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11개국 지식재산(IP) 분쟁 사법체계와 소송 절차를 비교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전문법원 설치뿐만 아니라 일반법원 내 전문재판부 운영, 기술전문가 활용, 신속한 사건관리 등 국가별 제도 설계 방안을 제시했다.
WIPO는 지난 9일 '지식재산 분쟁의 사법 구조 및 절차 규칙 비교 보고서'를 발간했다. 조사 대상은 브라질·캐나다·코스타리카·프랑스·독일·일본·케냐·필리핀·싱가포르·영국·미국이다.
보고서는 IP 분쟁을 담당하는 법원 구조, 법관과 기술전문가 역할, IP 특화 절차 규칙, 사법제도 개편 시 고려사항 등을 비교했다. 특정 제도를 모범사례로 권고하기보다 각국이 자국 여건에 맞는 분쟁 해결체계를 검토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IP 분쟁 처리구조는 크게 독립된 IP 전문법원, 일반법원 내 전문재판부·전문법관, 일반 민사·상사법원으로 나뉜다. 지식재산청 내부 또는 외부 준사법기관이 특정 분쟁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조사 대상 가운데 모든 유형의 IP 분쟁을 전담하는 단일 독립 전문법원을 설치한 국가는 없었다. 독립 전문법원은 주로 특허 등 특정 권리나 권리의 유효성 판단 등 특정 분쟁을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화된 사법 구조를 도입한 국가에서는 일반법원 안에 IP 전문재판부를 설치하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일부 국가는 권리의 유효성과 침해 여부를 서로 다른 법원에서 판단하는 이원화된 구조를 운영했다.
기술적 쟁점에 대응하는 인력 운용 방식도 달랐다. 기술법관은 복잡한 기술 분쟁을 다루는 일부 독립 전문법원에서 활용됐으며, 일반법원 내 전문재판부는 주로 법률전문법관이 재판을 맡고 사건별로 기술자문관이나 감정인 도움을 받는 방식을 활용했다.
법률전문법관 임명 시 IP 분야 사전 경험을 공식 요건으로 규정한 사례는 드물었다. 대부분 조사 대상 국가는 개별 사건에 필요한 기술전문가를 임시로 지정했으며, 상근 조사관을 운영하는 사례는 제한적이었다.
소송 절차에서는 모든 IP 분쟁에 적용되는 종합적인 특화 규칙보다 증거 확보, 잠정조치, 손해배상 등 특정 쟁점이나 권리 유형에 맞춘 별도 규칙이 주로 활용됐다.
일부 국가는 기술적으로 복잡한 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소송 초기에 쟁점과 증거를 집중적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법원이 사건관리에 적극 개입했다. 간이·신속 절차와 소액사건 절차, 대체적 분쟁해결절차 등을 병행하는 사례도 제시됐다.
보고서는 사법체계 전문화가 절차 효율성, 사건관리 역량, 판결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건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 다른 지역 당사자의 재판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어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제도 개편 과정에서는 전문화 목적, 기존 법원체계에서 해결 가능성, 권리별 기술적 복잡성, 사건 수와 인적·재정적 자원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해외 IP 분쟁에 대응하는 기업이 국가별 재판 관할과 기술전문가 활용 방식, 증거 제출 시점 등을 살펴보는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WIPO는 각국 여건에 따라 전문재판부와 특화 절차 규칙을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접근을 제시했다.
김순웅 특허법인 정진 대표변리사는 “해외 특허분쟁에서는 권리 유효성과 침해 여부를 어느 기관이 판단하는지, 기술적 쟁점을 어떤 방식으로 심리하는지에 따라 대응 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며 “기업은 진출 국가 사법체계와 증거 제출 절차를 사전에 파악하고, 분쟁 초기부터 기술 분석과 법률 검토를 함께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