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연줄과 간판

「정현준 게이트」가 벤처업계의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 사장 사건을 계기로 벤처 자금줄의 하나인 사채시장이 급속하게 냉각되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다. 이번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많은 사람이 심판대에 설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경기불황으로 비상이 걸린 테헤란밸리는 시꺼먼 먹장구름이 드리워진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어긋난 벤처문화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정현준 사건 쟁점 가운데 하나는 정치권·관료 등 소위 「힘있는 사람」과 유착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번 사건으로 표면화됐을 뿐이지 권력을 향한 벤처의 줄대기 시도는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일이다. 한창 코스닥붐이 불 때 유력인사들에게 액면가 등으로 지분을 넘기는 방법으로 전방위 지분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과거 제조업체도 어려울 때 도움을 받기 위해 또는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대주는 일종의 「보험 들기」가 공공연히 성행했다. 하나의 비즈니스 관행으로 얘기될 정도로 국내에서는 일반적인 풍토라는 얘기다. 실제로 각종 정부규제가 많은 상황에서 실세와의 연결고리가 사업을 위한 필요조건은 아닐지언정 충분조건이라는 마인드가 뿌리깊게 남아있다.

아마도 벤처에 쏟아지는 무수한 비난의 화살은, 그래도 벤처는 도덕성면에서 일반기업과 다르다는 태생적 배경때문일 것이다. 일각에서 「모럴 헤저드」라며 벤처의 출발점을 다시 묻는 것도 그만큼 벤처에 거는 기대가 남달랐다는 방증이다. 물론 초심을 잃은 파행적인 벤처문화는 건전한 벤처를 위해서도 도려내는 아픔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보다 진일보한 국내 벤처문화 정착을 위한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불투명한 비즈니스 풍토를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자칫 정현준이라는 개인에 가려 뿌리깊은 국내 비즈니스 관행을 덮어둔다면 언제라도 제2, 제3의 정현준이 다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비양심적인 불량 벤처를 가리는 작업과 함께 「연줄과 간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사라질 수 있는 투명한 비즈니스 문화를 위해 노력할 때, 정현준 게이트는 추억속의 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인터넷부·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