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세상의 끝, 서킷 보드의 중심 (22)

연주를 끝내고 야즈는 머리를 숙인 채 거기 서 있는다.

TV로 된 벽은 눈녹듯 사라지고 11세기 궁녀복을 입은 일본 여인의 거대한이미지가 나타난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를 하고 볼에 분을 칠한 여자의 눈은 짙은 검은색이면서도 타는 듯한 불꽃을 담고 있다. 약간 열린 입 사이로 맵시 있게검은 색을 칠한 이가 드러난다.

그녀는 인형처럼 하얀 손을 세련되게 부딪치며 박수를 친다.

"이 세상에 그렇게 피리를 잘 부는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는 줄 알았죠!야즈상, 정말 오랜만이시네요."

그녀가 절을 한다.

야즈도 마주 절한다. TV로 된 벽이 다시 천천히 흐려지고 한 쪽에 문이 나타난다. 야즈가 이미지를 밀치자 문이 열린다.

"어서 오세요!"

밖에서 보았던 여자다.

"다른 손님들도 들을 수 있도록 연주하신 걸 메모리 뱅크에 녹음해 놓았답니다. 괜찮겠죠?"

"오히려 영광입니다."

"같이 오신 분은……?"

아마는 미소를 지으며 고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 분은 프랭크상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오셨습니다.""아이구, 먼 데서오셨군요! 잘 모셔드릴게요. 이 쪽으로 오시죠.""여기 자주 온다는 말 안했잖소?"

여자의 뒤를 따르며 고비가 야즈에게 속삭인다.

"사실 몇 번 밖에는 온 적이 없습니다. 여기 이미지 뱅크는 아주 흥미있답니다. 올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게 있으니까요."

"앉으시죠."

아마는 둘을 초밥 카운터에 앉힌다.

산 속의 동굴 같은 실내에는 벽을 따라 수족관이 놓여 있다.

카운터의 한 쪽 구석에는 사이보그들을 등에 업은 여승 하나가 밥 한 공기를먹고 있고, 다른 한 쪽에는 홋카이도 원주민처럼 보이는 남자가 술을 마시고있다.

얼굴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그림자가 챙처럼 걸려 있는 것이 좀 괴기스러운 인상이다.

뒤쪽의 별실에는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주방장이 기분전환하라고 뜨거운 타올을 가져다준다. 긴 얼굴에 마른 중년남자다. 머리에는 전통적으로 주방장들이 하는 사이보그띠가 매어져 있다.

"안녕하십니까?"

카운터를 행주로 닦으며 인사한다.

"뭘 드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