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현 교수의 글로벌 미디어 이해하기]〈17〉융합시대: M&A와 파트너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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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우리나라가 지금 위치로 성장하기까지 재벌의 역할이 컸다는 데 이의를 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기업이 대한민국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데 결정타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핵심 사업뿐만 아니라 관련 사업까지 전방위로 확장해 일사불란하게 비즈니스를 함으로써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 이면에 산업 생태계를 단절시키며 독과점 문제를 발생시킨 어두운 측면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재벌 성장 과정에서 무차별성 문어발 경영에 대한 비판도 컸던 게 사실이다.

미디어 산업에서도 거대 기업으로의 성장 과정에는 이 같은 명암이 존재한다. 방송·통신이 결합, 더 나아가 융합하는 시대를 맞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방송사업자가 통신 영역에 진출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통신사가 방송 산업에 진출하는 경우는 많다.

우리나라 통신 3사가 인터넷(IP)TV를 통해 미디어 산업을 재편하고 있는 상황이나 미국 통신사가 인수합병(M&A)을 통해 미디어 산업을 탈바꿈하고 있는 사례가 그렇다.

미국 통신사가 케이블TV에 대항해 IPTV를 출시했지만 그 결과는 미미했다. AT&T는 방송플랫폼을 보유하기 위해 위성방송(다이렉TV)을 인수하고, 나아가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타임워너를 인수했다. 경쟁사 버라이즌은 AT&T 움직임에 대해 전혀 괘념치 않은 듯 다른 길로 미디어 전쟁을 하고 있다.

방송 영역을 어떻게 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직접 할 것이냐와 파트너십을 통해 다른 이의 것을 이용할 것이냐다. 서로 다른 접근 방법에는 미디어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 있는 것 같다.

지난해 말 출시한 디즈니+와 협력 관계를 구축한 버라이즌이 디즈니의 또 다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ESPN+와 훌루를 한데 묶은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고객에 무료로 제공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미국에서도 이런 묶음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AT&T가 OTT HBO맥스, T모바일이 넷플릭스와 퀴비를 각각 묶음 형태로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버라이즌이 묶음 상품을 제공하는 이유가 미디어 산업 변화를 시사하기 때문에 주목된다. 기존 미디어 가치사슬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깨졌음을 전제로 하는 행보다. 시청자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알라 카르테'(요리별 가격)로 선택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치 사슬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 케이블TV 묶음 상품은 사라지고, 다시는 그런 형태로 돌아가지 못할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디어 산업에서는 콘텐츠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지금 콘텐츠 역할이 전통 유료방송에서의 역할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버라이즌이 AT&T처럼 콘텐츠 회사를 인수하지 않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다.

여기에는 신규로 초고속 인터넷 가입 시 절반 넘는 가입자가 방송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전통 유료방송사업자로부터 프로그램 사용료에 온전히 의존하는 콘텐츠 사업자에 대해 비판 시각이 깔려 있다. 더욱이 버라이즌은 고객 획득 게이트키퍼가 자기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굳이 콘텐츠를 소유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버라이즌은 이 때문에 콘텐츠를 차별화한 디즈니, 애플뮤직과 파트너십으로 독점 계약을 맺고 콘텐츠를 확보했다.

미디어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한 AT&T와 버라이즌. 콘텐츠 회사를 인수해 덩치를 키워 미디어 전쟁을 치를 것인가, 통신사로서 본업의 경쟁력을 기르는 한편 콘텐츠는 파트너십으로 확보해서 전쟁을 치를 것인가.

사업 전개와 결과를 보는 관전도 흥미롭지만 이들의 미디어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분명 미디어 산업의 전통 가치사슬은 파괴되고 새로운 현상이 동시다발하고 있다.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국내에서도 KT가 넷플릭스를 품으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 하나에 국한해서 미디어 산업을 볼 게 아니라 전반에 걸쳐 급변하는 미디어 산업 지평 선상에서 봐야 할 것이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