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찬교수의 광고로 보는 통신역사]〈69〉초고속인터넷 K모델, 수익성 연구에서 세계 무대로

2000년 필자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 초고속인터넷을 담당했다. 당시 KT는 요금이 너무 낮아 손익분기점(BEP)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슈퍼컴퓨터 계산 결과를 근거로, 이를 기간통신 역무로 지정하고 요금인가제를 도입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진의를 파악하고 수익 전망과 정책 대안을 검토하기 위한 킥 오프 미팅에는 B 실장(전 국회의원)과 N 국장(김앤장 고문)이 동석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만큼 연구 일정과 방향을 설명하는 기자 간담회도 열렸다. 서비스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통신사 담당자들조차 내용을 잘 알지 못했다. 작업 초반 가장 애를 먹인 것은 가입자 수 예측이었다. 극히 짧은 기간 내에 가입자 수가 1000만을 넘어서는 전례 없는 급성장 패턴으로 제대로 된 계량적 분석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연구진은 주요 증권회사의 분석 보고서를 모아 전망치를 칠판에 늘어놓고 며칠간 난상토론을 벌인 끝에 5년의 가입자 수를 추정했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이 같은 집단지성의 예측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2004년 8월 KT의 세계 초고속인터넷 시장 선도 홍보(왼쪽) & 2001년 5월 ITU 최초의 브로드밴드 워크숍
2004년 8월 KT의 세계 초고속인터넷 시장 선도 홍보(왼쪽) & 2001년 5월 ITU 최초의 브로드밴드 워크숍

분석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정작 문제가 된 것은 KT가 아니라 시장에 먼저 진입한 두루넷·하나로통신이었다. 당시 요금과 투자 규모로는 BEP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고 이를 전해 들은 담당자들은 사색이 돼 본사로 돌아갔다. 세계 최초라는 자부심과 환희에 들떠 있던 시장이 머지않아 구조개편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보고서에는 이들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한시적으로이나마 망 세분화를 무상으로 조속히 행할 필요가 있다는 정책대안을 담았다. Y 원장(김앤장 고문)은 원내 낙관론과 배치되는 이유를 물어왔다. 필자는 부가서비스로 분류돼 누구나 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이 성공 요인이었지만, 과도하게 집행된 설비투자와 마케팅이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상 이듬해 정부는 과도한 경쟁으로 설비투자가 중복되는 낭비를 문제 삼아 실태 파악에 나섰고 다양한 구조조정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연구가 마무리될 무렵 ITU에서 최초의 브로드밴드 워크숍을 개최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국내 현황·이슈 자료를 참고하라고 보냈더니 참석 요청이 왔다. 우리의 초고속인터넷이 선진국에 뒤질세라 정신없이 달리던 단계를 넘어 한국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이고 경제·사회·문화를 변혁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회의장에서는 졸지에 토론의 중심에 섰다. 아직 시장도 없는 4개 회원국 분석 사례를 제쳐 놓고 한국의 시장 역동성에 관심이 집중됐다. 한나절 동안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강도의 질문 공세를 받았다. 한국 사례는 ITU 워크숍 보고서에서 주요 논의의 소재가 되었다. 통신·케이블 매체를 구분하지 않는 기술 중립적 규제의 중요성이 드러났고, 경제 발전 수준만으로 초고속인터넷 보급 요인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도 제기됐다.

워크숍에 동석했던 K 참사관(김앤장 고문)에게 본국에 보낼 전문 제목을 'K-모델은 OECD의 망개방 권고와 달리, 설비기반경쟁을 구현한 성공사례'라고 귀띔해주었다. 바야흐로 한국의 초고속인터넷은 국내의 활성화 정책 대상을 넘어서 세계가 주목하는 모델로 올라선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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