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단 반도체 패키징이 국가 전략 기술로 급부상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구현할 핵심이기 때문이다. AI 패권은 첨단 패키징에 좌우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국가·기업 별 첨단 패키징 기술과 경쟁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해외와 견줘 첨단 패키징 역량이 뒤처진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메모리 중심 반도체 산업 영향이 크다. 수십년 간 메모리 등 전통적 패키징에 매달린 결과다. 이에 패키징 산·학·연 전문가들이 첨단 패키징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방위 투자와 지원이 시급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해외는 정부 투자 강화…韓은 저 마진 악순환 구조
노근창 세미콘리서치랩 대표(전 현대차증권 센터장)는 10일 서울 과학기술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 반도체 패키징 발전 정책 포럼' 패널 토의에서 “TSMC·ASE·이비덴·신코 등 대만과 일본 패키징 기업들은 정부 차원의 지원이 상당히 많다”며 “첨단 패키징은 궁극적으로 반도체 산업의 핵심 결정력을 제고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적극적 보조금 지급과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패키지 기판 기업 신코의 경우 후지쯔 지분을 일본 투자청이 인수할 만큼 적극적 지원을 받았다. 또 다른 일본 기판 기업인 이비덴도 오노 공장 설립 시 정부 보조금 지원이 상당한 도움이 됐다. 노 대표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과 팹리스 산업이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첨단 패키징 생태계 육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후공정(패키징·테스트) 시장은 2027년 983억달러로 커지고 첨단 패키징은 연평균 2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그러나 대만 대표 3개사 39%를 가져가는 동안 한국의 몫은 4.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패키징·테스트 기업(OSAT)은 낮은 마진 탓에 재투자 여력이 없고, 투자를 못하니 다시 마진이 낮아지는 악순환 구조가 문제라고 평가했다.
안 전무는 “패키징은 뒤에 붙는 후공정이 아니라 시스템 경쟁력을 결정하는 앞단”이라며 “다행히 첨단 패키징은 본딩(접합)과 정렬, 열 제어, 검사 등 아직 시장 표준이 굳어지지 않았는데, 표준이 굳어진 뒤 들어가면 우리는 영원히 2등 공급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발 빠른 시장 대응 조치를 주문했다.
◇패키징 공급망 자립도 높여야…투자 컨트롤 타워도 필요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 첨단 패키징을 접근하지 않으면 주도권 확보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우리나라도 해외처럼 공격적인 투자 지원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국내 대표 OSAT 기업 중 하나인 네패스의 김종헌 부사장은 “단순한 연구개발(R&D) 지원을 넘어 국내 첨단 패키징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도록 보다 신속하고 강력한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기술 개발은 물론 대규모 생산 인프라 구축, 핵심 장비·소재의 국산화, 전문 인력 양성 등 전 주기를 연결하는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책 규모 못지 않게 지원 속도와 실행력이 중요하다고 밝힌 김 부사장은 “네패스 등 국내 OSAT 기업들도 기술 개발과 생산 역량 확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정부차원에서도 첨단 패키징에 대한 국가 전략기술 육성 투자와 인력 양성, 공급망 안정화 정책을 강화하면 국내 AI 반도체 생태계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 패키징 투자의 '컨트롤 타워' 필요성도 제기됐다. 최근 패키징 분야 연구개발(R&D) 과제와 사업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최광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본부장은 “첨단 패키징의 또 다른 단어인 이종 결합(heterogeneous integration)에서 결합(integration) 즉, 하나의 목표를 완성하기 위한 유기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연계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단적으로 첨단 패널 크기도 과제 별로 상이한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R&D 연계형 인재 양성 체계 수립해 도전적·창의적 인재 키워야
인력 양성도 시급한 문제다. 주영창 한국마이크로전자패키징학회장(서울대 교수)은 국내 반도체 인력 양성은 교육·훈련 및 취업 연계나 단위 기술·요소 기술 개발 중심으로 이뤄져 급변하는 첨단 패키징 기술을 선도할 창의적이고 도전적 고급 연구 인력 양성에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주 회장은 “첨단패키징은 소재·공정·설계·신뢰성 등 다양한 분야의 융합이 요구되고, 아직 표준화되지 않은 새로운 기술 영역이 많아 매뉴얼적인 교육 과정만으로는 미래 기술을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기 어렵다”며 “학생들이 실제 연구개발 과정에 참여하여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기술에 도전할 수 있는 'R&D 연계형 인재양성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교육과 실습, 혹은 정해진 목표(RFP)를 달성하기 위한 연구를 넘어, 대학·연구기관·기업이 공동으로 첨단패키징 플랫폼을 구축하고, 석·박사 학생들이 장기간 창의적 R&D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새로운 교육·연구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주 회장 생각이다.
그는 “단기적인 인력 부족을 해소하는 것을 넘어, 미래 반도체 산업의 기술적 불확실성과 새로운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리더급 고급인재를 조기에 양성해야 한다”며 “이것이 첨단패키징을 국가 전략기술로 육성하고, 국내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지속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