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사퇴]경착륙 아닌 연착륙으로

 지난 4년 간 방송통신위원회를 이끈 최시중 위원장이 사퇴했다. 사실상 ‘불명예 퇴진’이다. 방통위는 잇따른 정책실패 비난과 비리의혹 속에 결국 위원장까지 물러나며 최악의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방통위로서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기도 하다. 지난 악재에 매달리기보다는 방송통신 융합기구로서 본원적 역할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행정 공백 최소화=최 위원장의 갑작스런 사퇴 발표에 방송통신 업계 안팎에서는 행정 공백 우려가 커졌다. 이미 올 초 전 방통위 직원 비리의혹이 제기된 후 의사결정 속도가 더뎌졌다는 불만이 나오던 차였다.

 실제로 지상파-케이블TV 재송신 분쟁에 선제 대응하지 못하면서 사상 초유의 ‘블랙아웃’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진행된 지상파 재송신제도 개선안 도출에도 실패했다. 방통위는 상반기 많은 현안을 안고 있다. 지상파 재송신제도 개선, 미디어렙법안 후속작업, 미디어산업 균형 발전 등 방송 이슈가 산적했다. 차세대 통신서비스 활성화를 통한 스마트 혁명을 이어가는 것도 주된 과제다. 당장 한국형 망 중립성 정책 2차 협의, 와이브로 활성화 방안 수립, 휴대폰 유통구조 혁신작업 등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불발로 끝난 신규 제4 이통에 대한 뚜렷한 방침도 없다.

 최 위원장이 사퇴의 변에서 밝힌 대로 “스마트 혁명을 이끌고 미디어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주요 정책이 발목을 잡혀선 안 된다”는 게 중론이다. 방통위 산하 협회 관계자는 “위원장 사퇴로 인한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 현재 추진 중인 사안은 문제가 없다면 신속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착륙 아닌 연착륙으로=방통위는 최 위원장 사퇴와 관계없이 차기 정부 출범 시 조직개편이 가장 유력한 부처로 거론됐다. 2008년 출범 이후 정치적 배경이 앞선 행정으로 방송과 통신산업 간 정책 균형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방통위가 워낙 해 놓은 게 없어 (위원장 사퇴 이후에도) 실질적으로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국내 중소 통신업체 사장의 말은 방통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미 방통위 직원들 사이에서 조차 “차기 정부에서 더이상 ‘방송통신위원회라’는 조직은 없을 것”이라고 자조하는 실정이다. 문제는 차기정부 출범까지 1년간의 시간 동안 방통위 역할이다. 가뜩이나 정권 레임덕 현상이 심해지는 시점이다. 일련의 사태로 인해 자칫 기능이 멈춰버리면 곤란하다. 반대로 정권 말기 특성상 정치적인 정책 결정으로 또다시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스마트 융합산업을 촉진할 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해 차기정부에서 ‘스마트 코리아’ 신화를 써갈 수 있는 토대를 닦아야 한다. 경착륙이 아닌 연착륙으로 이어질 수 있는 행정이 필요하다.

 ◇방통위 조직정비 힘써야=방통위 내부 분위기를 추스르는 것도 주요 과제다. 방통위는 지난 27일 늦은 오후 과장급 전보 인사를 발표한데 이어 일부 실장급 인사를 내부에 공지했다. 방통위 한 고위공무원은 “위원장 사퇴는 아쉬운 일이지만 남은 직원들은 기존 업무를 그대로 수행할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혼란을 막기 위해 후임 방통위원장 선임을 서두를 필요성도 있다. 27일 최 위원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자마자 방통위 직원들 사이에는 “○○○가 내정됐다” “인사청문회 준비까지 마쳤다”는 소문이 돌았다. 후임 인선작업을 서두르는 동시에 방송통신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인사를 발탁해 방송통신산업 발전을 위한 초석을 다져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시소·오은지기자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