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말한다]인터넷 실명제 무엇을 남겼나?

 #1. 2009년 4월. 구글은 자사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에 제한적 본인 확인제 도입을 거부하고 유튜브 한국 사이트에 댓글 기능을 폐지했다. 하지만 국가 설정만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바꾸면 실명 확인 없이 얼마든지 댓글을 달고 동영상을 올릴 수 있다.

 #2. 인터넷 동영상 UCC 붐이 일던 2007년, 국내 중소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업체 A사는 인터넷 언론사로 등록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언론사가 아니면 언론 기능의 동영상 UCC를 해선 안 된다는 선관위 판단 때문이었다. 인터넷 언론사로 등록하면서 게시물 실명 인증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사용자 자유도가 떨어져 방문자가 줄었다. 실명 인증 시스템 구축 비용도 적잖은 부담이 됐다.

 

 인터넷 실명제가 국내 인터넷 기업에 역차별로 작용한 사례다. 글로벌 기업은 제도와 기술의 맹점으로 규제하지 못하고, 국내 기업들만 옥죄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이다. 디지털 시대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 개인정보 보호라는 민주 사회 기본권의 범위와 한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도 불을 붙였다.

 악성 온라인 게시물과 댓글을 막자는 취지로 2007년 도입된 제한적 본인 확인제, 이른바 인터넷 실명제가 남긴 과제다.

 작년 말 방송통신위원회가 인터넷 실명제 재검토를 주요 정책 과제로 꼽으면서, 지난 5년 간 국내 인터넷 환경을 규율했던 정책적 틀이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표현의 자유vs책임있는 인터넷 환경=인터넷은 누구에게나 의견과 생각을 자유롭게 밝히고 널리 알릴 수 있는 장을 제공, 표현의 자유를 확대했다. 반면에 악성 비방글이나 허위 사실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흉기가 되기도 했다.

 인터넷 실명제는 책임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자는 점에 초점을 맞춘 제도다. 반면에 이 제도가 이용자 정보를 서비스 제공업체에 남겨 정보 유출의 가능성이 있고, 실질적인 사전 검열로 작용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이 반대 진영의 입장이다. 정치적 표현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크다.

 제도의 실효성도 도마에 올랐다. 실명제 도입에 따른 악성 게시물 감소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것. 관련 연구들은 엇갈린 결과를 보이나, 뚜렷한 성과를 거뒀다고 보긴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지숙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실명제 실시 후 악성 댓글은 줄었으나 악성 게시물은 줄지 않았고, 의사소통을 위축시키는 등 부분적 효과를 나타냈다”며 “실명제 등 환경 요소뿐 아니라 게시물 내용 등 이용자 역할도 함께 작용한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 역차별=이 제도는 해외 기업에 비해 국내 기업을,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을 역착별한다는 점에서도 논란이 됐다. 해외 기업은 국내 법제도의 손이 미치지 않을뿐더러, 기술적으로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실명 기반 서비스로 서비스 자유도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중소기업으로선 실명 인증을 위한 시스템 구축과 개인정보 관리 등도 적지않은 부담이다.

 네티즌들이 자유로운 표현과 사용 편의성을 찾아 해외 서비스로 ‘망명’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트위터·페이스북 등 해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들이 인기를 끌면서 인터넷 실명제는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국내 지사 없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서비스에 국내 규제를 강제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사 사이트 댓글을 SNS 계정과 연계하는 소셜 댓글 서비스까지 등장하자, 결국 정부는 SNS는 실명제 대상이 아니라고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개인 정보보호 이슈 촉발=실명제는 개인정보 이슈도 촉발시켰다. 실명 확인을 위해 보관한 주민등록번호가 해커의 표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네이트 회원 3500만명, 넥슨 메이플스토리 회원 1320만명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등 굵직한 정보보호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일 방문자 10만명 이상 사이트에 실명 인증을 요구하는 실명제로 인해 주요 사이트들은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 정보를 보관해야 한다. 각종 인터넷 및 금융 활동이 주민등록번호 기반으로 이뤄지는 현실에서 주민등록번호의 가치는 크다.

 방통위는 “주민등록번호 대조 후 관련 정보를 폐기하면 된다”고 하지만 인터넷 업계는 혹시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을 우려해 관련 정보를 보관해 왔다. 최근에야 정부 방침 변화에 따라 주민등록번호 폐기에 나섰다.

 ◇인터넷 실명제 향후 방향은=인터넷 실명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정부 역시 관련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개선 방향을 찾고 있다. 현재로선 완전 폐지보다는 사용자 불편을 최소화하는 기술적 조치에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아이핀 등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익명에 기대 악성 글을 퍼뜨리는 것에 대한 1차적 방어막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자칫 기존 인터넷 실명제의 문제를 그대로 둔 채 ‘눈 가리고 아웅’ 격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주민등록번호 보관 주체를 개별 업체에서 외부 신용정보 기관 등으로 바꾸는 것일 뿐, 부작용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