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마이크론 팔아치운 서학개미…'수익률 3배' ETF에 4억달러 베팅

뉴욕증권거래소.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뉴욕증권거래소.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반도체 대형주 잇달아 매도하고 ‘속슬’ 매수

미국 반도체주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이들의 투자 방식이 개별 종목에서 업종 전체로 이동하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마이크론과 엔비디아, 샌디스크 등 주요 반도체주를 잇달아 매도했지만, 반도체지수의 하루 움직임을 3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인 SOXL에는 4억달러 넘는 자금을 투입했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은 1~4일 마이크론을 1억달러 이상 순매도했다. 샌디스크와 마벨테크놀로지도 각각 6861만달러와 4937만달러어치 팔았다. 엔비디아 순매도 규모는 1556만달러였다.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에서도 매도세가 나타났다. 국내 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4616만달러어치를 순매도했다. 지난달 말까지 누적 순매수액이 8억1097만달러였던 것과 대비된다.

반면 SOXL에는 같은 기간 4억3095만달러가 순유입됐다. 지난달 말 기준 국내 투자자의 SOXL 보유액은 52억3172만달러였다.

이 같은 자금 흐름은 국내 투자자들이 반도체 업황에 대한 전망 자체를 바꿨다기보다, 특정 기업의 주가 상승에 따른 부담을 줄이면서 산업 전체의 상승 가능성에는 계속 투자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이크론이나 엔비디아 같은 개별 종목은 기업 실적과 밸류에이션, 경쟁 구도에 따라 주가가 크게 움직일 수 있다. 반면 SOXL은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의 주가 움직임을 한데 묶어 반도체 업종에 대한 방향성에 베팅하는 수단이다.

최근 반도체주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실적 증가세가 정점을 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그러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와 메모리 수요 개선에 대한 기대가 유지되면서 반도체 업종 전체의 장기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는 아직 제한적이다.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에 대한 전체적인 매수세는 약해졌다.

지난 3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1908억달러로 한 달 전보다 150억달러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주가 상승에 따른 평가액 증가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8월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19억6000만달러로 7월의 46억4000만달러에서 절반 이상 줄었다.

자금이 향하는 곳도 달라지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단기 미국 국채 ETF인 SGOV를 9492만달러어치 순매수했고, 양자컴퓨터 기업 아이온큐와 월분배형 ETF인 JEPQ에도 각각 4728만달러와 3988만달러를 투입했다.

SOXL에 대한 집중 매수는 반도체 업종에 대한 강한 확신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위험을 감수하고 단기적인 업종 반등에 베팅하는 거래일 가능성도 있다.

SOXL은 기초지수의 일일 수익률을 3배로 추종하도록 설계돼 있다. 반도체주가 상승하면 수익률이 확대될 수 있지만 하락장에서는 손실 역시 빠르게 커진다. 장기간 보유할 경우 일일 수익률을 반복적으로 추종하는 구조 때문에 기초지수의 누적 수익률과 실제 ETF 수익률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국내 투자자들의 최근 거래는 미국 반도체 시장에서 '어떤 종목을 살 것인가'보다 '반도체 업종의 방향성에 얼마나 베팅할 것인가'가 새로운 투자 판단의 기준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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