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로 통신망이 끊기자 카드결제와 전화가 멈췄다. 2022년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때는 카카오톡을 비롯한 주요 서비스가 장시간 마비됐다. 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는 뒤늦게 재난 대응 체계를 정비했다. 그러나 국민의 일상은 물론 기회까지 좌우하는 디지털 서비스의 연속성을 보장할 체계는 여전히 미흡하다.
지난 11일 발생한 2027학년도 대학 수시모집 원서접수 시스템 장애가 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오후 5시 50분께 유웨이어플라이 시스템이 멈췄다. 18시 마감을 불과 10분 앞둔 시점이었다. 시스템은 약 30분 뒤 복구됐지만 수험생이 겪은 혼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접수 마감 연장 과정에서 일부 대학의 경쟁률이 공개되면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고, 기한 내 원서를 접수한 수험생과 학부모의 항의는 국회 앞 집회로 이어졌다. 교육당국은 구제 신청 1588건을 일일이 심사해야 했고 대학들도 추가 접수와 취소 여부를 다시 판단해야 했다. 장애 발생 시 마감 연장과 경쟁률 공개, 접수 시도 입증 및 구제 등에 관한 기준이 미흡해 불필요한 행정적·사회적 비용이 발생했다.
대입 원서접수는 민간업체가 제공하는 단순한 온라인 서비스가 아니다. 시스템이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 수험생의 지원 기회가 사라지고 진학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국민의 권리와 기회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디지털 필수서비스'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교육부나 대교협이 원서접수 시스템을 직접 관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필요한 것은 운영 주체만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장애가 나더라도 접수가 중단되지 않고, 문제가 발생하면 미리 정한 원칙에 따라 대응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민간업체가 운영하더라도 국가는 이중화와 대체 접수망, 데이터 백업, 장애 대응 훈련, 이용자 고지, 피해 판정과 구제 절차에 관한 기본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부와 대교협, 대학, 사업자 가운데 누가 어떤 상황에서 결정하고 책임질지도 명확해야 한다. 기준이 지켜지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일 역시 국가의 몫이다.
카카오 사태 이후 대형 플랫폼과 데이터센터를 대상으로 한 재난관리 체계는 강화됐다. 이제는 통신과 플랫폼을 넘어 대입·채용·금융·의료처럼 국민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온라인 서비스까지 디지털 재난 대응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서비스마다 주무부처와 운영 주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디지털 강국의 경쟁력은 혁신 서비스를 얼마나 많이 내놓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시스템이 멈춰도 국민의 일상과 권리가 멈추지 않도록 하는 복원력 또한 국력이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