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컴퓨터 시대의 디자인

 모든 것이 급변하고 있다. 인류의 생활을 편리하고 여유롭게 해주는 기기가 그렇고 이를 돌아가게 하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그렇다.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군인들의 작전용 무전기 같았던 휴대형 전화기는 기능과 성능이 월등해졌으면서도 크기는 손가락만하게 진화(?)됐고, 무거워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던 TV수상기 역시 벽에 걸릴 정도로 얇고 가벼우면서 훨씬 선명한 제품이 개발될 정도다.

 이제는 엄연한 현실로 다가온 이러한 첨단 제품 가운데는 더 이상 기능적인 요소를 추가하는 것이 무리일 정도로 개발의 정점에 와 있는 제품들도 상당수 눈에 띈다.

 이처럼 새로운 기능을 부가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발의 정점에 도달한 제품이 늘어나면서 자연히 소비자의 새로운 구매욕구를 유도하기 위한 제품 외형의 변화가 시도되기 시작했다.

 처음 소비자에게 선보였을 때는 각이 진 형태였던 제품이 최근에는 라운드 형태로 바뀌는 등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 고객을 유혹하고 있으며 특히 3차원 형태로 디자인된 제품은 소비자들에게 보는 즐거움까지도 제공하고 있다.

 디자인을 하는 입장에서 요즘 제품들의 형태 추이를 보면 너무 완벽했을 때 오는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제품 디자인을 도와주는 컴퓨터지원디자인(CAD) 프로그램의 설계 툴은 머릿속의 기획만 완벽하다면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여 생각한 내용을 화면에 혹은 종이 위에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도록 완벽히 지원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완벽한 조수(?)에 의해서 표현되는 선 하나하나에 얼마나 디자이너의 고심과 땀이 스미게 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고리타분한 얘기일 수도 있으나 컴퓨터라는 디자인 도구가 없던 시절에 설계실무를 맡았던 사람들은 자기가 긋는 선 하나하나에 책임을 느끼면서 제품 형태를 완성해 나갔고 그랬기 때문에 이들은 생산된 제품을 보면서 설계과정에서 고심한 흔적과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었다.

 지금의 제품 디자인이 무책임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완벽한 조수가 도와주어 만들어내는 선이 자칫 디자이너의 뜻을 앞질러 갈 수도 있고 그 선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그대로 인정해 버리는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작업 도중 컴퓨터에 연결된 전원이 끊어지면 그동안 작업했던 내용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정도로밖에 애정을 갖지 못한 디자이너에게 그 제품 디자인의 선은 결국 컴퓨터가 만들어낸 컴퓨터의 선이라는 의미밖에 없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소비자의 취향을 따라잡고 신속한 대응제품을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단기간에 신제품을 그려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러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디자이너가 만들어내는 선 하나하나에는 자신의 혼과 정신이 담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때 많은 기능을 갖춘 제품과 디자인을 소비자들이 선호하던 때도 있었으나 곧 식상한 디자인으로 외면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꼭 필요로 하는 기능만을 심플하게 표현하는 방향으로 디자인 추세가 변화하고 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보면 디자인 추세가 손으로 디자인하던 시절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갖게 될 정도다.

 언젠가 인간의 심리까지도 헤아리는 컴퓨터 디자인이 가능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제품 하나하나에서 풍길 디자이너의 선만은 컴퓨터가 아닌 디자이너의 마음에서 나와 손끝으로 표현되는 혼이 담긴 선이어야 하는 것이다. 창조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