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 30년 간 바뀌지 않는 유료방송 규제 유감

박세진 한양대 미디어학과 교수
박세진 한양대 미디어학과 교수

올해 국정감사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지만 국내 유료방송 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법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케이블TV의 경영난과 과도한 방송통신발전기금 부담, 지역채널의 공적 역할에 대한 지원 필요성 등이 국회에서 논의됐지만 정부의 답변은 여전히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는 수준에 머물렀다. 학계와 업계에서 오랫동안 제기해 온 문제가 이번에도 실질적인 정책 변화로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1995년 케이블TV 출범 이후 3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방송산업은 OTT와 디지털 플랫폼이 경쟁하는 생태계로 재편됐다. 시청자는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에 선택하고 플랫폼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는데 유료방송은 여전히 30년 전 규제의 틀에 묶여 있다. 특히, 채널 편성과 상품 구성의 자율성, 방송통신발전기금 부담, 지역방송 지원 등 주요 현안은 10년 넘게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물론 방송의 공공성과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는 필요하다. 문제는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서도 과거의 규제가 여전히 유효한가에 있다. 글로벌 OTT가 콘텐츠와 상품 구성을 자유롭게 변경하며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동안 유료방송은 의무편성과 채널 운영 규제에 묶여 서비스 차별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최근 CJ ENM과 LG헬로비전의 콘텐츠 사용료 분쟁이 법적 소송으로까지 이어진 것도 합리적인 콘텐츠 대가 산정 기준과 분쟁 해결체계의 부재를 보여주는 사례다.

유료방송 산업의 위기는 구체적인 수치로도 확인된다. 2024년 기준 케이블TV 사업자의 수신료 매출 대비 콘텐츠 사용료 지급률은 90%를 넘어섰고, 방송통신발전기금 납부액은 약 250억원으로 영업이익의 168%에 달했다. 가입자와 매출은 감소하는데 각종 비용 부담은 여전한 상황이다. 급기야 최근에는 케이블TV 사업자들이 기금 부과처분 취소소송에 나서기도 했는데 방송산업의 발전을 위해 조성된 기금이 오히려 사업자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결국 시청자의 피해로 귀결된다. 이른바 '볼 게 없는 TV'라는 인식의 배경에는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기 어려운 유료방송의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경쟁력이 부족한 채널이 관성적으로 유지되는 반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작 역량을 갖춘 독립 사업자의 시장 진입은 쉽지 않다. 이제는 채널의 수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시청자가 원하는 콘텐츠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업자의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운 선순환 생태계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상품과 채널 구성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경쟁력이 낮은 채널은 재편하는 한편 새로운 콘텐츠 사업자의 진입은 활성화돼야 한다. 아울러 사업 지속이 어려운 사업자의 합리적인 퇴로도 반드시 마련돼야 할 것이다.

방송통신발전기금 역시 징수율 인하를 비롯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사업자의 수익성과 재정 상태를 고려해 부과 기준을 합리화하고, OTT를 포함한 미디어 사업자 간 규제 형평성도 검토해야 한다. 특히 지역뉴스와 재난방송 등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케이블TV 지역채널에는 별도의 지원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공공성을 요구하면서 그 비용을 경영난에 처한 사업자에게만 부담시키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료방송 산업의 생존을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는 11월 발표가 예정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유료방송 발전방안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이유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미디어 법제 마련이라는 중장기 과제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채널 구성의 자율성 확대와 콘텐츠 대가 산정체계 개선, 방발기금 부담 완화 등 당장 해결할 수 있는 현안부터 실행하는 것이다.

30년 전 유료방송 규제는 새로운 방송시장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당시의 규제가 오늘날 산업의 혁신을 가로막는다면 이제는 그 역할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유료방송에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보호도, 모든 규제의 폐지도 아닌, 변화한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하고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환경이다. 정부의 발전방안이 또 하나의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규제 전환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박세진 한양대 미디어학과 교수 sj4298@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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