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수의 특이점(Singularity) 시대]〈10〉AI 시대,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최근 몇 년간 급격한 인공지능(AI)의 발전은 “인간은 얼마나 유용한가?”라는 질문을 키우고 있다. 특히 글쓰기, 분석, 사고, 지적 노동처럼 주로 머리로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AI 앞에서 자신의 쓸모를 의심하게 된다. 실제로 육체노동자보다 지적 노동자들이 향후 AI로 더 심각하게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이 인간의 노동을 기계의 노동으로 대체했다면 AI 혁명은 인간의 지능을 기계의 지능, 즉 AI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스마트폰, AI 등 디지털 도구에 점점 의존하면서 인간 자신의 몸·손·감각을 활용한 현장 판단 및 즉흥적 문제 해결 능력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내비게이션이 보편화된 시대에 어느 길이 빠른지, 어느 길이 막히는지 등 몸으로 체화된 지식의 효용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심지어 도로 표지판조차 장식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공간 감각이 무너지고 있고, 나아가 도시와의 직접적 체험 관계도 줄어들고 있다. 매일 자동차로 도로 위를 다니고 있지만 내비게이션으로 우리는 스마트폰에 얼굴을 고정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있는 꼴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기 몸으로부터의 소외다. 우리는 스마트폰에서 모든 것을 확인하고 모니터링하면서 우리 자신의 몸을 잊어가고 있다. 우리는 길을 외우지 않고 내비게이션을 따르고 있다. 고장난 것을 직접 뜯어보지 않고 검색하거나 챗봇에게 묻는다. 몸으로 배우기보다 화면으로 한 간접 체험에 만족한다. 경험하기보다 시뮬레이션한다. 판단하기보다 추천 알고리즘을 따르고 있다. 인간관계 속에서 묻기보다 기계에 묻는 일이 보편화됐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행하는 과정에서 배우기(learning by doing)'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몸을 가진 존재라기보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위 '통 속의 뇌(brain in a box)'처럼 살고 있고 AI와 스마트폰은 이러한 경향을 점차 강화시키고 있다. '통 속의 뇌'는 AI의 은유적인 표현으로 AI가이 외부 세계와 물리적인 접촉 없이 컴퓨터 서버, 칩, 데이터센터, 모델 파라미터 안에 갇혀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 편리함과 효율성에 포장된 AI가 우리의 직업과 일상을 잠식하고 있지만 AI의 확장 영역에는 한계가 존재하고, 이 점에서 인간의 유용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심리학자 로빈 호가스 교수는 학습 환경을 친절한 학습 환경(kind learning environment)과 사악한 학습 환경(wicked learning environment)으로 구별하고, AI가 강점을 가진 것은 전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친절한 학습 환경은 패턴이 반복되고, 규칙이 안정적이며, 피드백이 빠르고 정확한 환경이다. 바둑과 체스가 대표적이며 이런 환경에서는 같은 활동을 반복하면서 전문성을 빠르게 쌓을 수 있다.

반대로 사악한 학습 환경은 정보가 숨겨져 있거나, 피드백이 늦거나, 불완전하거나, 심지어 잘못된 행동을 강화하는 환경이다. 대부분의 현실세계는 친절한 학습 환경보다는 사악한 학습 환경에 가깝다. 경제, 경영, 의료, 정책, 연구, 커리어 선택은 모두 규칙이 불완전하고 피드백이 늦으며 결과와 원인의 관계가 불명확하다. 그래서 단순 반복, 조기 전문화, 정량적 지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친절한 학습 환경일수록 AI가 강점을 드러낸다. 바둑과 체스는 데이터가 많고 규칙이 명확하며 가능한 경우의 수가 구조화돼 있기 때문에 컴퓨터가 빠르게 인간을 능가할 수 있었다. 운전은 바둑보다 복잡하지만 그래도 도로 규칙과 반복 행동이 있어서 중간 정도의 영역이다. 반면에 인간 사회의 많은 문제는 '화성인의 테니스'처럼 규칙을 스스로 추론해야 하고 그 규칙마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암 연구처럼 답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고 패턴이 불완전하며 생물학적 복잡성이 큰 분야는 훨씬 어렵다.

이 사악한 학습 환경에서 인간의 행동은 여전히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유용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이론만 따르지 않고 실제 몸으로 실행하고 이를 통해 배우고 진보를 이루는 존재다. 마치 자기 성찰이나 MBTI 성향 테스트만으로는 자신을 충분히 알 수 없듯이, 실제로 해보고 옮겨보고 실패하고 바꾸는 경험이 자기를 더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AI의 한계선: 로빈 호가스의 두 가지 학습 환경
AI의 한계선: 로빈 호가스의 두 가지 학습 환경

영화 '탑건' 시리즈에서 톰 크루즈는 매번 위험한 비행에 도전하고 이를 성공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톰 크루즈는 영화 속에서 “안전만 찾지 말고 유능해져라(Don't be safe. Be competent)”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비행의 역사에서 많은 조종사들이 음속 돌파에 도전했다가 목숨을 잃었지만, 결국 음속 비행이라는 신세계를 열었다. AI를 통해 우리는 위험을 제거하고 실수를 줄이고 시스템을 안전하게 만들어갈 수 있지만, 안전에 안주하고 있을 경우 진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톰 크루즈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감당할 만큼 인간이 유능해지는 것이다. 무모함이 아니라 위험한 행위를 감당할 수 있는 몸, 감각, 반복 훈련, 판단력, 팀워크, 기술적 이해가 필요하다. 이 점에서 현대 신경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렉산더 루리아 박사의 연구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루리아는 1930년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전통적 농경·목축 생활을 하던 사람들과 근대적 집단농장·교육·직업훈련을 경험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전통적 생활에 머문 사람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경험 기반으로 사고했다. 예를 들어 “북쪽의 눈 많은 곳에 사는 곰은 모두 흰색이다. 어떤 지역은 북쪽이고 눈이 많다. 그 곳 곰은 무슨 색인가?”라고 물으면, 직접 가본 적이 없으므로 알 수 없다고 답했다. 반면 근대적 집단농장, 교육, 직업훈련을 경험한 사람들은 쉽게 흰색이라고 답했다. 현대인들은 추상적 규칙과 패턴을 다른 상황에 옮겨 적용하는 것이 익숙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이는 복잡한 세계를 다룰 때 유용할 수 있지만 지나칠 경우 현실의 맥락과 구체성을 무시할 위험 또한 존재한다.

인간은 단지 머리로 먼저 생각한 뒤 몸을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몸 자체가 세계를 이해하고 기억하고 대응한다. 마이클 폴라니의 암묵지(tacit knowledge) 주장처럼 인간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존재다. 자전거를 타는 법, 골프를 잘 치는 법, 김치찌개를 잘 끓이는 법, 갑작스러운 고장을 해결하는 법 등은 말이나 매뉴얼로 완벽하게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매뉴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각, 타이밍, 균형, 판단이 있고 이러한 능력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몸과 경험에 축적돼 있다.

AI 시대는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고, 몸과 경험을 통해 배운 암묵지를 바탕으로 여러 영역의 지식을 연결하고 낯선 상황에서 적절한 도구를 선택하거나 버릴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유재수의 특이점(Singularity) 시대]〈10〉AI 시대,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AI 시대에 오히려 몸과 경험이 중요하다면 날로 퇴화돼가는 이 능력을 회복할 수 있는가? 이는 단순히 AI를 부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AI를 통해 이러한 능력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집의 망가진 변기를 직접 고치는 일, 악기를 배우는 일, 요리하는 일을 수행하면서 AI의 도움을 받는 등 일상의 작고 구체적인 문제를 AI의 도움 아래 몸으로 해결하면서 현실 세계와의 접촉면을 늘려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싸움, 사냥, 항해, 수리, 길 찾기, 농사, 출산, 이동 같은 신체 능력이 생존과 직결됐다면 지금은 많은 신체 능력이 스포츠, 영화, 취미, 캠프, 피트니스, 리얼리티 쇼, 스턴트 문화라는 특별한 영역으로 한정돼 있다. 과거에는 움직임이 디폴트였다면 현대는 움직임이 없는 것이 디폴트인 시대로 변했다.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골프장에서 카트는 선택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디폴트가 됐다.

AI 시대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통 속의 뇌'처럼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몸으로 배우고, 넓게 연결하고, 자신이 의존하는 세계를 직접 고치고 돌보는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AI 시대 인간의 유용성을 회복하고 지키는 길이다.

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yoojs6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