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국제화 열풍으로 이제는 우리만 고집하며 홀로 살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등락도 대내적 요인은 물론이려니와 국제시장의 흐름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 국내 정치·경제 상황보다도 뉴욕증권시장 등 해외 요인이 우리 증시에 더욱 영향을 미치는, 문자 그대로 국제화가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GDP 1만달러의 벽에 부딪혀 주저앉느냐, 아니면 성장동력을 가동해 역동적인 경제발전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저렴하고도 풍부한 인력을 자랑하는 중국의 급속한 부상과 막강한 기술 잠재력을 앞세운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한국경제가 과연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경제 도약의 핵심 키워드가 기술혁신과 이를 뒷받침하는 창의적인 과학기술 인력 확보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1세기 인재전쟁시대에는 천재급 인재, 프로 인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고, 따라서 창의적인 과학기술인력 양성이 국가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과거 저임의 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던 우리나라의 경우, 창의적 천재급 프로인재 양성에 소홀해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걸맞은 고급 두뇌와 뛰어난 현장 적응력, 설계 및 실무 기술력을 겸비한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은 인력양성의 요람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에서는 과연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갈 경쟁력 있는 인재를 양성해 내고 있는가. 최근 스위스의 IMD에서 조사한 한국대학의 경쟁력은 예상 외로 저조, 대학교육이 경쟁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가 하는 부분에서는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물론 이 조사가 객관적이며 신빙성이 있느냐에 대해 의견이 구구하지만 한국대학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우리는 “10년 뒤에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라는 화두로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을 발굴,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 등 의욕적이며 참신한 과학기술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대학들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하며, 어떤 미래지향적인 목표를 설정해 인재를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지 않다. 이공계 기피현상 등을 타개하기 위한 대학의 노력도 가시화되는 것이 없을뿐더러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기보다는 ‘남의 탓’이라는 안일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대학교육도 전문성과 특수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선 과학기술자를 양성하는 소위 교육중심대학과 창의적 과학기술자를 양성하는 연구중심대학으로 재편돼야 한다. 미국을 보더라도 2000여개의 대학 중 이른바 연구중심대학은 분류에 따라 50개 또는 100개 정도에 불과하며, 대부분이 학사과정 중심으로 현장기술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즉 5% 이내의 대학만이 광범위한 박사과정을 운영하며 대부분의 대학들은 현장 적응력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대학들이 박사 과정을 개설하고 있으며, 학부교육은 상대적으로 강조하지 못하는 산업현장 수요와 괴리된 교육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본분은 교육이며, 학사과정 교육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대학들이 SCI 논문 등 연구부분을 너무 강조해 산업계 수요에 대응하는 교육이 취약해지고 있음은 안타까운 현상이다.
이제 우리 대학도 졸업생들의 진로에 따라 대학교육시스템을 개편해 대학의 고객인 학생들과 더 중요한 고객인 우리 사회에 맞는 교육과 연구를 전문화해야 한다.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의 역할에 따라 적절하게 지원해 우리나라 대학들이 우리 경제발전에 강력한 엔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민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장 mkh@snu.ac.kr