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은 사업의 기회가 있는 곳에 투자하고, 사람은 좋은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찾아 움직인다. 수도권 집중은 이러한 선택이 오랫동안 누적된 결과이며, 집적이 강화되면 다시 기업과 사람이 몰리는 자기강화의 순환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합리적인 선택도 과도하게 집중되면 국가 전체의 효율과 성장에 역행할 수 있다. 수도권은 주거비 급등과 교통 혼잡 등 과밀 비용이 커지고, 지방은 산업기반이 약해지며 성장 기회를 잃는다. 국토의 균형적 개발이 필요한 이유다.
그동안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 규제부터 애향심에 대한 호소까지 다양한 노력이 이어졌다. 그러나, 규제로는 기업을 지방으로 움직이게 하기 어렵고, 애향심으로는 청년을 붙잡아 둘 수도 없다. 균형발전도 결국 기업과 사람의 선택을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지역에는 기업이 투자하고 싶을 만큼 좋은 사업기회가 있어야 하고, 사람에게는 일자리와 삶의 전망이 보여야 한다. 여기에 지역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열정이 더해져야 한다.
◇ 규제만으론 균형발전 불가능
정부가 추진하는 '5극3특 성장엔진'은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의 새로운 성장경로를 만드는 산업전략이다. 수도권·중부권·서남권·대경권·동남권의 5대 초광역권과 강원·전북·제주의 3대 특별자치도를 중심으로 지역의 강점을 미래산업으로 발전시키는 구상이다. 전국에 비슷한 산업을 나누어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잘할 수 있으면서 앞으로 크게 성장할 분야를 골라 집중적으로 키운다. 연구개발에서 생산·실증·사업화까지 이어지는 가치사슬도 행정구역을 넘어 구축한다. 제조 인공지능(AI) 전환(M.AX)은 모든 권역에 적용해 산업 전반의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높인다.
미래산업을 지역에 뿌리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새로운 산업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업이 투자하고 기술이 축적되며 이를 뒷받침할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 따라서 유망하다는 이유만으로 산업을 정하기보다 지역이 가진 강점이 미래의 시장과 만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오랫동안 키워야 한다.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한편,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성장엔진 전략의 본질이다.
그 중심에는 기업이 있다. 산업은 계획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실제 투자하고 시장을 개척하는 기업이 있어야 한다. 특히 앵커기업의 투자는 협력기업의 후속 진출을 불러오고 기술과 인재를 끌어들이는 구심점이 된다. 그렇다고 대기업 하나를 유치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성과가 지역기업과 창업기업으로 확산되고 대학과 연구기관까지 함께 성장해야 한다. 무엇을 키울 것인지 분명히 정하고, 누가 투자하며 지역의 어떤 기업·기관과 함께 성장할 것인지까지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 7대 정책지원 패키지로 확실한 지원
이를 현실로 만드는 수단이 7대 정책지원 패키지다. 재정·금융·세제로 기업의 투자 동기를 높이고, 제도와 기술로 산업 기반을 조성하며, 인재와 인프라로 성장을 뒷받침한다. 대규모 지방투자에는 성장엔진 특별보조금을 지원하고 국민성장펀드와 1조원 규모의 우대보증·지역펀드를 연계한다. 세제 우대와 신속한 인허가를 지원하고, 대형 연구개발(R&D)과 기업 맞춤형 인재양성도 추진한다. 산업단지에 필요한 기반시설과 정주여건도 함께 확충한다. 기업의 투자 결정부터 인재의 정착까지 하나의 틀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재정적 뒷받침도 구체화되고 있다. 5극3특 성장엔진 프로젝트에는 2027년 정부예산안 기준 수도권을 제외한 7개 권역에 1400억원이 반영됐다. 2028년부터 대형 연구개발사업으로 전환해 2031년까지 총 2조5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앵커기업의 대규모 지방투자를 위한 성장엔진 특별보조금에도 2027년 정부예산안 기준 7000억원이 반영됐다.
이러한 재원과 정책수단은 실제 기업의 투자 과정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투자가 구체화된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기업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어디에서 막히는지 찾아 필요한 지원을 적기에 결합해야 한다. 금융과 세제, R&D와 인허가, 인력과 기반시설이 따로 움직여서는 투자의 속도를 내기 어렵다. 기업의 투자 일정에 맞춰 정책수단이 함께 작동할 때 정부 지원이 민간투자를 끌어내고, 그 투자가 지역의 산업과 일자리로 이어진다.
◇ 권역별 구체화된 성장엔진 전략
이런 맥락에서, 각 지역의 산업적 강점과 여건에 맞춰 구체화한 성장엔진 전략이 만들어졌다. 즉, 중부권은 대전의 R&D 역량과 충남·충북의 제조기반, 세종의 실증기능을 묶어 반도체·디스플레이, 바이오의약·소재, 첨단배터리, 미래 방산·수송시스템을 육성한다. 대전의 기술개발이 충남·충북의 제조현장으로 이어지고 세종의 실증기능과 결합하면서 권역 전체가 하나의 연구개발·생산·실증 거점으로 움직이는 구조다. 서남권은 풍부한 재생에너지와 자동차·바이오 산업기반에 AI를 접목해 미래 전력시스템과 첨단 반도체 제조, AI 자율주행, 차세대 백신·정밀의료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운다. 에너지와 제조라는 지역의 자산을 미래시장과 연결해 새로운 기업투자와 산업을 만들어가는 전략이다.
대경권은 구미의 반도체 소재·부품, 포항의 이차전지 소재·자원순환, 대구·경북의 자동차 부품과 연구개발 기반을 활용한다. 여기에 AI와 첨단기술을 접목해 기존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소재·부품과 로봇 분야로 산업의 지평을 넓힌다. 오랫동안 축적해 온 제조기반을 혁신해 새로운 시장과 사업기회를 만드는 것이 대경권 성장엔진의 강점이다. 동남권의 가장 큰 자산은 세계적 수준의 제조현장이다. 부산의 연구개발과 항만, 울산의 자동차·조선·에너지, 경남의 우주항공·방산·원전 기반을 하나의 산업권으로 묶는다. 이를 토대로 첨단 조선·해운과 미래모빌리티, 우주항공·방산, 차세대 원전·에너지산업을 육성하고 제조현장 자체를 AI와 로봇의 거대한 테스트베드로 활용한다. 기술개발과 실증, 생산을 가까운 곳에서 연결해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산업화할 수 있다는 것이 동남권의 경쟁력이다.
3특은 각 지역만의 자원과 여건을 새로운 성장의 자산으로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강원은 원주의 의료기기와 춘천·홍천의 바이오 기반을 AI·의료데이터와 접목해 디지털헬스와 정밀의료로 확장한다. 의료기기용 반도체와 세라믹, 청정자원·관광 등 특화분야도 함께 육성해 나갈 계획이다. 전북은 농·생명과 자동차·기계 산업에 새만금의 산업공간과 재생에너지를 결합한다. 그린수소와 첨단로봇, 농·생명바이오를 키우고 피지컬 AI를 제조와 농업 현장에 확산한다. 새만금 RE100 산단과 기업투자를 지렛대로 삼아 기존 산업의 혁신과 새로운 산업의 형성을 함께 추진한다. 제주는 섬이라는 특성과 풍부한 재생에너지, 청정자원을 산업적 자산으로 활용한다. 재생에너지 융·복합시스템을 실증하고 소형위성과 우주산업의 시험·실증 역량을 키운다. 청정 바이오·웰니스까지 더해 에너지·우주·바이오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발전시킨다.
결국 지역의 성장은 시장의 힘과 지역의 열정이 함께 만들어간다. 기업이 스스로 찾아올 만큼 투자 매력을 높이고,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걸어볼 만한 일자리와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민간의 도전을 가로막는 장벽을 걷어내고 필요한 곳에 힘을 보태야 한다. 좋은 정책과 충분한 재원에 기업과 대학, 지방정부와 지역사회가 '우리 지역을 반드시 키워내겠다'는 열정을 더할 때 투자는 산업으로 뿌리내리고 인재는 지역에 정착한다. 기업이 달려오고 인재가 모여들며, 지역의 잠재력을 산업으로 바꾸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드는 것이 5극3특 성장엔진이 가야 할 길이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art@kiat.or.kr

〈필자〉 정책·경제·통상 분야에 능통한 관료 출신 기관장이다. 군산제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영국 리즈대 경영대학을 졸업했다. 행정고시 36회에 합격해 1993년 상공자원부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지식경제부 투자유치과장, 산업통상자원부 정책기획관·통상협력국장·통상교섭실장 등을 거쳤다. 주유럽연합(EU)·벨기에 대사관 상무관, KOTRA 교역지원센터장, KAIST 과학기술정책센터 연구교수,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원장 등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2026년 KIAT 원장으로 취임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