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섭의 M&A인사이트] 〈20〉가격은 불렀다, 가치는 증명하지 못했다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tskim@pivotbridge.net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tskim@pivotbridge.net

아파트를 내놓은 집주인이 공인중개사에게 말한다. “우리 집은 로열층에 인테리어만 1억원을 들였어요. 옆집보다 1억원은 더 받아야죠.” 중개사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매수자는 인테리어 값을 쳐주지 않는다. 동네 시세를 먼저 보고, 자기 취향에 맞게 다시 뜯어고칠 비용까지 따진다. 집주인의 1억원은 추억이고, 매수자의 1억원은 철거비다. 결국 호가는 높게 걸리고 집은 수개월째 팔리지 않는다.

지난 8월 칼럼('패는 나눠줬다, 조합은 각자 몫이다')에서 필자는 딜을 무산시키는 원인의 상당수가 인수자로부터 온다고 썼다. 자금의 부족, 분석의 부실, 협상의 조급함. 그 뿌리는 준비의 부재였다. 이번 글은 정확히 그 반대편, 매도자의 자리에 서서 같은 질문을 던져 보려 한다. 거래는 혼자 추는 춤이 아니다. 한쪽 발만 맞춰서는 무대가 완성되지 않는다.

정부가 추산한 후계자 부재 기업이 67.5만개에 달한다고 한다. 한편 상반기 입법을 약속했던 M&A특별법은 여전히 국회 상임위원회에 머물러 있다. 제도는 더디고, 시간은 매도자 편이 아니다. 매각 상담 자리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이 회사, 내가 30년을 바쳤소.”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인수자는 그 30년에 값을 치르지 않는다. 앞으로의 30년, 즉 미래 현금흐름에 값을 치른다. 과거는 매도자의 자부심이고, 미래는 인수자의 계산서다.

매도자가 딜을 깨는 방식도 세 갈래로 압축된다. 첫째는 가격이다. 창업주의 피땀을 가격표에 얹는 순간 협상은 숫자의 싸움이 아니라 감정의 싸움이 된다. 호가는 높아지고, 인수자는 조용히 자리를 뜬다. 둘째는 장부다. 쌓여 있는 가지급금,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사장님 없이는 한 건도 나오지 않는 매출은 실사의 문턱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인수자가 사는 것은 회사이지 사장님이 아니다. 셋째는 타이밍이다. 많은 매도자가 팔 수 있을 때가 아니라 팔아야 할 때 매물을 내놓는다. 실적이 꺾이고, 건강이 나빠지고, 은행이 상환을 재촉할 즈음이다. 이때의 매각은 협상이 아니라 처분이다. 이 세 갈래 역시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다. 준비의 부재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 보자. 집주인이 들인 1억원은 집주인 눈에만 보인다. 시장은 영수증이 아니라 시세로 말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매도자가 해야 할 일은 애착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애착을 증명 가능한 가치로 바꾸는 것이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매각을 마음먹었다면 적어도 2~3년 전부터 장부를 정리해야 한다. 가지급금을 털어내고, 특수관계 거래를 걷어내고, 숫자가 스스로 말하게 해야 한다. 사장님의 전화 한 통에 매달린 거래처는 시스템으로 옮기고, 일찌감치 인수자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적이 가장 좋을 때 결단해야 한다. 잔칫상이 차려졌을 때 손님을 불러야 제값을 받는다. 제값은 부르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것이다.

가격을 보지 말고 가치를 보라. 인수자에게 돛이 필요하다면, 매도자에게는 거울이 필요하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tskim@pivotbridge.net

〈필자〉1988년 대학시절 창업한 국내 대표적 정보통신기술(ICT) 경영인이며 M&A 전문가이다. 창업기업의 상장 후 20여년간 50여건의 투자와 M&A를 성사시켰다. 전 바른전자그룹 회장으로 시가총액 1조, 코스닥 10대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2009년 수출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그가 저술한 〈규석기시대의 반도체〉는 대학교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2020년 퇴임 후 대형로펌 M&A팀 고문을 역임했고 현재 세계 첫 디지털 M&A플랫폼 피봇브릿지의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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