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과학기술원(GIST·총장 임기철)은 정현수 생명과학과 교수가 미국 알토스 랩스(Altos Labs),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교(WashU) 의과대학 등과 공동으로 신장 질환 환자의 여러 신장 세포 가운데 '세뇨관 상피세포'에서 후성유전적 노화 가속이 특히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세포 단위로 규명했다고 7일 밝혔다.
신장은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내고, 우리 몸에 필요한 물과 영양분을 다시 흡수하는 기관이다. 신장이 손상되면 이를 이루는 세포도 함께 영향을 받는데, 일부 세포가 손상된 뒤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하지 못한 채 남으면 신장 조직의 섬유화와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노화는 만성 신장질환의 주요 위험요인 가운데 하나다. 기존 연구에서도 만성질환 환자의 조직에서 DNA에 남아 있는 화학적 변화를 이용해 추정한 분자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높게 나타나는 현상이 보고돼 왔다. 하지만 신장에는 여러 종류의 세포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신장 질환에서 이러한 후성유전적 노화 가속이 어떤 세포에서 두드러지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신장 질환 환자 7명과 연령을 맞춘 대조군 5명, 나이 든 생쥐 3마리와 젊은 생쥐 3마리에서 얻은 총 5만7619개의 세포핵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사람과 생쥐의 신장을 구성하는 세포별 DNA 메틸화 지도를 구축했다. DNA 메틸화는 DNA의 특정 위치에 '메틸기'라는 작은 화학물질이 붙는 현상이다. DNA의 유전정보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메틸기가 어디에 얼마나 붙느냐에 따라 유전자의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DNA 메틸화 패턴은 나이가 들면서 일정한 방향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이용하면 실제 나이를 고려했을 때 DNA 메틸화에 나타난 노화 관련 변화가 어느 정도인지를 추정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DNA 메틸화 기반 '분자 시계'를 이용해 신장 질환 환자와 대조군의 세포를 종류별로 비교 분석한 결과, 신장 질환 환자의 여러 신장 세포 가운데 세뇨관 상피세포에서 후성유전적 노화 가속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실제 나이를 고려해 비교했을 때, 질환군의 세뇨관 상피세포는 대조군보다 DNA 메틸화에서 노화와 관련된 변화가 더 두드러졌지만, 다른 종류의 신장 세포에서는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별도의 신장 조직을 이용한 분석에서도 세뇨관 상피세포가 많이 포함된 조직에서 같은 경향을 확인해 결과를 다시 검증했다. 이어 세뇨관 세포에서 나타난 변화가 손상 후 회복 상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봤다. 특히 물과 영양분을 다시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 근위세뇨관 세포 가운데 정상적인 상태와 손상 후 회복되지 못한 상태의 세포를 비교했다.
그 결과, 회복되지 못한 세포에서는 DNA 메틸화 패턴이 달라지고, 세뇨관 세포가 본래의 기능과 특성을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 조절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세뇨관 세포가 원래의 상태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신장 질환에서 나타나는 손상 후 회복 실패와 관련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들 세포에서 나타난 유전자 활동 변화 일부는 질환이 없는 사람의 신장에서 정상적인 노화 과정에 따라 나타나는 변화와 겹쳤다. 이는 손상 후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못한 세뇨관 세포에서 나타나는 분자적 변화가 노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와 일부 공통점을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현수 교수는 “신장은 여러 종류의 세포가 함께 작동하기 때문에 조직 전체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질환에서 나타나는 변화가 어느 세포에서 비롯되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신장 손상 후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하지 못한 세포에서 나타나는 변화가 노화와 어떤 공통점을 갖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구축한 세포별 신장 DNA 메틸화 지도는 신장 질환의 진행 과정과 노화의 관계를 세포 수준에서 이해하고, 손상된 세포가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지 못하는 원인을 밝히는 후속 연구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남광주=김한식 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