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부품산업의 발자취-컨덴서(24)

70년대 말부터 필름컨덴서 생산업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5~10 년정도의 경력을 쌓은 각 회사의 기술자들은 저마다 독립을 선언하고 나섰다.

기업은기업을 낳고 새 기업은 또 새로운 기업을 낳는 번식활동이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왕성하게 이어졌다.

80년대후반에는 하청생산 수준의 업체를 제외하고 자체적인 영업 활동이 가능했던 업체들만 줄잡아도 1백여개사에 달했다.

전해컨덴서나세라믹컨덴서의 경우 지금까지 생산업체수가 10개를 넘은 적이없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필름컨덴서의 경우는 "업체난립"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 했다.

필름컨덴서,정확히는 DC회로용 PET필름컨덴서만큼 만만한 사업이 없었다.

큰자본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권취기 몇대에 직원 몇 명만 거느리면 버젓한 기업체가 됐다.

업체정리과정에들어서 있는 지금에 와서는 복사기 한대 들여놓고 인쇄소를 차리는 식의 이같은 창업열기가 전체적인 산업발전에 도움이 됐다기 보다는해를 끼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한국에서 필름컨덴서산업이 이처럼 "번창"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필름 컨덴서산업을 떠받치는 후방산업기반이 그만큼 탄탄했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없다. 에폭시레진.리드선등 범용부품의 원자재는 물론 필름컨덴서의 구성 재료, 즉PET필름과 알루미늄포일이 80년 이전에 국산화됐으며 핵심설비인 필름권취기 가 80년초 국산화돼 싼 값에 공급되면서 창업열기를 더욱 부추겼다.

필름컨덴서용원자재중 가장 먼저 국산화된 것은 알루미늄포일로 72년 일본 의 도요알루미늄과 기술제휴한 삼아알미늄에 의해서였으며 리드선은 IE 단자 가 74년경부터 생산했다.

컨덴서용몰딩수지로 에폭시레진이 사용된 것은 72년경부터로 처음에는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이전에는 PET레진이 주로 사용됐고 호마이카를 사용하기도했다. 이것들도 물론 수입됐다.

에폭시 1차가공업체인 국도화학이 72년 2월에 설립돼 있었으나 전자 부품용에폭 시레진의 국산화는 70년대 후반에 가서야 이뤄졌다. 국산화 이전까지는일본의 산유레진과 합작한 한국월라(현 성문레진)가 국내수요의 대부분을 수입해 공급했다.

국도화학을비롯 수지업계가 컨덴서용 에폭시레진 국산화에 착수한 것은 70 년대 중반부터였으며 70년대 말부터 건설화학.한국월라.정도화성 .세닉스 등에폭시 2차가공업체들에 의해 잇따라 개발 됐다.

78년에는선경 화학(현 SKC)이 필름컨덴서 원자재중 가장 핵심을 이루는 PET 필름을 개발하는 개가를 이루었다. 처음부터 컨덴서용 박막필름까지 생산된 것은 아니었으나 당시 순수한 한국기술진에 의해 PET필름이 개발된 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82년경에는컨덴서용 박막필름까지 개발이 완료됐으며 SKC는 성문공업(현 성문전자 을 컨덴서용 PET필름의 대리점으로 지정, 본격 공급하기 시작했다.

PET필름의국산화로 필름컨덴서 원자재 국산화율은 1백%에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원자재 국산화업체들에게 있어서 컨덴서용 제품이 전체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다.

국도화학.삼아알미늄.SKC등이생산하는 에폭시레진.알루미늄포일.PET 필름중 컨덴서용이래봐야 단 몇%에 불과하다. 제품개발및 생산에 드는 비용만큼 이익이 크게 남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들 소재업체들이 사업을 계속 꾸려나가고 있는 것은 전 자재료용 제품개발이 매출확대보다는 해당품목의 기술축적에 큰 도움이 되기때문이다. PET 필름의 경우 77년에 상공부에 의해 국산화계획이 처음 세워 졌을 당시의개발목표는 4~1백미크론수준이었다. 그러나 현재 세계수준은 1미크론대를 돌파하고 있으며 SKC의 박막화 수준도 2미크론대까지 진입하고 있다. 필름의 박막화가 컨덴서의 소형화에 직결됨은 물론이다.

필름컨덴서용원자재는 이후 80년대 들어서도 아연증착필름(성문전자), 알루미늄증착필름 SKC 폴리프로필렌 필름(삼영화학)등으로 계속 이어졌으며 이같은 소재업계의 기술개발이 한국 필름컨덴서산업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는밑거름이 된 것이다.<최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