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정보통신 비사 소리없는 혁명 (29)

행정전산망사업용 컴퓨터로 선정된 톨러런트 기종이 문제의 컴퓨터로 대두 된것은 국민연금관리업무를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고장이 잦아 말썽을 일으켰기때문이다. 선정 당시부터 무명의 회사 제품이라 해서 의혹의 눈초리를 받아왔던 이 기종이 초기의 운용 과정에서 자주 고장을 일으키자 참새들이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그것이 1천5백억원이라는 행정전산망사업의 자금 규모와 연결되어 5공 비리로 비화되었다.

국민연금관리업무는 애초에는 행정전산망사업 1단계사업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87년 4월 전산망조정위원회가 이 사업을 추가 하기로 결정함으로 써1단계사업에 끼이게 되었다. 애초에 국민연금사업은 새 정부가 들어서는 88년 이후에 실시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87년 12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근로자들의 표를 의식하 여국민연금사업을 1년 앞당기기로 한 정부의 방침에 따라 추가되었던 것이다. 이 사업을 1년 앞당기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한데, 그 자금이 예산에 반영돼 있지 않자, 재원 확보 방안으로 선투자후정산을 원칙으로 하는 행정전 산망사업에 끼워 달라는 경제기획원측의 요청에 따라 청와대의 홍성원 비서 관이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전준비가 없었던 탓인지 국민연금관리업무의 전산화는 시작부터 고장을 일으키며 말썽을 부렸다. 그럴 만한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새 기계를 들여오면 현지 적응을 하는데 상당한 시행착오 기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운용 미숙이 또 하나의 장애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상식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 기종 자체가 그 업무에 맞지 않다는데 있었다. 국민연금업무를 전산화함에 있어 그때까지 취급해온 방법은 배치(Batch)처리였는데, 톨러런트 기종은 온라인처리(OLTP)용 이었다. 따라서 그 업무 취급방식과 기계가 서로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기술외적인 데 있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업무자체가 정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았다. 즉, 국민연금관리업무 자체가 아직까지 제도상으로 완비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 업무를 전산화하려면 사전에 정의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았다. 때문에 그 당시 IBM컴퓨터를 도입했다 하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데이콤 백인섭소장의 주장이 었다. 실제로 톨러런트 기종을 가지고 6개월 가량 씨름하다 결국 IBM기종으로 교체했는데 IBM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는데도 2~3년의 시행착오 기간이 필요 했다. "검토대상이 된 어느 기종을 선정했더라도 초창기 기능의 신뢰성에는 문제 가있었을 겁니다. 톨러런트 기종이 유독 나빠서 그런 것이라고 덮어씌운 점은있었지만 어느 기종을 선택해도 말썽을 일으켰을 거예요. 안정화가 안돼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어느 기종이건간에 연금관리업무의 DB를 처리하는 일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 업무 자체가 정리가 안돼 있었고, 또업무 자체에 그 적은 기종이 맞지 않았으니까요" 전자통신연구소 주전산기개발본부장 오길록의 말이었다.

그러나 톨러런트 기종이 말썽을 일으킨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국민연금관리업무의 전산화가 거론될 때 이미 IBM이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전산부서에는 의료보험관리공단에서 많은 실무자 들이 넘어 왔는데 그들은 IBM컴퓨터에 익숙해 있던 터라 당연히 IBM컴퓨터를 사용할 것으로 생각했다. IBM 또한 국민연금관리공단과 같은 큰 고객을 놓칠리 없었다. 따라서 공단의 실무자들과 IBM측은 IBM 컴퓨터의 도입을 전제로 서로 왕래를 하며 교육까지 시켜 놓은 상태였다. 그러한 형편인데 느닷없이듣지도 보지도 못한 톨러런트 기종을 사용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니 실무자들 이 반길 리 없었다. 아니, 전산업무를 데이콤에 맡길 경우, 전산부서 자체가 해체될 우려가 있으므로 기를 쓰고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데이콤 의 입장에서는 최대의 애로였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돌리면 쉽게 안돌아 갑니다. 그러한 것을 만드는사람과 쓰는 사람이 상당 기간 참으면서 고치고 안정시켜 운용하는 것이거든요. 또 컴퓨터 프로그램이란 수십만 줄 암호를 쓰는데 운용하는 동안에 순서를 잘못 파악하면 돌아가다 서지 않습니까. 이런 일이 생기면 이용자와 공급자가 마주앉아 차근차근 풀어가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정부 부처에서는 컴퓨터를 쓰는 사람이 공급자와의 계약을 자 기손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공급자와의 관계가 좋습니다. 컴퓨터가 잘못 돌아간다 하면 쓰는 사람의 책임도 있으니까요. 컴퓨터가 잘 안돌아가면 네 책임이다 하는 소리를 들으니까 속으로는 고추장을 담그더라도 바깥으로는 쉬쉬하며 감싸 주죠.

그러나 데이콤의 경우는 정반대였어요. 고맙게 생각하지도 않는 상대이기 때문에 뭐 하나 잘못되면 데이콤이 잘못했다고 동네방네 다니며 외치는 겁니다. 그것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죠. 그나마 장관이나 국장 등 정책을 결정 하는 사람들이 데이콤을 통해 행정전산망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 감싸주면 되는데, 그렇지도 못했거든요. 그러니까 한 마디로 사면초가였죠 이용태 사장의 이야기였다.

톨러런트 컴퓨터에 대한 국민연금관리공단 실무자들의 불평이 터져 나오자 등뒤에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그룹이 있었다. 톨러런트 제품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으며, 그 제품의 도입 과정에 모종의 흑막이 있는 것처럼 몰아붙이는 기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기사의 내용이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기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어느 한 그룹의 전문가들이 기사감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러한 의혹설은 1천5백억원이라는 막대한 행정전산망사업 예산 규모와 어울려 증폭되다 드디어 국회에까지 비화되었다.

6공 정부가 출범한 후 오랜만에 부활된 국회의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김정 길의원이 주전산기 도입에 관한 의혹을 제기했다는 것은 전술한 바 있다. 그 후에도 의혹설은 심심찮게 제기되어 급기야는 5공 비리로 몰아가는데도 책임지고 나서 답변을 하는 행정부측의 책임자가 없었다. 행정전산망사업의 주관 부처인 총무처장관은 "톨러런트 기종 선정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발뺌을 했다. 과기처장관 역시 "주전산기 개발 문제라면 답변할 수 있으나 톨 러런트 기종 선정에 대해서는 알수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그러자 오명체신 부장관이 나서서 답변을 했다.

행정전산망사업 추진 전담기관은 데이콤이었지만, 그 사업은 정부 각 부처 의사업에 해당되느니만큼 전체적인 총괄업무는 총무처에 맡겼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 사업에 대한 정책 결정을 한 것은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원장으 로하고 관계부처 차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을 위원으로 하는 국가기간전산 망조정위원회였으며, 그 중에서도 간사인 홍성원 비서관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렇게 본다면 체신부는 행정전산망사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또 주전산기 도입 기종의 선정작업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다만 사업 전담기관인 데이콤의 감독 부처라는 점에서 간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측면지원을 해주었던 것이다.

1988년 2월 6공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 각료들이 대부분 교체되었다. 따라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관련 각료들이 행정전산망 사업에 대해 아는체하기도 싫었지만, 유독 오명 체신부장관만큼은 5공정부에서 6공정부로 넘어가면서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어 일말의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톨러런트 도입 문제가 청문회 정국으로 돌입하려는 데도 아무도 나서서 답변 하는 사람이 없자 "누군가 답변을 해서 가라앉혀야지 다 피해 버리면 정말잘못된 프로젝트로 증폭되겠구나"하는 우려에서 국회에 출두하여 답변을 했다. 그러자 그가 톨러런트 도입의 원흉으로 낙인찍혀 그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국회에서 그를 불러들였다.

하루는 "체신부는 톨러런트 기종 도입과 관련, 대통령에게 결재받은 문서 를감추기에 급급하다"는 내용의 가십 기사가 모 일간지에 보도되었다. 그러 자국회에서 오장관을 불러 그 문서를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물론 그러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그는 "그런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신문에도 났는데 왜 거짓말을 하느냐?"며 모의원이 다그치자 그는 정색을 하며 답변했다.

"제가 의원님 나라의 장관입니다. 어떻게 삼류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믿고의원님 나라의 장관이 한 말은 믿지 않습니까?" "딴 사람은 다 대통령 결재를 받는데 오장관은 대통령 결재를 안받았단 말입니까 "지금 대통령 결재를 받아 무슨 문제가 생길 때 모면하느냐 안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10년, 20년 후에 통신전문가들에게 어떻게 평가를 받느냐 하는게 중요합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전문가고 대통령은 전문가가 아니신데 어떻게 전문가가 아닌 대통령이 문제를 책임지겠습니까. 책임질 사람은저니까 제가 사인한 겁니다" 결재문서건이 궁지에 몰리게 되자 이번에는 행정전산망사업용 예산 1천5백 억원을 정치자금으로 유용한 것이 아니냐며 물고 늘어졌다. 그러자 오장관은 언성을 높여 가며 단호하게 맞대응했다.

"예산은 1천5백억원으로 책정돼 있지만, 지금까지 실제로 쓴 돈은 87억원 밖에 안됩니다. 그 87억원이란 것도 컴퓨터를 사온 돈인데, 그 돈에서 정치 자금으로 쓸 돈이 몇푼이나 되겠습니까. 이 프로젝트는 내가 직접 한 게 아니고 젊은 사람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아주 잘한 겁니다. 이번 기회에 컴퓨터도 국산화하고, 어느 나라 컴퓨터도 마음대로 선택 할수 있게끔 유닉스를 OS로 채택했는데, 이렇게 좋은 게 어디 있습니까. 이 프로젝트가 국가 발전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텐데, 만약 국회에서 이것을문제삼아 이 프로젝트가 죽는다면 우리나라 발전을 몇년 후퇴시키는 겁니다. 어차피 우리는 정보화사회로 나아가게 되는데, 국회에서 브레이크를 걸어이 프로젝트를 못하게 한다면 국회가 역사 앞에 죄인이 될 겁니다"그렇게 해서 불꽃처럼 타오르던 의심의 여론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 무렵 그 동안 추진해오던 주전산기의 국산화가 결실을 맺어 국산 중형 컴퓨터 제1호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오장관은 금성사 대우통신 삼 성반도체통신 현대전자 등 4개 생산회사로 하여금 대대적인 기종발표회를 갖게했다. 그리고 국회 교체분과 위원들을 초청했다. 크기는 가로 55.9cm, 세로85.1cm 높이 120.6cm에불과하지만, 성능은 이미 잘 알려진 IBM 4361 기종 과다를 바 없는 국산 슈퍼미니컴퓨터를 구경한 어느 의원이 "앞으로 톨러런트가지고 떠드는 놈은 촌놈이다"고 농담을 하자 다른 의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체했다. 88년 10월의 일이었다. 그 후 톨러런트 문제를 가지 고국회에서 재론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