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721억원을 들여 현대화한 농산물 비축기지 4곳의 지난해 평균 활용률이 60.5%에 그쳤다. 노후시설을 통폐합해 운영 효율을 높이겠다던 당초 구상과 달리 기존 기지 6곳은 여전히 가동 중이다. 신축 당시 예상 활용률조차 설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다시 추진한 광역 비축기지 건립도 재정 문제로 지연되면서 10년 넘게 추진해 온 시설 재편이 답보 상태다.
1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2018년 조성된 현대화 비축기지 4곳의 총공사비는 721억원이다. 부산 190억원, 장성 185억원, 안심 176억원, 청원 170억원이 각각 투입됐다.
시설 활용률은 하락세를 보였다. 현대화 기지 4곳의 평균 활용률은 2021년 92.7%에서 2022년 84.7%, 2023년 71.5%, 2024년 58.8%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소폭 반등했지만 60.5%에 머물렀다. 2021년과 비교하면 32.2%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시설별로는 안심 53%, 부산 60%, 장성 63%, 청원 67%였다.
반면 1970~1980년대 건립된 노후 비축기지 6곳의 평균 활용률은 같은 기간 89%에서 113.3%로 높아졌다. 광주 158%, 학장 153%, 노포 148% 등 3곳은 집계상 150% 안팎을 기록했다.
더구나 현대화 비축기지 4곳은 건립 당시 예상 활용률조차 설정하지 않았다는 게 aT 측 설명이다. 721억원을 투입하면서도 시설 활용 목표를 마련하지 않아 사업의 적정성과 투자 성과를 평가할 기준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축기지 현대화는 2012년 수립된 통폐합 계획에서 시작됐다. 당시 정부는 노후시설 7곳을 매각하고 권역별 거점 4곳으로 통합해 관리비와 물류비용을 절감하기로 했다. 예비타당성조사에서는 기존 기지 7곳의 예상 매각대금 659억원을 사업 편익에 반영했다.
하지만 2016~2018년 새 시설을 완공한 뒤에도 노후기지 대부분은 운영을 이어갔다. 당초 매각 대상 가운데 이현기지만 처분됐고, 나머지 6곳은 2019년 aT가 약 788억원에 인수했다. 시설 통합을 통한 비용 절감이라는 초기 구상과 달리 신·구 기지의 병행 운영이 지속된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9년 발간한 '2018회계연도 결산 분석'에서 기존 시설을 계속 활용하는 방식이 사업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적정 비축 수요와 시설 규모를 재산정하고 불필요한 자산의 매각 등 합리적인 운영방안을 마련하도록 권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노후 비축기지 6곳을 단계적으로 매각하고 충청·전라·경상권에 광역 거점 3곳을 신설하는 계획을 다시 내놨다.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농산물가격안정기금의 재정 부담으로 후속 절차는 이뤄지지 않았다. 기존 시설 통폐합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거점 구축마저 지연된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신규 거점 조성에 필요한 재원을 노후시설 매각으로 충당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처분 대상은 부산 학장 비축기지다. 주변 도시화에 따른 소음·교통 민원 등을 고려한 조치다. 다만 이곳의 지난해 활용률이 153%에 달해 매각 이후 보관물량 재배치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지난 14일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도 현대화 사업 지연 경위가 도마에 올랐다. aT가 2024년 국감에서 노후시설 개선과 권역별 광역화를 추진하겠다고 보고했지만 이후 별다른 설명 없이 계획이 중단됐다는 지적이다. 김창국 aT 사장직무대행은 재정 여건을 이유로 들며 신축 통합 공공비축기지 확충 방안을 재검토해 국회에 보고하겠다고 답했다.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21억원을 들인 현대화 시설의 활용률은 60%에 그치는데, 통폐합하기로 한 노후시설은 10년 넘게 운영되고 있다. 당초 사업 목적과 실제 집행이 따로 놀고 있는 것”이라며 “농식품부와 aT는 적정 비축 수요와 기존 시설의 활용 가능성부터 다시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정 여건을 이유로 계획을 미루거나 시설 매각만 앞세워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비축물량 재배치와 노후시설 정비·매각, 신규 거점 조성을 연계한 실행계획을 세우고 재원과 추진 일정까지 국회에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