은 압박이 이미 효과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러트닉 장관은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겠다는 1조2000억달러(약 1630조원) 규모의 투자 약속을 확보했다”며 “애리조나주에 2650억달러 규모 공장을 짓는 대만 TSMC와 2500억달러 규모 메모리 공장을 짓는 마이크론만 합쳐도 5000억달러가 넘는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라고 말했다.
미국 반도체 생산 비중은 취임 당시 2% 미만에서 40%를 향해 가고 있으며, 인텔이 성공하면 임기 말 50%까지 가능하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대만과의 무역 협정도 반도체 공급망 이전의 근거로 제시됐다. 러트닉 장관은 “미국과 대만의 무역 협정에서 대만은 반도체 생산의 40%를 미국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며 “다음 주 200억~300억달러 규모의 추가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대만 당국은 앞서 생산능력의 40%를 미국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목표치와 실제 이전 규모 사이 간극은 계속 논란이 될 전망이다.
한편 대통령실 관계자는 “미국의 반도체 관세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며 “정부는 관련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우리 기업에 불리한 영향이 없도록 미국 측과 긴밀히 협의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형두 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