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가 되살아나고 있다.
백화점들의 겨울 정기바겐세일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늘었다고 한다. 명품·고가품일수록 더 잘 팔렸고 이 때문에 대형유통업체들은 9·11 미국 테러사태 이후 극도로 위축된 소비심리가 완전히 회복됐다며 흥분하고 있다. 외제 승용차·골프채 등 수입시장도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포화상태로 여기던 이동통신시장에서도 신규 가입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직장인들의 ‘희망’인 주가마저 지난 한 달여 동안 수직상승, ‘연말랠리’ ‘산타랠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다. 세계 경기후퇴로 우리 산업이 주저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내수진작책이 힘을 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 덕분에 수출에서 죽을 쑤고 있는 제조업들이 그나마 내수 기반으로 근근이 버텨나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의 내수 활황으로 미루어 내년 경기를 낙관,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단언하지만 너무 안이한 상황 인식이다. 전면적인 소비 확대는 아직 역부족이다. 저금리시대에 갈 곳 없는 돈이 소비로 몰리는 일시적 현상이지 재래시장이나 중저가 상품에까지 매기가 살아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서민층의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데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질’이 문제라고 한다. 소득 증가가 뒷받침되지 못한 거품소비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경제는 ‘심리’도 주요한 키포인트라는 점에서 일단 소비심리가 자극된다면 반짝경기는 가능한데 요즘의 우리 경제가 바로 그런 모습이라는 지적이다.
가계빚 수치가 이를 입증한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가구당 평균 부채는 2200만원이다. 1850만원이던 전년 동기보다 350만원 늘었다. 또 가계빚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6월에 비해 9월에는 140만원이나 불어났다. 그럼에도 소득은 늘지 않았다. 올해 임금상승률은 기껏 5% 안팎에 불과했고 주식도 외국인들 잔치였지 일반인은 상투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다. 결국 소비가 확대되는 것과 비례해 빚도 늘어난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빚의 성격도 심히 걱정스럽다. 신용카드 빚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개인이 급전을 빌려 소비하는 추세가 일반화해 경기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상환 능력을 고려할 때 개인파산이 계속 늘어날 공산이 크다. 금리가 내려가고 금융권 역시 크게 떼일 리 없는 개인대출을 독려해 쓰고 보자는 심리를 부추겨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현재의 가계소비 증가는 다분히 IMF 위기를 연상케 한다. 경제의 기반은 취약해져가는데 단군 이래 최고의 호황을 구가한 반도체 경기 착시현상에 젖어 흥청망청 소비한 것은 정부나 개인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내년은 대선의 해다. 집권층으로서는 불황을 타개하지 못한 채 치르는 선거는 상상하기 어렵다. 각종 부양책이 앞다퉈 제시될 것이고 내수와 소비는 상향곡선을 그을 것이다. 주가 떠받치기도 소홀하지 않을 것이다.
수출이 살아난다면야 금상첨화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무슨 험한 꼴을 볼지 모른다. 국가 채무는 고사하고 가계빚이 1년 만에 65조원이나 늘어나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나라나 가정경제나 빚 얻어 소비하고 빚 얻어 빚 갚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은 말이 안된다. IMF에서 배울 것은 아직도 많다.
<이택 산업전자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