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초점] 조립 PC매장들 "더위 먹었다"

용산 전자상가가 개점휴업 위기에 몰렸다. 장기불황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예년같은 여름방학 특수는 기대할 수도 없는 데다 대기업의 파상공세와 정부의 불법복제 단속이 겹쳐 이제는 가격경쟁력 확보조차 쉽지 않게 됐다.

용산을 찾는 고객들은 한 푼이라도 더 아껴보려는 알들파가 대부분. 특히 조립PC 전문상가의 경우 대기업보다 대략 20∼30% 이상 싼 값을 제시해야 구매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8월 하순부터 윈도98을 기본 탑재한 신제품을 쏟아내기 위해 선심공세에 나선 대기업들이 40∼50%의 파격적인 세일판매를 실시하면서 조립PC 업체들은 기존의 가격차를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워 졌다.

여기에 최근들어 부쩍 강화된 불법복제 감시망도 용산상가의 목을 죄고 있다. 현재 SW재산권보호위원회(SPC)와 사무용SW연합회(BSA)는 검찰과의 공조체제를 공고히 하는 한편 자체 단속 회수도 크게 늘렸다. 한컴 사태 이후 정품사용의 분위기가 어느정도 무르익었다고 판단, 그동안 「카피의 천국」으로 방치되어온 용산을 집중 단속하기로 한 것. 이에 따라 가정집으로 배달을 시킨 후 증거물을 확보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감시의 그물망을 조이고 있다.

불법복제 근절은 SW산업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일 뿐 아니라 하드웨어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온 용산의 판매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SW 정품사용에 공감하는 PC유저들 조차 용산에서는 돈을 주고 프로그램을 사는 데 거부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용산 선인상가의 한 조립PC 전문점 사장은 『단속의 칼날은 용산에 집중되고 있는데도 소비자들은 이곳을 정품사용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여긴다』고 말한다. CPU부터 스피커까지 꼼꼼하게 값을 따져보고 사는 손님들 중에는 견적서에 쓰여 있는 SW가격이 전체 조립 PC의 5% 정도만 차지해도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는 것.

윈도98 탑재 PC가 쏟아져 나올 하반기가 되면 이미 입지가 좁아진 용산상가는 더욱 설 땅이 없어질 전망이다. 불법복제 단속의 그물을 피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카피당 대략 8만~10만원에 공급받는 윈도98을 2배 이상 비싼 값에 사야 하기 때문이다.

5대 PC메이커들이 미국 MS 본사와 직접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는 것과 달리 용산 상우회는 MS제품을 OEM으로 공급하는 국내 DSP(딜리버리 서비스 파트너)들과 가격을 협상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불리하다. 상반기에 엠에스테크, 테크비즈니스랜드, 나라시스템 등 마이크로소프트사의 DSP들이 제시한 윈도95 공급가가 1천 카피 구매 시 15만원 안팎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턱없이 높은 가격이 책정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벼랑 끝에 몰린 용산 상가에서는 일반유저를 포기한 채 공개 운영체제 리눅스를 탑재한 마니아용 PC만 취급하는 점포가 생기는가 하면 OS도 없이 시스템만 가판대 위에 올려 놓고 파는 웃지 못할 풍속도까지 연출되고 있다.

「전자유통 1번지」로 주머니가 가벼운 유저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전자상가가 과연 위기탈출의 비상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지에 업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이선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