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초 한국투자공사(KIC) 뉴욕지사장으로 부임하며 격세지감을 실감하고 있다. 글로벌 주식 운용역으로 오랜 시간 투자자들을 만나 왔지만, 지금처럼 대화 속에 'Korea'가 자주 등장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해외 국부펀드와 운용사들은 KIC와의 정보교환이나 공동투자 등을 위한 협력 가능성을 문의해 오기도 한다.
한국은 더 이상 지정학적 변수로 언급되는 변두리 국가가 아니라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전략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음을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이곳에서 매일 느끼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자본은 냉정하고 변덕스럽다. 수익성이 낮거나 불확실성이 큰 지역이라고 판단되면, 관심과 자금은 미련 없이 다른 국가로 향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KIC 전략투자계정의 설치는 시의적절하다. KIC는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재무적 투자를 수행하며 '한국 자본의 글로벌화'를 이끌어 왔다. 이 과정에서 투자 노하우뿐 아니라 단기간에 형성하기 어려운 글로벌 네트워크와 신뢰를 구축해 왔다. 이를 토대로 KIC가 국내 전략산업에도 장기 투자하게 된다면, 글로벌 자금의 관심을 실제 투자로 연결함으로써 '글로벌 자본의 한국화'를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전략적 국부펀드에 기대되는 역할은 세 가지다. 첫째는 장기 지분투자자다. 전략산업은 기술개발과 사업화, 세계 진출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장기 자본은 만기나 청산 시점에 얽매이지 않고 회수 압력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기업이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성장의 시간을 확보하도록 도울 수 있다.
둘째는 글로벌 자본을 이끄는 앵커 투자자다. 뉴욕의 투자 현장에서 만난 해외 국부펀드와 연기금, 운용사는 투자 매력도만큼이나 신뢰할 수 있는 현지 파트너를 중시한다. 특히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기술·인프라 투자에서는 더욱 그렇다. 투자 대상이 매력적이어도 정보 확보와 접근성의 한계를 보완해 줄 현지 파트너가 없으면 투자가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신뢰받는 KIC의 참여는 해외 자본의 한국 투자에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 정책자금과 민간자본 사이의 투자 공백을 잇는 징검다리 투자자다. 정책자금 지원 이후 민간투자가 본격화되기까지 간극이 생길 수 있다. 성장 가능성이 높지만 이 간극에 빠진 기업에는 징검다리 자본이 필요하다. 전략투자계정은 정책자금을 대체하거나 민간시장을 밀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시장의 규율 아래 민간과 정책금융, 글로벌 자본을 연결하는 보완적 자본이 될 것이다.
전략형 국부펀드의 수익성 우려에는 싱가포르 테마섹 사례가 참고가 된다. 테마섹은 상업적 원칙 아래 장기 수익을 추구하면서 자국 기업과 전략 분야에 투자해 왔으며, 2025년 미 달러 기준 20년 총주주수익률은 연 8%였다. 이는 전략성과 수익성이 독립적 투자 판단, 전문성, 투명한 성과 검증 아래 양립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전략성이 투자원칙을 흐려서는 안 된다. 산업 파급효과가 크더라도 사업성, 가격, 위험을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투자 결정은 전문성과 독립성에 기반해야 하고, 성과와 위험은 투명하게 검증되어야 한다.
KIC는 지난 20여년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투자 역량과 네트워크를 축적해 왔다. 이를 국내 전략산업의 성장 가능성과 글로벌 공동투자 기회에 연결한다면 수익성과 전략성을 충분히 함께 추구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제는 독립적 의사결정과 철저한 위험관리다. 이러한 원칙이 지켜질 때 KIC 전략투자계정은 글로벌 자본과 한국을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뉴욕의 투자자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 'Korea'가 세계 자본의 주요 투자 행선지로 계속 거론되기를 기대한다.
김율영 한국투자공사 뉴욕지사장 yuelyoung.kim@kic.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