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10월까지 인프라 구축
주식을 팔고 매도대금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기존 이틀에서 하루로 줄어든다. 1972년 도입된 국내 증권시장의 T+2 결제 체계가 50여 년 만에 T+1로 바뀌는 것이다. 다만 외국인 투자자의 시차와 환전 문제, 금융회사들의 전산·업무체계 개편 등을 고려해 실제 전환은 2028년 중 추진된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금융투자협회 등 증권 유관기관은 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증권시장 결제주기 단축 로드맵(초안)'을 발표했다.
현재 국내 주식시장은 거래가 체결된 날(T)로부터 2거래일 뒤에 결제가 이뤄지는 T+2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월요일에 주식을 팔면 수요일에 매도대금이 입금되는 방식이다. T+1으로 바뀌면 다음 날인 화요일에 돈을 받을 수 있다.
결제주기 단축 논의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월 청와대 자본시장 간담회에서 “주식은 오늘 팔았는데 왜 돈은 모레 주냐”고 지적하면서 본격화됐다. 당초 유럽의 전환 시점인 2027년 10월에 맞추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유관기관들은 해외 시장의 전환 사례와 국내외 투자자들의 준비 상황을 고려해 2028년을 목표 시점으로 제시했다.
결제주기가 짧아지면 투자자들의 자금 활용도도 높아진다. 주식을 매도한 뒤 하루 만에 대금을 받을 수 있어 재투자나 자금 회전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식을 사는 투자자는 매수대금을 하루 먼저 마련해야 한다.
미수거래 투자자의 상환 일정도 앞당겨진다. 기존에는 매수대금을 제때 갚지 못하면 T+3일에 반대매매가 이뤄졌지만, T+1 체계에서는 T+2일로 하루 빨라진다. 증권사가 착오매매를 정정하는 신청 시한도 다음 날 오후 3시30분에서 거래 당일 오후 8시30분으로 변경된다.
배당을 받을 수 있는 주식 매수 시점도 달라진다. 현재는 배당 기준일 이틀 전까지 주식을 매수해야 하지만, 결제주기가 단축되면 기준일 하루 전까지 매수하면 주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시장 전체적으로는 결제 위험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거래 체결 이후 실제로 돈과 주식이 오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증권사들이 결제 불이행 위험에 대비해 부담하는 증거금과 유동성 부담도 줄어들 수 있다. 2024년 5월 T+1 체계를 도입한 미국에서는 청산소(NSCC)가 회원사로부터 받는 청산기금이 전환 직전 3개월 평균보다 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외국인 투자자의 결제 업무를 정해진 시간 안에 처리하는 것은 주요 과제로 꼽힌다. 올해 상반기 기준 외국인은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38.9%, 거래대금의 24.7%를 차지한다. 해외 보관은행과 국내 보관은행을 거쳐 결제하는 외국인 투자자는 거래 확인부터 원화 환전까지 처리해야 하는 시간이 크게 줄어든다.
특히 미국 금융회사의 업무시간은 한국 시각으로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다. 미국 투자자들은 사실상 하루 근무시간 안에 매매 내역 확인과 환전 등을 마쳐야 한다. 새벽 시간대에는 외환시장 거래가 상대적으로 적어 원화를 사전에 확보해야 하는 부담도 발생할 수 있다.
아시아 주요 시장과 결제 일정이 달라지는 점도 변수다. 일본은 2019년 T+2 체계로 전환한 뒤 아직 T+1 전환 일정을 확정하지 않았다. 일본 주식을 매도해 한국 주식을 매수하는 글로벌 펀드의 경우 일본 매도대금이 들어오기 전에 한국 주식 매수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실제 해외 증권사와 보관기관, 투자자 등 32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27곳(84.4%)이 2028년 하반기 이후 전환을 희망했다. 투자자 21곳 중 7곳은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제주기가 단축되면 한국 투자 비중을 줄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유관기관은 이런 우려를 반영해 단계적으로 시스템을 개편할 계획이다. 거래소와 예탁결제원은 2027년 10월까지 청산·결제 인프라 구축을 마치고, 증권사와 외국인 투자자는 2028년 1분기까지 전산 개발과 업무체계 개편을 완료하도록 지원한다. 이후 최소 6개월간 시장 전체가 참여하는 통합 테스트를 진행한다.
외국인 투자자의 결제 절차도 간소화한다. 예탁결제원 자체 시스템을 개발하고 미국 예탁결제기관인 DTCC의 거래관리시스템(CTM)과 연계해 기존 12단계인 결제 업무를 5단계로 줄일 방침이다. 증권사 간 증권보유정보 공유와 자동대차제도 도입도 추진해 결제 실패를 예방한다.
개인투자자들은 결제주기 단축에 앞서 대출금리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증권금융이 투자자예탁금을 재원으로 증권사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하고, 증권사들이 이를 활용해 매도대금담보대출 금리를 낮추는 방식이다.
매도대금담보대출은 주식을 판 투자자가 실제 매도대금을 받기 전에 해당 주식을 담보로 증권사에서 돈을 빌리는 상품이다. 대출 기간이 1~2일로 짧고 거래소가 결제를 보증해 위험이 낮지만, 기존 금리는 연 7.5~10% 수준이었다. 유관기관은 금리가 연 5% 중후반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2일, 키움증권은 오는 20일 관련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유관기관은 투자자 한 명당 이자 부담이 약 25% 줄고, 취급 증권사가 12곳으로 확대되면 전체 투자자의 이자 부담이 연간 약 15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기관투자자의 유동성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도 병행된다. 예탁결제원은 이달 결제촉진대금 구조를 개편하고, 거래소는 내년 1월 결제일 장중 거래증거금 재산출을 시행한다. 내년 상반기부터는 결제대금 분할결제도 허용할 계획이다.
외환당국도 외환시장 거래시간을 평일 24시간으로 확대하고, 2027년 1월 가동을 목표로 역외 원화결제시스템을 준비하는 등 관련 인프라를 정비하고 있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