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보고 싶어” 18일간 구금된 日 16세 소녀…석방 5개월 뒤 20㎏로 숨졌다

일본 경찰 구금 이후 섭식장애를 겪다 숨진 루나(가명). 구금 전 모습(왼쪽)과 구금 이후 야윈 모습. 사진=CNN 캡처
일본 경찰 구금 이후 섭식장애를 겪다 숨진 루나(가명). 구금 전 모습(왼쪽)과 구금 이후 야윈 모습. 사진=CNN 캡처

일본에서 폭행 혐의로 체포돼 18일간 구금됐다가 불기소 처분을 받은 16세 소녀가 석방 약 5개월 뒤 영양실조로 숨진 사건을 두고 국가배상 소송이 시작됐다. 유족은 경찰과 검찰의 위법한 수사와 장기간 구금이 딸의 섭식장애와 사망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사히신문과 CNN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일본 고베지방법원은 숨진 10대 소녀의 어머니가 효고현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1억900만엔(약 9억21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한 소송의 첫 변론을 열었다.

유족의 요청에 따라 숨진 소녀는 '루나'라는 가명으로 알려졌다. 루나는 지난해 6월 17일 자신이 일하던 효고현의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이용자를 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다. 해당 시설은 루나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경찰은 루나가 같은 해 2월 시설 행사 중 다른 직원과 공모해 이용자의 턱을 여러 차례 눌렀다고 의심했다. 그러나 루나는 “다른 사람을 물려고 해 이를 막기 위해 턱에 손을 댄 것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루나는 체포와 송치 이후 모두 18일간 경찰 유치장에 구금됐다. 검찰은 시설 운영자인 어머니가 증거를 없앨 가능성이 있다며 접견 금지를 요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루나는 구금 기간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다.

구금 중 작성한 메모에는 극심한 불안감이 고스란히 담겼다. CNN이 확인한 메모에서 루나는 “제발 부탁한다. 엄마를 보고 싶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충격을 받아 밥을 먹을 수 없다”, “내 자유를 돌려달라”고 반복해서 적었다.

루나는 구금 기간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고, 석방 전날인 지난해 7월 3일 구토를 한 뒤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이튿날 처분보류 상태로 풀려났으며 사흘 뒤 최종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어머니는 석방 당시 딸의 모습이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고 CNN에 말했다. 그는 “뼈와 가죽만 남은 것처럼 야위어 소리를 지르며 울면서 나왔다”며 “10m도 제대로 걷기 힘들 정도여서 차까지 데려가야 했다”고 회상했다.

석방 이후에도 상태는 회복되지 않았다. 루나는 급성 스트레스장애(ASD)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고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됐다. 치료에도 체중은 지속해서 감소했고 지난해 12월 14일 저영양 상태로 숨졌다.

CNN에 따르면 사망 당시 루나의 체중은 약 20㎏까지 줄어 있었다. 이는 평균적인 6세 여자아이의 체중과 비슷한 수준이다. 사망 원인은 섭식장애에 따른 영양실조로 알려졌다.

어머니 측은 당시 16세였던 루나에게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었던 만큼 체포와 장기간 구금 자체가 불필요하고 위법했다고 주장한다. 변호인이 구금 당시 전달한 '피의자 노트'에는 조사 과정에서 “사실은 네가 한 것 아니냐. 솔직히 말해라”는 말을 들었다는 내용도 적혀 있어 자백을 강요하거나 유도하는 수사가 있었다는 것이 원고 측 주장이다.

일본 소년법은 미성년자를 구금하는 것은 '부득이한 경우'에 한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이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실제 수사 현장에서 폭넓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CNN에 따르면 2024년 일본에서 구금된 20세 미만 피의자는 6000명 이상이었으며, 이 가운데 약 4000명이 15일 넘게 구금됐다.

검사 출신인 우에하라 미키오 변호사는 루나의 사망을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며 “구금이 정말 필요했는지 강한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메이지대 이시다 도모노부 교수도 범죄 혐의의 정도와 피의자가 미성년자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2주가 넘는 구금이 비례적인 조치였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장기간 신병 구금 관행은 해외에서 이른바 '인질사법(hostage justice)'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만 일본 법무성은 피의자의 권리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며 이 같은 비판을 거듭 부인해왔다.

이번 소송에서 효고현과 일본 정부 측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해달라고 요청했다. 효고현 경찰은 “경찰관의 수사와 유치시설에서의 대응에 국가배상법상 위법한 점은 없다고 판단한다”며 구체적인 주장은 향후 재판에서 밝히겠다고 했다. 고베지검은 수사의 구체적인 내용과 관련된 사안이라며 별도 언급을 삼갔다.

어머니는 이날 딸이 체포되기 사흘 전 찍었다는 웃는 모습의 사진을 들고 법정에 출석했다. 그는 법정에서 “왜 딸의 신체를 구속할 필요가 있었는지, 딸의 생명과 존엄을 제대로 지켰는지 밝혀달라”며 “법원이 독립적인 입장에서 사실과 증거를 살펴봐 달라”고 호소했다.

CNN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이번 소송이 일본의 형사사법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이 소송에서 이기는 것은 루나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더라도, 그 아이가 살았고 사법제도를 바꾸는 유산을 남겼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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