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이병헌 중기연구원장 "중기·벤처 투자 생태계, 민간 중심 자생력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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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가 만났습니다]이병헌 중기연구원장 "중기·벤처 투자 생태계, 민간 중심 자생력 키워야"

“중소기업 정책의 장기 의제를 던지는 것이 중소기업연구원의 핵심 역할입니다. 중소기업 중심의 수평적 생태계 조성, 플랫폼 비즈니스 육성, 민간 생태계 수립처럼 장기 차원에서 고민할 수 있는 과제를 정부에 제안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병헌 중소기업연구원장은 지난 14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취임 이후 100일 안팎 기간 동안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대응책과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 등 중소벤처기업부의 굵직한 정책 과제에 대한 시사점을 주는 데 집중했다.

중소기업의 시급한 당면 과제 해결을 넘어 장기 정책 방향에 대한 통찰 역시 제안하는 것이 중소기업연구원의 존재 이유라고 이 원장은 시종 강조했다. 중소기업청에서 중소벤처기업부로 위상이 올라간 만큼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연구원의 역할 역시 보다 막중해졌기 때문이다. 그간 중소기업 생태계의 해묵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이 중기연 연구진을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 이 원장 취임 이후 중소기업연구원이 발간하는 보고서는 중기부뿐만 아니라 여러 관계부처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년간 중소기업·벤처기업 분야에서 연구를 이어온 이 원장의 고민이 정책 구현 과정에 녹아들고 있다는 평가다. 스마트공장 고도화를 넘어 제조플랫폼 벤처기업의 육성 방안부터 모험자본시장에서 정부와 민간 생태계의 분리 등 굵직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 원장은 “정부와는 독립적인 시각에서 장기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 전문기관 거듭나겠다”면서 “중소기업·벤처기업의 정부 의존을 줄이고 민간 중심으로 자립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우선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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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김승규 벤처유통부장

-취임 100일이다. 그간 소회는.

▲중소기업 정책은 아마 자체 평가한다면 잘해야 80점 수준 정도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워낙에 계속 중소기업이 좋아질 일보다 나빠질 일만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복지 분야는 정부가 재정만 투입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소상공인 분야는 정부가 정책을 펼친다고 해서 당초 계획대로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운 분야다. 코로나19로 사정은 더 어려워졌다.

상황이 점점 막중해진다. 초기에는 집중한 것이 각국에서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 지를 들여다봤다. 해외사례를 보며 우리는 어떤 정책 방향을 가져가야 하는지를 연구해, 거의 매주·하루 단위로 장관과 정책 결정자에게 현황을 보고했다. 큰 틀에서 방향성을 연구원에서 어느 정도 잡았다고 자부한다.

-큰 틀에서 중소기업·벤처기업 정책의 지향점은.

▲아직까지는 생태계가 정부 주도로 짜여 있다. 중소·벤처기업, 창업기업의 성장 과정에서 정부 의존도가 굉장히 심해졌다. 한편으로는 대기업과 양극화 심해지니까 정책이 개입해 지원하다보니 의존도가 커진 것이다.

결국 나아갈 방향은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다. 민간에서의 투자와 창업과 성장, 회수를 거쳐 재투자에 나서는 선순환이 민간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는 보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벤처투자 규모가 5조원에 이른다. 벤처투자의 절반은 정부가 모태펀드로 출자해 만드는 돈이다. 더 바람직해지려면 정부가 2조원을 출자했다면 민간이 그 금액의 5배 이상을 출자해 10조원 규모는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다. 벤처펀드뿐만 아니라 연구개발(R&D) 영역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전체 중소기업 R&D 투자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정부 투자 만큼 민간 투자도 비례하거나 그 이상 늘어나야 하는데 지금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한계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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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간 중심 생태계를 만들 수 있겠나.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민간과 시장이 가진 선별 능력을 믿고 민간이 투자할 때 정부가 보조해 돕는다는 방향이었다.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투자를 하니까 정부가 투자하는 만큼 반대로 민간 투자가 빠져나가는 구축효과가 발생한다. 이 점을 어떻게 보완하느냐가 숙제다.

정부가 민간과 같은 플레이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민간과 정부의 돈을 같은 주머니에 섞어 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정부는 민간이 못하거나 안하는 영역에서 선도적으로 또는 독자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정부가 무슨 선별 능력이 있어서 마음대로 투자하느냐라는 논리에 그간 막혔다. 정부가 민간이 투자하지 않는 영역에 투자하면 당연히 처음에는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다. 정부 투자를 신호로 여기고 민간이 따라 들어와야 하는데, 이렇게 사업을 하면 당장 국회 등에서 정부 돈으로 뭐하는 짓이냐는 지적이 들어온다. 그러니 관료들도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워진다.

벤처캐피털(VC)이 발전한 미국에서는 CIA(중앙정보국)가 직접 펀드를 운영한다. 이 펀드에서는 민간이 시장성 문제 등으로 인해서 투자하지 않는 국가 안보나 전략 기술에 투자를 한다. 인터넷 기술 대부분은 국방에서 나왔다. 이런 식의 투자를 지행해야 한다.

이제는 정부가 민간과 이별해야 한다. 정부는 정부 일하고 민간은 민간 일을 해야 한다. 가능하면 민간에 매칭하는 것은 최소화하고, 정부 자금만으로 펀드를 만들어야 한다. 스마트공장이나 리쇼어링(본국회귀) 같은 프로젝트는 민간이 직접 하기 어렵다. 이런 부분에서 정부가 시장을 만들거나 신기술을 초기에 키우는데 투자하고 집중해야 한다.

그린뉴딜도 역시 정부가 선도 투자에 나서야 할 분야다. 소셜벤처기업을 포함한 사회적 기업은 민간이 투자 안한다. 민간으로 돈을 내리면 80~90% 이상은 정보통신기술(ICT)이나 바이오 투자에 몰릴 수 밖에 없다. 그쪽이 잘된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안다. 결국 민간은 돈이 보이는 데를 찾아갈 수 밖에 없다. 민간이 투자 하지 않는 분야로 정부가 찾아들어가야 한다.

다양한 세제 혜택을 주거나, 그간 부동산을 통해 상속하려는 사람이 차라리 벤처펀드를 통해 상속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부동산에 몰리는 돈을 벤처로 흡수해야 한다. 그다지 큰돈도 아니다. 지금 벤처펀드 규모가 5조원인데, 부동산에는 100조원이 가 있다. 30~40%만 흡수해도 세계 최고의 벤처투자 생태계가 생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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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정책 단위에서 관심 두는 분야가 있다면.

▲스마트공장이다. 이제는 개별 기업에 제조실행시스템(MES)이나 전사관리시스템(ERP)을 까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운영 인력 등의 문제로 지속 운영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스마트공장에서 나오는 데이터로 부가가치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스마트공장 고도화가 지속 가능하려면 제조데이터 플랫폼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스마트공장 시설과 설비 등을 깔아놓은 기업을 묶어 데이터를 분석하고 서비스할 수 있는 제조데이터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기업이 잘 되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나가서 기업 대 기업(B2B) 특화 벤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자연스레 제조업 생태계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제조데이터 플랫폼 벤처기업은 여러 제조기업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에스원 같은 물리보안 서비스를 하는 대기업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아직 에스원은 공장 내부가 아닌 물리보안 영역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런 통합 보안 개념이 기업 제조 내부로 들어가 프레스, PLC머신 등 각 공정 단위에서 관리하는 것이다.

아마존이 처음에는 도서에서 시작해 영역을 넓힌 것처럼 제조 플랫폼 기업 역시 어떤것이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될지는 차후에 찾을 일이다. 노동이나 보안, 표준화 문제 등이 남았지만 서비스를 확대해 플랫폼으로 나아간다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제조플랫폼 기업 육성을 통해 제조업의 비대면 수출도 기대할 수 있다. 아마존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제는 기업 대 소비자(B2C) 간 거래뿐만 아니라 B2B 거래가 늘어나고 있다. 부품도 온라인으로 거래를 하게 되는거다. 이제는 아마존 스토어에서 자동차 볼트와 너트까지 모두 살 수 있다. 용접 전문가들이 알리바바에서 전문 장비를 산다. 우리 역시 그렇게 변화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비대면 수출 활성화 역시 주요 연구 테마다.

결국 플랫폼 이코노미를 주목해야 한다. 과거에는 대·중소기업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이제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과 플랫폼을 통해 거래하는 기업의 문제로 변화하고 있다. 플랫폼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제도적으로 중요한 영역이다. 어떤 플랫폼이 자신과 친한 회사를 의도적으로 순위를 올리고 싫은 회사를 밀어내는 것과 같은 사례를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종류의 규제부터 플랫폼 비즈니스의 표준을 연구하고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연구는 어떤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나.

▲플랫폼 비즈니스는 기술 변화와 혁신에 따른 메가 트렌드가 됐다.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계속 위력 발휘할 것이다. 당장 한국형 뉴딜에서도 데이터, 클라우드가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지만 인프라에 해당하는 상당수 서비스는 이미 글로벌 기업이 장악했다. 이런 상황을 보지 않고 우리끼리만 표준을 만들겠다고 하면 그것은 쇄국정책에 불과하다. 경쟁하면서 갈 수 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산업에서 위상을 갖춘 것처럼 데이터 산업이나 클라우드에서 네이버 같은 기업이 그렇게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만 성장 과정에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과 상생을 얼마나 잘 가져가느냐는 계속 지켜봐야할 문제다. 배달의 민족이 어느 나라에 인수돼서 문제라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결국 세계 경제와는 고립될 수 밖에 없다.

플랫폼 기업을 성장시키는데 우리나라의 어려움은 결국 시장 규모가 너무나 작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시장이 ASEAN,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와 같은 시장과 사실상 통합이 되어 있다거나 일본이나 중국과 함께 움직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항상 시장 규모가 너무 작다보니 내부에서 고착화되는 경향이 심하다.

그래서 벤처기업도 결국 글로벌화해야 할 수 밖에 없다. 창업 단계부터 글로벌을 지향하는 벤처기업이 중요하다. 아직 정책은 여전히 국내 시장에서 머무른다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외국인 벤처기업에 대한 시각, 해외 자본이 국내에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시각은 이제 버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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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중소기업연구원 운영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중소기업연구원의 핵심 과제지만 아직도 쉽지 않은 것이 정책 의제를 세우고 중장기 계획을 가져가는 일이다. 수직적 산업구조를 중소기업이 중심이 될 수 있는 수평 구조로 개편한다거나, 제조업의 서비스화, 플랫폼기업 육성 같은 과제가 모두 1~2년 안에 할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적어도 4~5년 단위, 10년 대계를 짜야 하는데 여전히 정책 한계가 있다. 너무 단기 관점의 성과 창출에만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경기 상황 좋지 않으니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매출이 줄고 적자가 나기 시작하면 경영자는 빨리 이익을 내고 비용을 줄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런다고 대부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단기 실적이 안 좋아도 구조적 개선을 해야 결국 턴어라운드하는데 그것을 생각하는 게 쉽지 않다.

연구원 역할은 결국 남들이 쉽게 못하는 장기 관점의 개선 과제를 발굴하는 것이다. 아직 저희가 물적 토대 안되고 인적 역량이 갖추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원장으로서 장기 과제를 던질 수 있는 조직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 제가 가진 미션이다. 그것이 국가적으로도 기여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연구비가 안정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본다. 중소기업연구원을 중소기업기본법과 같은 법령에 전문기관으로 명시해 정부와도 일정 부분 독립적으로 연구하면서도 장기 정책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원장으로서 숙제다. 그것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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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중소기업연구원장은...

이병헌 중소기업연구원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과학과 경영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에서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조사분석 평가 업무로 시작해 하나로통신에서 통신·인터넷 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사이버펄스네트워크에서 투자담당 이사로 재직하며 벤처투자 및 인큐베이션 업무를 총괄하기도 했다. 연구뿐만 아니라 벤처 투자 생태계, 산업계를 두루 거친 전문가다.

중소기업연구원장 부임 이전에는 광운대에서 중소벤처기업 연구를 주로 수행하며 중소벤처기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의미 있는 연구를 여럿 남겼다. 2019년부터 기술경영경제학회 학회장을 맡아 기술혁신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주도해 왔다.

정리=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