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마스 공격 이후 전사자의 정자를 사후 채취·보관하는 절차가 완화되면서, 숨진 아들의 후손을 남기려는 유가족들의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일부 사례에서는 숨진 이스라엘 군인의 사후 정자를 이용해 아이를 낳겠다는 여성 약 1400명이 자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13일(현지시간)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에 따르면 2023년 가자지구에서 전사한 이스라엘 군인 마오르 에이젠코트(사망 당시 19세)의 어머니 샤론 에이젠코트는 아들의 사망 직후 정자 채취에 동의했다.
당시 군 당국은 사망 사실을 알리면서 사후 약 72시간 안에 정자를 채취할 수 있다는 선택지를 함께 제시했다. 이후 에이젠코트는 아들의 정자를 이용해 자신이 선택한 여성에게 인공수정을 할 수 있도록 법원에 허가를 요청했고, 지난 7월 승인을 받았다.
사후 정자 채취는 사망 후 수시간 이내 고환 조직을 떼어내 살아 있는 정자를 찾아 냉동 보관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빠를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으며, 추후 체외수정에 사용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원래도 사후 정자 채취를 비교적 폭넓게 허용했지만, 2023년 10월 이후 절차가 한층 간소화됐다. 당시 도입된 임시 규정에 따라 전쟁 사망자의 경우 법원 허가 없이도 정자를 채취할 수 있게 됐고, 이전에는 배우자만 가능했던 신청도 부모가 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전체 정자 채취 신청의 77%는 부모가 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변화로 사후 출산을 원하는 유가족도 늘고 있다. 에이젠코트는 법원 승인을 받은 뒤 임신을 원하는 여성을 직접 골랐으며, 수백 명이 자원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아들의 다른 꿈은 이루어줄 수 없지만, 아이를 갖고 싶어 했던 꿈만큼은 대신 이뤄주고 싶다”고 말했다.
2021년 사망한 또 다른 군인의 어머니 역시 아들의 정자를 이용해 손주를 갖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았다. 당시에는 약 1400명의 여성이 임신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에는 이런 승인을 받는 데 수년이 걸렸지만, 최근에는 법원이 한층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스라엘 정부는 사후 정자 채취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정자의 실제 사용을 위해 법원의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는 한 비정부기구가 법무부와의 협약을 통해 전사자 유가족에게 무료 법률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당사자가 생전에 명확한 동의를 남기지 않은 경우가 많아, 사망자의 의사를 어디까지 추정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윤리적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출산 장려 정책이 강하게 추진돼온 데다, 2023년 하마스 공격 이후 전사자의 후손을 남기는 일을 국가적 의미와 연결하는 분위기도 커지고 있다. 일부 유가족은 이를 개인적 애도의 차원을 넘어 숨진 가족의 삶을 이어가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