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후, 북한은 매년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의 공동사설 형태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이 공동사설은 북한 정권이 지난 한해를 총결하고 새해 업무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각 부문의 성과와 발전 방향을 예측하는 데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최근 들어 북한이 과학기술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므로 이 신년사들의 연도별 비교, 분석을 통해 북한의 관련정책과 발전방향을 살펴볼 수 있고 이 안에서 바람직한 남북협력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강성대국 실현을 위한 투쟁과업을 지난 시기의 사상, 총대, 과학기술에서 정치사상, 반제군사, 경제과학으로 구체화하고, 이 안에서 경제와 과학기술의 결합을 특히 강조했다는 것이다. 경제와 과학기술의 결합은 거의 모든 국가들이 내세우는 것이나 ‘경제과학’이라는 용어에서 보듯이 금년도 북한 신년사의 언급은 이전보다 더욱 강한 어조를 띠고 있다. 북한 경제계의 절박한 현실문제 해결에 과학기술계가 총동원될 것임을 암시해준다고 하겠다.
둘째, 경제와 과학기술 발전의 기본 방향으로 국방을 핵심으로 하는 선군시대 경제건설 노선을 강조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전력·석탄·금속·철도운수 등, 소위 인민경제의 선행부문과 농업에 주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최근에 수립된 ‘새로운 과학기술발전 5개년계획(2003∼2007)’과 ‘연료, 동력문제 해결을 위한 3개년계획(2003∼2005)’ 등에서 이들 분야에 가장 많은 자원을 집중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올 한해 동안 이런 기본 방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경제와 과학기술의 일체화를 위해 이들을 통일적으로 관리하는 사업체계를 세운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속된 경제난 속에서 과학기술계를 생산 현장에 더욱 밀착시키기 위해, 1998년에 과학기술 행정기관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연구기관인 과학원에 통합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후 과학원이 국가적 대사보다 기관본위주의를 앞세운다는 비판을 받자 이를 시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북한 과학기술체제의 개편방향과 관련해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넷째, 이 안에서 소수 첨단기술연구소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금년도 신년사에도 과학기술중시 노선과 첨단과학, 기초과학 육성 등을 강조하고 있으나 그 내용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국가적인 예산 부족으로 그 파급 범위도 극소수 연구소로 제한될 것이다. 또한, “우리 실정에 맞게 선진과학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한 사업을 강화한다”는 말처럼, 선택된 연구소들도 세계적 추세보다는 국내 경제의 병목 분야, 즉 IT·BT·열공학·신소재 등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과학기술인력 양성, 특히 교육의 질적 수준 제고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기존 산업의 자동화와 신산업 육성을 위해 기계공학과 컴퓨터공학 중심으로 인력 양성을 크게 확대하고 있고,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 등에서도 이들 학과를 대대적으로 확대하면서 교과과정 정비와 교육 설비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자본과 노동력의 추가 투입 여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과학기술과 교육을 통해 경제문제를 해결하려는 북한의 전략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기본 방향은 우리의 대북한 과학기술협력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앞으로 북한 과학기술계는 경제문제 해결, 특히 전력·석탄·금속·철도·농업 등의 인민경제 선행부문에 더욱 밀착될 것이고, 외국기술 도입과 대외협력에서도 국내문제 해결을 우선시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대북한 과학기술협력도 이런 동향을 주시하고 이 안에서 추가적인 협력과제를 찾아나가면 좋을 것이다. IT와 과학기술인력 양성분야에서의 대북한 협력도 마찬가지다.
◆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cglee@step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