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신에 대한 믿음이 강한 일본에서 살인이나 자살 등 사망 사고가 발생한 이른바 '사고물건'이 저렴한 가격으로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기피 대상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집값과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오히려 이를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최근 일본에서는 살인이나 자살, 고독사 등이 발생한 주택을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임대하거나 구매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과거 사망 사고나 범죄 등이 발생한 부동산을 '지코붓켄(事故物件·사고물건)'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억울하거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사람의 영혼이 이승에 남는다는 믿음이 있어 이러한 주택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같은 인식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을 이유로 사고물건을 선택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도쿄 세타가야구의 한 원룸에 거주하는 여성 류아는 자신이 사는 집에 귀신이 있다고 믿는다. 그는 4년 전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부터 기이한 경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류아는 “집을 보러 갔을 때 한 남성이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며 “부동산 중개인은 그 남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귀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반항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귀신과 친구가 되고 싶어 이사를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류아는 이사한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집 안에서 끊임없이 발소리와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주장했다.
류아가 거주하는 집은 과거 한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곳이다. 덕분에 그는 주변 시세보다 약 30% 저렴한 월세를 내고 있다. 도쿄의 인기 주거지역인 세타가야구에 위치한 이 원룸의 면적은 약 25㎡다. 통상 이 정도 원룸의 월세는 6만2000엔(약 52만5000원)이지만, 류아가 내는 금액은 4만5000엔(약 38만1000원)에 불과하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사고물건이라는 이유만으로 임대료나 매매가격이 크게 낮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도쿄의 부동산 중개업자 에릭 오스캠프는 “일본인들은 미신을 강하게 믿는 편이라 사고물건을 특히 꺼린다”며 “묘지가 보이는 아파트조차 세입자를 구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오스캠프에 따르면 현지에서 가장 기피하는 매물은 집 안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한 경우다. 그는 “건물 옥상에서 누군가 뛰어내린 경우에도 많은 세입자가 이사를 떠난다”고 말했다. 심각한 범죄나 고독사가 발생한 주택 역시 기피 대상에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러한 인식을 이용해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집을 마련한 사례도 있다.
일본에서 약 40년간 거주한 미국인 다이앤 틴처는 일본 남서부 가고시마현에서 방 3개짜리 주택을 2000만엔(약 1억6900만원)에 구매했다. 인근 유사 주택의 가격이 최대 4500만엔(약 3억8100만원)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해당 주택에서는 과거 고령의 여성이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이러한 사연 때문에 매매가격이 크게 낮아졌다는 사실을 틴처에게 미리 알렸다.
틴처는 “나는 귀신을 믿지 않지만 일본인들이 미신을 많이 믿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며 “만약 이 집에 귀신이 있다면 이렇게 훌륭한 집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게 해준 그에게 매일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사고물건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웹사이트도 운영되고 있다. 2005년 개설된 '오시마랜드(Oshimaland)'는 사고물건의 위치와 해당 주택에서 발생한 사건을 공개하는 사이트다. 처음에는 도쿄 지역만 다뤘지만 이후 일본 전역으로 확대됐으며, 2011년부터는 해외 매물도 소개하고 있다.
오시마랜드 설립자 오시마 데루는 과거 일본에서 사고물건이 '매력적이지 않은 선택지'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가격과 생활비가 치솟으면서 사고물건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일본인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가격만 저렴하다면 사고물건에 거주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일본 정부는 사고물건에 관한 정보 공개 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2021년 발표된 지침에 따르면 부동산 중개업자는 자살이나 살인, 화재로 인한 사망, 시신이 장기간 발견되지 않은 사건 등이 발생한 사실을 거래 상대방에게 고지해야 한다.
임대주택은 원칙적으로 사건 발생 후 3년간 관련 사실을 알려야 하며, 매매의 경우에는 고지 기간에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다만 일반적인 자연사 등은 고지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