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다른 기술이 한 팀이 되는 순간
인공지능(AI)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그런데 AI를 움직이는 연료가 무엇인지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전기다. 전기가 부족하면 AI도 멈춘다.
AI와 핵융합은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인다. 하나는 소프트웨어(SW)고 하나는 하드웨어(HW)다. 하지만 서로를 필요로 한다.
AI는 핵융합 개발 속도를 높이고, 핵융합은 AI가 필요로 하는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AI가 핵융합을 만들고, 핵융합이 AI를 키운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AI를 위한 핵융합:AI의 병목은 전기다
2030년 글로벌 데이터센터는 추가로 500기가와트(GW)의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한국 전체 소비전력의 5배에 달한다. AI 산업의 최대 제약은 '전기 부족'이다. 이제 데이터센터의 규모는 GPU 개수가 아니라 GW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1GW는 대형 원전 하나의 전력이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5GW급이다. 원전 다섯 개 규모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이 찾는 건 GPU만이 아니라 안정적인 GW급 전력이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AI데이터센터는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돌아가야 한다. AI 모델 학습 중간에 전원이 나가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 일부 국가는 이미 전력 부족으로 AI 활용에 제한을 받고 있다. AI는 안정적인 기저부하 전력이 필수다. 탄소 배출 없이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핵융합이 주목받는 이유다.
MS는 이미 2028년부터 헬리온이 공급하는 핵융합 전력을 구매하는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했다. 구글도 TAE에 투자했다. 핵융합이 상용화되면 지역, 날씨, 계절과 무관한 안정적 전력을 제공할 수 있다. 또 AI 비용의 가장 큰 요소인 전력 단가를 하락시킨다. 핵융합은 AI 인프라를 지속 확장하는 궁극의 전력원이다.
◇핵융합을 위한 AI:핵융합 난제를 푸는 도구
핵융합은 70여년 동안 연구돼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쌓여있지만, 연구기관별로 파편적으로 저장돼 활용이 어려웠다. AI는 이 파편적 데이터를 통합 분석할 수 있어 연구 속도를 높인다. 기존 개발자들이 수십년 걸리던 작업을 수개월로 단축시킨다.
예를 들어 슈퍼컴퓨터로 수백초 걸리던 플라즈마 예측을 AI는 수밀리초(ms)에 해낸다. 10만배 빠르다.
핵융합 제어의 핵심은 초고온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플라즈마는 1억도의 초고온 이온화 기체로, 작은 변화에도 흔들린다. 2022년 구글 딥마인드는 AI로 토카막 플라즈마 제어에 성공해 네이처에 게재했다. 수십개의 자기장 코일을 1초에 수천번 조정해야 하는데, 사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간 풀기 어려웠던 난제를 AI가 해결했다.
AI를 활용한 장치 설계로 개발 속도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장치를 물리적으로 만들어 보는 대신에 먼저 AI 기반의 디지털 트윈을 활용하면 설계 문제를 사전 파악할 수 있어,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개발비용을 절감한다. 산업계에서는 AI 덕분에 개발 기간 10년 단축, 비용 50% 절감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문명의 두뇌와 혈액
핵융합과 AI의 관계는 단순한 기술 협업이 아니다. 문명의 양대 축으로 서로를 증폭시키는 구조다. AI는 국가의 '두뇌' 역할을 해 의사결정과 혁신을 주도하고, 에너지는 국가의 '혈액' 역할을 해 모든 활동을 뒷받침한다. 두뇌가 아무리 뛰어나도 혈액 공급이 부족하면 작동할 수 없고, 혈액이 풍부해도 두뇌가 없으면 방향을 잃는다. 핵융합과 AI는 서로의 부족함을 메우고 상호 증폭시킨다.
미국과 중국이 핵융합과 AI에 동시에 천문학적 투자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두 기술을 선점한 국가가 21세기 이후 초강대국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중국은 핵융합에 서방 전체보다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2030년대 중반 상용화를 목표로 수십억달러 규모 로드맵을 발표했다. 유럽은 별도 프로그램(Fusion for Energy)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원래 2050년대 목표였는데, 2030년대로 20년 앞당겼다. 에너지 경쟁이 곧 기술 경쟁이고, 기술 경쟁이 국가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쌍축 전략
한국은 이 게임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KSTAR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플라즈마 제어 기술을 개발해왔고, 보유하고 있는 핵융합 관련 데이터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참여를 통해 축적한 핵융합 엔지니어링 경험까지 갖추고 있다.
앞으로 5년이 한국이 '핵융합+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핵융합과 AI를 각각 따로 추진한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그러나 두 영역을 연결하는 '쌍축 전략'을 구사한다면, 한국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 수 있다. AI로 핵융합 개발을 가속화하고, 핵융합으로 AI 산업의 에너지 한계를 극복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두 기술이 만나는 접점, 그곳이 한국의 미래다.
핵융합이 산업이 된다면 얼마나 큰 산업이고, 가장 먼저 움직이는 시장은 어디일까. 다음 회에서는 세계 핵융합 시장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살펴보자.
최두환 인애이블퓨전 대표 dwight@enablefus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