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칼럼]노벨상을 기다리며

 해마다 10월초는 나에겐 곤혹스러운 때다. 노벨과학상이 발표되는 시기여서 왜 아직도 한국에서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가를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기야 작년에는 이웃 일본에서 물리·화학상을 휩쓸어 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많이 곤혹스러워 했고 또 반성했으며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떠들썩했다. 일년 사이에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금년에도 예외는 아니다. 벌써 언론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야단이다. 혹시 한국 사람이 타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과 수상자가 없을 경우에는 그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한국이 아직도 누가 혹시 받을까 가슴 설레며 기다릴 때가 아니라고 단언하고 싶다. 현재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노벨상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사람이 없고, 설사 가까이 있다 하더라도 앞으로 몇 년, 몇십년을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은 물리분야만 하더라도 벌써 한 두 건의 후보 업적이 있어 가슴 설레며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10월초만이라도 이 문제가 거론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만이라도 기초과학의 중요성이 논의의 대상이 되고 모두가 문제점을 거론하기 때문이다. 노벨상은 출연연구소처럼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연구하는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대학과 기초과학 연구소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연구할 수 있는 전통을 쌓아온 결과가 바로 노벨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한국의 순수 기초과학 연구는 겨우 30∼40년의 전통을 가진 대학들과 7년전에 설립된 고등과학원에서 수행하는 것이 고작이다.

 나라의 가까운 장래를 위해, 그리고 급변하는 기술경쟁을 위해 한국은 바이오기술(BT), 나노기술(NT), 정보기술(IT) 등에 만족스럽지는 않으나 그래도 나라 경제의 규모에 비해 적절하게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술은 모두 기초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BT, NT, IT 등도 우수한 인재들이 이끌어 가는 것이며 이 인재들은 튼튼한 기초과학 교육을 통해서 육성된다.

 궁극적으로 기술경쟁은 기초과학의 경쟁이나 다름이 없다. 따라서 기초과학의 육성은 정치나 경제논리의 희생물이 되서는 안 되며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과학정책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아직도 20년, 50년 후를 바라보는 기초과학 정책은 없는 것 같아 아쉽다. 또한 경제규모로 볼 때 과학기술부나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노벨상이 나오는 분야인 기초과학에 지원하는 예산이 너무 빈약한 것도 시정이 되길 바란다.

 한편 기초과학은 결국 과학자들이 하는 것인데 한국의 교육제도는 노벨상이 저절로 나오는 분위기를 만들기에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지금의 제도는 노벨상을 받을 능력이 있는 학생들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우선 과학고와 영재과학고의 교육이라도 제대로 창의력을 키우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을 만드는데 기여하였으면 한다.

 영어에 “Better late than never(늦어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 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부터라도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풍토가 조성되어 언젠가 10월에는 한국에도 초조하게 노벨상을 기다리는 과학자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 김정욱 고등과학원장 cwkim@kia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