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전력·님비에 갇힌 데이터센터, 답은 지하에 있다

장수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지반연구본부장
장수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지반연구본부장

인공지능(AI) 시대의 필수 인프라인 데이터센터는 말 그대로 '전기 먹는 하마'다. 일반 데이터센터의 서버 랙 하나가 5~10킬로와트(㎾)를 쓴다면, AI 데이터센터의 랙은 약 40~100㎾에 달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 한 곳은 중소도시 규모인 약 10만 가구가 사용하는 수준의 전력을 소비한다. 앞으로 규모가 커질수록 전력 수요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사용 전력의 약 40~50%가 냉각에 쓰인다는 점은 데이터센터가 풀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다.

문제는 전력만이 아니다. 데이터센터를 지을 곳도 마땅치 않다. 국내 데이터센터의 약 73%가 수도권에 몰려 있지만, 전자파와 소음, 집값 하락, 도시열섬 등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대로 건설이 지연되거나 중단된 사례도 많다.

미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애리조나주 투손 시의회는 물과 전력 사용을 우려한 주민 요구에 최대 600메가와트(㎿)급 데이터센터 유치 협상을 중단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주민 반대로 중단·지연된 사업 규모만 최소 1560억달러에 이른다. 여기에 잇따른 배터리 화재 사고와 올해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마존 데이터센터 드론 피격은 재난과 전쟁에 대한 취약성까지 드러냈다.

전력, 님비, 안전이라는 '3중고'를 풀기 위한 대안도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우주와 해저 데이터센터다. 미국의 한 기업은 지난해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실은 시험 위성을 발사했고, 중국은 하이난에서 소규모 해저 데이터센터를 시범 상용화했다. 다만 우주는 막대한 발사비용과 방사선, 유지보수 문제가 있고, 해저는 규모 확대와 유지관리, 장기 내구성 확보 등의 과제가 남아 있다.

반면에 아직 지하 데이터센터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해외 사례는 대부분 폐광이나 냉전시대 군사벙커를 보안강화 또는 유휴공간 목적으로 재활용한 것으로, 에너지 절감이 목적인 사례는 드물다.

그럼에도 지하공간은 데이터센터의 3중고를 동시에 풀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이다. 먼저 전력 문제다. 연중 15도 내외로 온도가 일정하고 열용량이 큰 암반과 지하로 유입되는 지하수는 훌륭한 열흡수원이 된다. 지상과 지하의 압력.온도 차로 생기는 자연환기력도 냉각에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아이언마운틴은 지하 67m의 석회석 폐광산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광산 내 지하호수의 물을 냉각에 활용하고 있다.

님비 문제도 완화할 수 있다. 데이터센터가 땅속에 들어가면 소음·전자파·발열의 영향이 지상에 거의 미치지 않고 지상에는 출입시설만 남는다. 수요가 집중된 도심 지하는 물론 전력 여건이 좋은 지방의 산지에도 지을 수 있어 수도권 집중 완화에도 기여한다.

마지막은 안전이다. 견고한 암반은 폭격과 전자기펄스(EMP)를 막는 천연 방호막이며, 지진 등 자연재해에도 상대적으로 강하다.

물론 숙제도 있다. 지하는 지상보다 공사비가 비싸고, 밀폐된 공간이라 화재에 취약하다. 암반의 자체 지지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모듈러 건축을 접목해 공사비를 낮추는 기술, 화재 조기감지·진압을 포함한 지하 특화 방재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올해부터 지하 데이터센터 관련 전력연구사업에 착수한 것도 이러한 기술적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국토의 약 70%가 산지이고 견고한 암반이 널리 분포한 우리나라는 이미 지하공간 활용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이제 데이터센터 입지를 지상에만 한정할 이유는 없다. 전력, 님비, 안전이라는 데이터센터의 3중고를 하나의 공간적 해법으로 풀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 발밑에 있다.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 이제 땅속에서 답을 찾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장수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지반연구본부장 sooho@kic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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