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수요·에너지전환·요금 안정 ‘3중 숙제’ 동시 해결
“AIDC 임대업 그쳐선 안돼”…데이터센터 직접 운영 역량 확보
12차 전기본서 재생e·원전 믹스, 석탄·가스 감축량 ‘숫자로’

“우리는 음식을 먹지만 인공지능(AI)은 전기를 먹습니다. 그렇다고 늘어나는 전력 수요 때문에 석탄발전을 더 돌리거나 기후위기 대응을 늦춰서는 안 됩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AI 혁명과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하는 '탈탄소 AI 강국'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했다. 산업·수송·건물의 전기화에 AI 반도체·데이터센터·로봇의 전력 소비까지 더해지면 전력 수요가 현재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지만, 이를 석탄·가스 발전 확대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구상이다.
김 장관은 지난 11일 서울 한강홍수통제소에서 진행한 전자신문 창간특집 인터뷰에서 “전기 수요 증가 대응과 에너지 대전환, 전기요금 안정이라는 세 가지 숙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AI 시대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하고 원전을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AI 데이터센터(AIDC)를 직접 건설·운영할 수 있는 기술 역량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가 전력을 대량 소비하는 동시에 전력망과 물관리, 기후재난 대응의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대담=조정형 전자신문 정치정책부장

-탄소중립에 AI 혁명까지 더해지면서 전력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느 정도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나.
▲탄소중립 자체가 전력 수요를 크게 늘리는 구조다. 휘발유차가 전기차로 바뀌고 냉난방에 사용하는 가스가 전기로 바뀐다. 철강도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로 전환된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선박, 건설기계, 농기계 등 움직이는 모든 것이 전기화된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 AI 시대의 핵심인 반도체 공장과 AI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 움직이는 로봇에 들어가는 전기가 추가로 늘어난다. 그렇게 따지면 현재보다 전기가 대략 3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 다만 한국은 이미 다른 나라보다 1인당 전기를 많이 쓰고 있기 때문에 실제 3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수요가 꽤 많이 늘어날 것이다.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 석탄이나 가스 발전을 다시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기후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에 석탄과 가스를 줄여야 한다. 이를 재생에너지와 일부 원전으로 메워야 하는 에너지 대전환의 시기에 AI 혁명까지 더해져 더 큰 변화가 예고돼 있다.
늘어나는 전기 수요 때문에 석탄발전을 더 돌린다거나, 전력 수요가 증가하니 불가피하게 기후위기 대응을 늦춘다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더 빠른 속도로 늘리고 일부 원전으로 보완하면서 전기화 시대에 대응해야 한다.
정부는 2030년 이전 재생에너지 100GW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계통 여유지역에 초대형 재생에너지 플래그십 단지를 조성하고 산업단지와 영농형·수상형 태양광 등 다양한 부지를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 에너지저장장치(ESS)도 함께 늘려 재생에너지 수용 능력을 높여야 한다.
전기차와 히트펌프 보급을 확대하고 중장기적으로 수소환원제철, 전기 나프타분해설비(NCC) 등 산업부문 탈탄소 기술도 발전시켜야 한다. 결국 사회 전체를 '전기국가(Electro-State)'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AI 시대에는 전력 공급뿐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자체의 경쟁력도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지만 AI의 두뇌에 해당하는 데이터센터를 직접 구축하고 운영하는 역량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허가를 내주고 전기를 공급하면서 정작 내부 AI 데이터센터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잘 모르는 'AIDC 임대업'을 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기술이전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우리가 반도체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을 활용해 데이터센터 노하우를 빨리 배워야 한다. AI 데이터센터를 직접 건설하고 운영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새로운 산업적 숙제다.
-AI 주권 차원에서도 AIDC 운영 역량이 중요하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소버린 AI 역량을 갖추려면 데이터센터를 직접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해외 기업에 부지와 전력만 제공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피지컬 AI도 중요하다. AI 로봇, 즉 자율로봇 영역도 중국이 매우 빠르게 시장을 키우고 효율을 높이고 있다. 대한민국도 이 분야에서 시장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데이터센터 입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발전은 경북·경남의 원전이나 호남의 재생에너지 등 비수도권에 많이 집중돼 있는데 소비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전력계통영향평가 등을 통해 데이터센터의 지방 분산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AI 시대와 탄소중립을 동시에 준비하면 결국 전기요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전기 수요 증가와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두 가지 숙제에 하나가 더 있다. 치열한 산업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기요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성마다 다르지만 산업용 전기요금이 평균 ㎾h당 120~140원대이고 우리는 180원대다. 지금도 기술력으로 앞서 있기는 하지만 일부 분야는 대등해졌거나 오히려 중국이 앞서는 부분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요금을 마냥 올릴 수는 없다.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면서 에너지 대전환을 하고 동시에 전기요금까지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다.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을 낮추기 위한 제도 개편 방향은.
▲지난 4월 시간대별 전기요금을 개편했다. 앞으로 산업용 지역별 전기요금제도 도입할 예정이다. 전력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에서 전기를 사용할 경우 송전망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지역 산업의 전기요금 부담도 완화할 수 있다.
석유화학과 철강 등 국가 기간산업이 지방에 많이 있고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와 같은 새로운 산업 수요도 있다. 전력 생산과 소비를 보다 효율적으로 배치하면서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AI는 전력 수요를 늘리는 요인이지만 반대로 전력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도 있나.
▲그렇다. AI는 전기를 많이 사용하지만 동시에 에너지 시스템을 훨씬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한다.
전력 수요와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AI로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고 ESS와 전기차 등 분산자원을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수요예측부터 전력계통과 시장 운영까지 AI를 활용할 영역이 굉장히 많다.
정부도 국가전력망 운영시스템(EMS)에 AI를 접목해 전력망 운영 안정성을 높이는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AI 시대에는 'AI를 위한 에너지'뿐 아니라 '에너지를 위한 AI'도 중요하다.

-원전의 역할은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나라는 독립계통이기 때문에 원전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다만 원전 비중을 어느 정도로 하는 것이 적정한지는 늘 숙제다. 원전은 사고가 나면 치명적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 위험성을 걱정하는 분들도 많다.
반면 한국은 원전 생태계가 꾸준히 유지돼 다른 나라에 비해 발전단가가 낮다. 원전이 전체 전력단가를 크게 낮추고 안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기저전원이면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전원이라는 특징도 있다.
-그렇다면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결국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섞어서 쓸 것이냐, 그 과정에서 석탄과 가스를 얼마만큼 줄일 것이냐가 최대 숙제다.
AI와 전기화로 전력 수요는 늘어나는데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석탄과 가스는 줄여야 한다. 동시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적정한 전기요금도 유지해야 한다. 이 숙제를 숫자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다.
-반도체·AI 데이터센터 등 메가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서 전력·용수 인프라의 적기 공급도 중요해졌다.
▲첨단산업을 제대로 육성하려면 전력과 용수 등 핵심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하다 보면 지역 주민과 여러 이해관계자의 입장이 부딪힐 수밖에 없다.
민원을 해결하는 것은 피한다고 되지 않는다. 답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우선 만나서 진지하게 역지사지로 민원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당장 100%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직접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 갈등을 해결하는 첫 번째 과제다.
-취임 이후 송전망 현장을 직접 찾는 것도 같은 이유인가.
▲송전망 대책도 현장에 가서 보니 충분히 대안이 있는데도 풀지 못했던 것이 꽤 있었다. 현장에 직접 가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대안도 찾을 수 있다.
시간이 없으면 주말을 쪼개서라도 현장에 가서 들으려고 한다. 갈등은 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AI를 에너지뿐 아니라 물·환경 분야에도 적극 활용할 계획인가.
▲AI는 기후·환경 정책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매우 크다. 홍수 대응만 해도 AI를 활용하면서 예보지점을 75개에서 223개로 늘리고 예보에 걸리는 시간을 30분에서 10분으로 줄였다. 국가하천 CCTV에도 AI 기능을 적용해 사람과 차량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위험 상황을 알릴 수 있다.
물관리에서도 AI로 물 수요와 원수 수질을 예측하고 정수처리부터 생산·공급까지 최적화할 수 있다. 광역정수장에 적용한 자율운영 기술을 지방정수장까지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기후위기 대응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홍수나 가뭄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AI와 데이터를 활용해 어느 지역과 사업장이 기후위기에 취약한지를 미리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가 기후위기적응정보 통합플랫폼을 구축해 물·해양수산·농축산·보건·국토·생태계·산림·산업 등 부처별로 흩어진 정보를 통합하고 AI가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계획이다.
-AI 혁명과 탄소중립이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에 한국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모습은.
▲AI와 탈탄소는 서로 충돌하는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층위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음식을 먹지만 AI는 전기를 먹는다. AI 시대에는 전력 수요가 크게 늘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석탄이나 석유에 의존해서 해결해서는 안 된다.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확대하고 일부 원전으로 보완하면서 탈탄소 전원으로 AI 시대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가 가진 반도체 경쟁력을 바탕으로 AI 데이터센터와 피지컬 AI 역량도 키워야 한다.
석탄·석유가 없는 탈탄소 전원으로 AI를 가동해 인간이 더 행복하게 사는 새로운 사회를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국가, 그런 '탈탄소 AI 강국'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방행정과 국회를 두루 경험한 정책통이다. 서울 노원구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서울시의원, 노원구청장을 거치며 지방행정 경험을 쌓았다. 이후 제20·21·22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 등에서 에너지·기후·환경 정책을 다뤘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등을 역임하며 당의 주요 정책 설계를 맡았고, 국회에서는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 정책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기후·에너지·환경 정책을 통합적으로 추진할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을 맡았다. 취임 이후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확충, 산업 탈탄소, 기후위기 대응을 하나의 정책 체계로 연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AI·반도체·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 확대에 대응하면서도 탄소중립과 산업경쟁력을 함께 달성하는 '전기국가(Electro-State)' 전환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