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위대한 기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란 책에서 강조하는 내용이다.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전제조건이 있겠지만 디지털경제시대의 흐름에 걸맞은 기업의 e전이가 가져다 주는 중압감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상황이 됐다.
특히 전통기업의 e전이 움직임은 디지털경제시대의 경쟁력을 가름하는 분명한 척도로 자리잡았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신속한 경영활동의 지원뿐만 아니라 정보체계화 등 업무 효율성의 효과가 여기저기서 확인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업의 e전이를 위한 인프라가 갖춰지기 시작했고 기업 내부 고객들의 마인드가 서서히 변해가고 있는 시점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편집자
“정보시스템에 대한 사내 고객의 관심이 높아졌음을 여실히 느꼈다.” IT는 이제 한 부서에 국한돼 논의하는 문제가 아니라 전사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현대건설의 이정헌 상무(CIO)가 지난 한해 기업 IT 투자를 주도하며 느낀 경험담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열리는 임원회의에서 회의 때마다 빼놓지 않고 IT활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예를 들어보면 구매팀에서 전자구매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마케팅 부서에서 고객관계관리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를 상의할 수밖에 없는 추세에 들어선 것이다.
이전에는 정보시스템실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현업부서의 승인을 기다리는 처지였는데, 이제는 현업부서 스스로가 먼저 제안하고 정보시스템실이 추후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뀐 셈이다. 그만큼 이제 IT는 별도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전사적인 업무활동을 자연스럽게 지원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대한 현업부서의 관심도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e전이에 관심을 상대적으로 덜 갖던 내부조직에서 조차 혁신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이 e전이 투자에 대한 적기라는 논리가 성립되게 마련이다. 결국 기업의 e전이는 전사적인 요청이란 점에서 경기변동에 따라 무조건 투자를 줄이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을 억제하는 부작용을 가져올 우려도 있다.
오히려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IT에 대한 투자를 줄이면 안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의 투자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업무프로세스를 단순화해야 하는데 결국 그 역할은 IT가 맡게될 수밖에 없다.
e비즈니스 전문기업인 이나프시스템의 이석주 사장은 “기업들은 경기가 어려울수록 투자를 줄이려 하지만 투자를 줄인 만큼 효과를 보고 싶어하는 것이 현실이다”며 “모든 업무를 디지털화한다면 결과적으로 투자를 줄인 만큼의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IT가 업무 프로세스를 줄이는 등 전사투자비용을 줄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결국 e비즈니스 투자만은 쉽게 줄일 수 없을 것이란 얘기다.
이 사장은 미국의 시스코나 오라클의 경우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 오히려 사내 e비즈니스를 강화해 비용절감 효과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을 갖췄다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IT투자가 경기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일부 기업들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e전이를 추진하다보니 경기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오락가락하지는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김종현 LG화학의 상무(CIO)는 “내년에 경기가 불안정하니까 투자를 줄이겠다는 생각은 결코 없다”며 “기업의 e전이 활동을 하는데 있어 경영전반을 고려한 사이클에 따라 좌우될 뿐”이라고 말했다. 회사의 업무혁신 활동에 시작과 끝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조정될 뿐 경기가 나쁘고 좋음에 따라 무조건 e비즈니스 투자의 축소 내지 확대는 안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경기가 나쁘더라도 기업 혁신활동을 통해 생산성을 창출하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그 때 투자하는 것이 맞다는 논리다. 김 상무는 “e전이 투자를 늘리고 줄이고를 흑백논리로 보면 안된다”며 “적당한 시기를 찾는 것이 중요하지 경기변화에 따라 투자시기가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립 제일약품 이사(CIO)도 경기가 불안정하더라도 이제 IT에 대한 투자를 이전처럼 무조건 줄일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e전이가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딘 제약업종이지만 신약개발 다음으로 기업의 체질개선을 위해 IT가 꼭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박 이사는 제약업종이 무조건적인 투자는 힘들겠지만 경기 불안정성 때문에 투자를 대폭 줄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3년도 e전이 어떻게
기업의 e전이란 단순하게 e비즈니스 인프라를 갖추거나 온라인 채널을 추가해 사업을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 자체를 혁신적으로 변화시켜 디지털경제시대에 적합한 생존모델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규 사업의 창출 차원에서 이뤄졌던 소위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투자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지난 2001년도에는 닷컴의 급속한 몰락으로 전통산업의 e전이는 일종의 공황상태에서 시작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미처 e비즈니스의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남들 따라나서기에 주력했던 한해였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경영전략적 측면 접근보다는 사업효율성 제고에 초점이 맞춰져 e전이 방향이 잡혀왔다. 중장기 전략이 부족하고 거시적 관점에서 보지 못하는 이유다.
이처럼 2001년도에는 개별적으로 일어나던 e전이 인프라 구축이 지난해부터는 ‘통합’과 ‘협업’의 관점에서 재해석되며 진행되고 있다.
기업이 수익증대와 더불어 신속한 제품개발을 위해서는 기업 내외부의 관련정보에 신속히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정보통합환경 구축이 절대적이었다. 때문에 지난해 대부분의 대기업이 전사적자원관리(ERP)를 운용하기 시작했거나 올해 안에 ERP 구축을 추진하는 곳이 늘고 있다. 통합의 의미는 이러한 시스템통합에서부터 시작해 데이터베이스 통합에까지 이르고 있다. 정확한 데이터 확보를 위해 고객관계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02년도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협업시스템 구축을 위한 발판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선 한해였다는 점이다. 공급망이 연결돼 있는 산업의 특성상 나 홀로 변화하겠다고 해서 바뀔 부분은 많지 않아 타 업체와의 협업기반 구축이 많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경영 환경의 급변으로 과거와 같이 자사 혼자로는 치열한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협력업체들의 시스템과 연계하는 방안 등 협업시스템 구축을 위한 체계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도 지난해 e전이의 한 성과다.
올 한해 기업의 e전이는 지난 2002년도의 추세를 이어가면서 실제 성과를 거두기 위한 방편마련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단기성 투자에 치중하고 위험이 큰 장기투자는 미룰 것으로 보이나 핵심분야의 투자는 지속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e전이가 정보기술적 접근보다는 경영 운영적 접근방식이 요청되는 방대한 작업이란 인식이 확대됨에 따라 지금과는 달리 중장기 전략을 세우는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기고: e-경영으로의 전이에 조속한 대응을 바라며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새해가 밝았지만 기업들 특히 전통제조업체의 ‘e경영’으로의 전이는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e비즈니스, e전이(transformation), 나아가 디지털 경영은 한때의 유행으로 끝난 것인가.
지난 IT 투자 손실에 대한 뼈아픈 경험과 IT 경기침체로 인해 많은 기업 경영자들이 IT가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에 의심을 품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우리는 IT가 가져다준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디지털화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숙고하고, 이에 적합한 새로운 e비즈니스 과제를 도출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 디지털화가 진전되면서 제조업체의 생존에 위협을 주는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는 텔레매틱스 사업 등 다양한 자동차 관련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모 통신회사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동차 본체만 만드는 업체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을 표출한 적이 있다. 이는 디지털화의 추세로 제품제조의 경쟁 우위만으로는 부족하며, 나아가 기존 산업간 영역이 해체돼 업종내 경쟁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이다.
e비즈니스는 업무 효율성을 증진하는 데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는 수단이 돼야 한다. 현재의 산업내 위상에 안주하다가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경쟁제품과 업체가 등장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디지털화의 위협상황은 이와 같은 업종의 무경계화뿐만 아니라 업종내 기능 분화로도 나타나고 있다. 전자업체의 제조부문 수탁사업인 EMS는 디지털화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급속한 성장을 이룩하지 못하였다. 제조전문업체의 등장은 점점 전 산업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그에 따라 기존 업종내 질서도 재편될 것이다. 제조부문의 경쟁력을 중시하고 있는 국내업체들은 보유 핵심 역량의 재검토와 전략적 변화를 심사숙고할 시점이다.
또한 제조업의 중요한 활동인 제품개발 방식에도 디지털화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시장 세그먼트가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커스터마이징된 제품을 요구하는 고객이 증대하고 있다. 여기에 업체들은 제품을 신속히 개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기존의 개발방식은 먼저 고객 요구를 파악하고 난 다음 기업이 시행착오를 통해 원하는 제품으로 형상화하는 방식이어 고객 욕구 변화에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고객이 스스로 제품을 반복적으로 설계, 시험하는 IT 툴을 제공하여 제품을 개발하는 CAI(Customer As Innovator)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편 생산 분야에서도 커스터마이즈 제품을 신속하게 생산하기 위한 e비즈니스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산업의 디지털화는 지금 업무의 생산성, 효율성에의 변화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업무방식의 구축, 나아가 제품, 산업 구조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추세로 전개되고 있다. 국내업체들은 구매나 판매 기능에 초점을 둔 e비즈니스에서 조속히 벗어나 소위 ‘제조만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는 문제의식 속에서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실현하는 e비즈니스를 추진해야 한다.
제조업체는 e비즈니스의 방관자가 아니라 직접적인 당사자로서 조속한 대응이 필요하다. 2003년도는 ‘e경영’의 실현에 한 발짝 다가서는 e비즈니스가 추진되는 한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